타인의 인정에 대한 갈망에 구속되어
날개를 잃어버린 피에로 우첼로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는 이들에게
새로운 날개를 선물하는 ‘성찰’의 이야기
아슬아슬 줄 위에 걸린 위태로운 마음
우첼로는 공중 곡예를 하는 피에로입니다. 서커스단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예사인 우첼로가 무대에 설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를 아끼지 않습니다. 우첼로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요. 시선들에 붙잡힌 우첼로의 마음은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선 작은 발만큼이나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무대가 끝나고 난 뒤 우첼로에게 남는 건 깊고 깊은 외로움뿐입니다. 하지만 우첼로의 마음을 위태롭게 만드는 건 비단 사람들의 시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무대가 끝나고 난 뒤, 잠깐의 적막이 지나고 나면 어디선가 소곤소곤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속삭임에 자꾸만 불안하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얇게 서린 칼끝이 심장을 깊숙이 찔러 오는 것만 같습니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지만 왜인지 그럴수록 두려움과 외로움만 자꾸 커져 가고, 복잡하게 피어오르는 감정의 고리들은 엉킨 실타래가 되어 우첼로를 서서히 옥죄어 옵니다. 줄 위에서 가장 자유로워야 할 우첼로의 몸은 점점 균형과 무중력을 잃어 가고, 그렇게 우첼로의 시간은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는 문을 마주하다
시간을 잃어버린 꿈속에서, 우첼로는 거울을 마주합니다. 거울 안에는 댕겅, 커다란 눈동자 하나만이 우첼로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우첼로의 머리 위에 달린 것과 꼭 닮았지만 왜인지 시커멓게 타 버린 깃털을 단 채로요. 그런데 그 뒤로, 새하얀 깃털이 흩날리는 첫눈처럼 어른거립니다. 그 모습이 꼭 잊어버린 꿈처럼 선명하고 돌아가고 싶은 고향처럼 애틋합니다. 우첼로는 마법에 홀린 것처럼 그 깃털을 따라 거울 속으로 들어갑니다. 깃털이 이끄는 대로 어둠 속의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그 끝에는 굳게 닫힌 문 하나가 있습니다. 우첼로는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처럼, 꽁꽁 잠긴 자물쇠 위에 손을 얹습니다. 자물쇠는 오직 우첼로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 듯 그 모양에 꼭 맞아 들어갔고, 얼마나 잠겨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철문이 마침내 긴 잠에서 깨어나 그 속내를 열어 내보였습니다. 새하얀 깃털이 우첼로를 이끌고 들어간 그 방 안에는, 놀랍게도 거울 속에서처럼 시커멓게 타 버린 깃털을 머리에 달고 있는 아이들이 새장에 갇혀 울고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에서 도망치지 않으니,
잊어버린 나의 이름 생각이 나네
한참 넋을 놓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던 우첼로는 깨닫습니다. 그 아이들은 바로, 새장에 갇힌 우첼로의 자아, 우첼로의 내면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이었습니다. 우첼로는 그렇게 ‘내면 아이’를 마주합니다. 그 마음의 파편들은 제 주인으로부터, 제 몸으로부터 너무도 오래 외면당하고 잊힌 탓에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요. 그렇게 오래 조각난 마음의 파편들을 마주하는 일에는 뼈아픈 고통이 수반됩니다. 하지만 우첼로는 더 이상 스스로 찢어 내고 버려 버린 마음의 파편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그제서야,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돌보지 못한 내면의 마음이 새빨갛게 부풀어 올라 스스로 잡아먹히게 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마주함으로 들여다보고, 버려진 마음들을 커다랗게 끌어안으니, 오래된 기억과 이름이 처음처럼 살아납니다. 그 기억은, 나를 둘러싼 시선과 타인의 인정을 ‘위하여’가 아니라, 줄 위에서 가장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나 자신에 ‘의하여’ 매 순간 소생되었던 살아 있음의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오래된 기억이 물어다 준 나의 이름은 바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운명을 타고난 ‘새’입니다.
※우첼로 uccello - 이탈리어로 ‘새’라는 뜻.
이 너른 우주 속
단 하나의 고유한 새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 우첼로는 마침내 강박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제서야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구속이 아닌 자유를 뿌리로 한 노래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가 울려 퍼지자 이내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는 눈처럼 깨끗한 고요가 찾아왔지요. 진실된 영혼의 노래는,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오직 단순하고 투명한 진실 하나를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바로, 내가 ‘나’일 수 있는 힘입니다. 나의 몸짓 하나하나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한 절박한 갈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진실된 소망과 꿈, 기쁨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때, 나는 비로소 날개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력을 거스르는 가벼움 속에서 시간은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전에 없던 시간이 완전히 새로 생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고, 그 용기로 버려진 마음들을 커다랗게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으로 새로이 열린 감각들이 마주하는 세상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테니까요. 이제 우첼로는 더 이상 줄에 매인 피에로가 아닙니다. 줄 위에서도 줄 바깥에서도, 자신이 한 떨기 자유로운 ‘새’로 이 세상에 왔음을 잊지 않는, 이 너른 우주 속 단 하나의 고유한 깃털이지요.
무대가 펼쳐지는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우리들의 꿈
전작 『손 없는 색시』를 통해 인형극의 세계를 그림책이라는 무대 위로 새롭게 구현해 낸 류지연 작가가, 이번에는 쓸쓸한 눈을 가진 피에로 우첼로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전작이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뿌리 깊은 상처를 마주하고 품어 내며 ‘살아감’에 대한 광활한 서사시였다면, 이번 작품은 보다 내밀한 시선으로 한 개인의 자아를 들여다보고 영혼의 목소리를 마주하는 ‘성찰’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첼로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펼쳐진 무대처럼 생생합니다. 가느다란 줄 위에 선 발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는 우첼로의 작은 몸이 한 마리 가벼운 새의 날갯짓으로 거듭나기까지, 작가의 상상력이 한껏 투영된 상징적인 인물들과 무대 안의 작은 디테일들, 그리고 장면 장면 ‘우첼로’의 얼굴과 몸짓에 깃든 영혼은 섬세한 날갯짓처럼 소리 없이 독자의 마음속을 파고듭니다. 우리는 그렇게 작가가 생명을 불어넣은 무대가 다시, 우리들의 삶이라는 무대로 한없이 확장되는 ‘살아 있는 꿈’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작가 소개
글·그림 류지연
생명과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기를 좋아합니다. 예술무대산의 미술 감독으로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해 왔습니다. 작업해 온 인형들 모두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 이야기는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내 봅니다. 그림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린 책으로 『손 없는 색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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