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대교
장면 1
1992년 14대 대선을 1주일 앞둔 12월 11일 아침 부산 초원복국집. 부산의 이 유명 복국집에서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는 망언 “우리가 남이가”가 탄생한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초원복국집 밀회가 있기 두 달 전까지 법무부 장관이었다)이 부산시장·부산지검장 등 부산 지역 기관장 8명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 후보 당선을 위해 힘을 합치자며 했던 말. “우리가 남이가”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권 망언으로 여전히 오르내리지만, 사실 부산의 고유 정서를 대변하는 말은 “우리가 남이가” 뒤에 이어진 김 전 장관의 다음 대사였다. “이번에 (김영삼 후보가) 안 되면 부산·경남 사람들 다 영도다리
에서 빠져 죽자.”
장면 2
2016년 3월 24일. 20대 총선을 21일 앞두고 당내 공천 갈등을 빚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고 돌연 부산으로 내려간다. 얼마 뒤 영도다리 난간에 기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김 대표가 언론에 노출된다. 부산 중구·영도구 국회의원이 제 선거사무소 앞 다리에서 포즈를 취한 게 그리 유별난 행동을 아닐 터이다. 그러나 김 대표가 굳이 영도다리에 올라간 속내를, 부산 사람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다 안다. 부산 사람이 심란한 얼굴로 영도다리에 간다는 건, 빠져 죽을 각오를 했다는 뜻이다. 영도다리의 김 대표는 ‘목숨 걸고 반대한다’고 시위하는 중이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영도다리만큼 자주 등장하는 다리도 없다. 왜 하필 영도다리일까. 부산에 다리가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부산 사람은 굳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는 말을 달고 살았을까. 먼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부산 중구 중앙동과 영도구 대교동을 잇는 영도다리의 공식 이름은 영도대교다. 그러나 부산 사람 누구도 영도대교라 하지 않는다. 영도다리라 불러야 이 늙은 다리에 밴 사연을 겨우 헤아릴 수 있다. 이럴 때 여행기자는 기꺼이 ‘로컬 룰’을 따른다.
MZ세대는 영도 하면 바다 보고 들어선 카페부터 떠올린다지만, 나에게 영도는 애오라지 영도다리다. 영도는 영도다리가 있어 비로소 꼭 가봐야 할 그곳이 된다. 혹시 영도다리 올라가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 9년 전 처음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나는 울었다. 다리가 꿈틀거리자마자 목놓아 울기 시작한 어르신들 따라 나도 엉엉 울었다. 나에게는 영도다리 올라가는 장면만큼 서러운 장면도 없어 지금도 다리가 올라갈 때마다 눈물이 복받친다. 영도다리가 개통한 건, 89년 전 이맘때인 1934년 11월 23일이다. 47년간 누워 있던 다리가 다시 올라간 건, 10년 전 이맘때인 2013년 11월 2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