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세대 인테리어디자이너 박재봉 그의 공간속으로 30_ 커피숍 '심지' (1989년 作)
박재봉(1939.2.2~2022.8.23/헨디환경디자인)
_
2021년 기준으로 대구의 커피전문점 수를 인구 대비 커피전문 점포 수로 따지면 약 922명당 1점포로 전국 1위이다. 이처럼 대구에 커피전문점이 많은 이유로는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대구의 경제 구조상 비교적 소자본으로 창업이 쉬운 업종이 커피전문점이라는 경제적 원인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당시 커피문화가 비교적 일찍 활성화된 역사적 원인, 그리고 내륙지역의 날씨 특성상 여름과 겨울이 길기 때문에 실외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기후적 원인과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눌만한 거실을 대신할 거리의 작은 공원과 벤치의 부족이라는 도시적 원인이 대구 커피문화 발달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대구의 첫 다방은 1936년 즈음 아카데미 극장 옆 골목에서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연 ‘아루스’를 시작으로 1947년 1월 개업한 '백조다방'은 대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지역민과 동고동락한 대표적인 커피점이었다. 대구 다방역사는 1950년대 다방 전성시대를 거쳐 70~80년대 음악다방, 90년대 즈음부터 본격적인 커피숍 시대가 열렸다.
이 무렵 동성로 '늘봄(83년)'은 대구의 첫 원두커피전문점 시대를 열었으며 이 흐름을 이끈 박청강여사는 대구 다방문화의 산증인이자 지역 경양식 업계에서 대모와 같았다. 그녀와 헨디환경디자인과의 사업적 연은 1981년 '이탈리아노'에서 시작하여 '늘봄 1, 2'를 거쳐 '풀 하우스'까지 이어진다.
또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영화감독 배용균 감독은 물론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커피숍 ‘심지’는 1990년대 대구 문학 다방의 대표격이었다. 1989년에 문을 연 동성로3가 (당시 제일서적 뒷골목 맞은편) 지하에 위치했던 260㎡(78.7평) 규모의 커피숍 '심지'는 전통가옥의 채 개념을 실내공간에 대입하여 마당과 이웃이라는 키워드로 풀었다. 시멘트벽돌을 두 쪽으로 쪼개어 깨진 거친 부분을 틈을 주지 않고 이어 붙이고 수평줄눈을 파고 그 위에 흰색 본타일 뿜칠과 수성 무광 페인트로 도장을 하여 마치 분통같이 하얀색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황토색으로 엑센트를 주었다. 홀 중앙은 검은색 천연 슬레이트를 깔고 테라스용 의자를 자유롭게 배치하여 자연스러운 마당의 이미지를 나타내었으며, 마감재를 의도적으로 단순화시켜 거친 질감 속에 질서, 방향, 영역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늘 그의 공간은 유행을 주도하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웠고 전통을 기반으로 실험적이면서도 늘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사라져버린 공간이지만 다녀간 이의 마음속에 남아있다면 그 공간은 가치 있는 생명을 갖지 않을까? 오늘날 대기업 계열의 프랜차이즈와 대구 출신 토종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대구에 커피문화를 중심으로 이 시대의 가치 있는 공간디자인은 어디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