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남성은 왜 '빛의 혁명'에서 띄엄띄엄 보일까 / 전지윤
12.3 쿠데타 이후에 펼쳐지고 있는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위한 거대한 투쟁의 물결을 많은 이들이 '빛의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빛의 혁명'의 주요 참가자와 구성원들이 2030 여성들이라는 것은 여러 통계와 경험적 사실들로 확인된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2030 여성들의 기여와 활약에 큰 감동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분명 이들은 역사적인 기록과 평가로 남을 이번 투쟁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이들의 참가와 주도성은 '빛의 혁명'을 더욱 활력이 넘치는 축제처럼 만들어서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길을 넓히는 효과를 냈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참가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더구나 상당수의 2030 여성들은 윤석열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에만 머물지 않고, 이후에 남태령에서 농민들과 연대하는 행동,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투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집회 등에도 적극 참가하면서 다양한 쟁점과 요구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던 '청년', 더욱 차별받고 있던 '여성'들이 투쟁에 앞장서는 모습이 더 많은 감동과 찬사를 불러오고 있다. 물론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서 어떤 역사적인 격변의 현장에서도 청년들이 행동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도 지금 2030 여성들의 참가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같은 세대 남성에 비해서 훨씬 더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된 집회 참여 통계에 따르면 12월 7일 탄핵안 표결 당시 20대 여성은 여의도 집회 참여자의 18.9%로 가장 높았고, 30대 여성도 10.8%였다. 반면에 20대 남성은 전체의 3.3%, 30대 남성은 5.3%에 그쳤다. 이러한 극명한 격차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와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가장 어처구니없는 평가는 스스로 청년 남성을 대변한다고 자처해 온 신우파 정치인 이준석 의원이 제시한 '청년 남성들은 군대에 가 있고, 청년 여성들은 치안이 좋아서 참가했다'라는 평가다. 너무 한심하고 수준이 떨어져서 평가할 가치도 없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준석 의원 본인은 치안도 좋은 집회에 왜 참여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그보다는 청년 여성들은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여성 차별적 정책에 분노해 왔고, 정보 접근성이 높고, 다양한 방식의 소통과 공동체 문화에 익숙하다는 분석이 더 타당하다. 그 근거로서 독서 인구에서도 청년 여성들의 비율이 매우 높고, K팝 팬덤 문화나 야구팬 중에서도 청년 여성들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등이 제시된다.
반면 청년 남성들은 정보 접근성도 떨어지고 독서나 콘서트보다는 게임 등에 치중하면서 소통과 공동체 문화보다는 개별화가 더 특징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분석들은 일리가 있지만, 좀 더 긴 시야에서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먼저 2008년 '촛불시위'나 2016년 '촛불 혁명'과 비교해 '빛의 혁명'에서 청년 여성들의 참가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지적들이 있다.
세 시기에 있었던 대표적인 대규모 집회의 참가자 구성을 비교한 BBC 분석을 보면 청년 여성의 비율은 거의 그대로이거나 약간 늘어난 수준이다. 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년 남성 참가자 비율의 극적인 감소이다. 2008년에는 13.7%, 2016년에는 12.3%였던 20대 남성의 참여율이 이번에는 거의 1/4이나 줄어들었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것은 50대 이상 여성과 남성들이 지난 두 번의 투쟁보다 이번에 거의 2~3배나 늘어난 참여율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50대 이상 남성들은 2030 여성만큼이나 이번 '빛의 혁명'의 주요 참가자로 나타난다. 윤석열의 쿠데타가 중장년 세대에게 1980년대 군부독재와 쿠데타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면 청년 남성들의 참가는 왜 이토록 극적으로 줄어든 것일까? 먼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득세하는 신우파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 청년 남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우파는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주요 무기로 삼아서 청년 남성들에게 파고들어 갔다. 그래서 2016년 촛불혁명 이전의 '이명박근혜' 시대에도 청년 남성의 보수화는 존재했다.
당시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70만이라던 '일베사이트'에서 청년 남성들이 차별과 혐오를 유머와 놀이로 소비하는 행태는 사회적 이슈가 됐다. 2014년에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는 젊은 남성들의 '폭식 투쟁'도 충격을 줬다. 다행히 2016 촛불의 거대한 바다 속에서 이런 흐름은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다.
촛불이 낳은 성과와 자신감은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목소리에 더 큰 힘을 불어넣었다. 그 힘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페미니즘 재도약(리부트)'의 디딤돌이 됐다. 이런 흐름은 2018년 미투운동에서 용기 있는 고발과 의미 있는 연대로도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청년 남성들도 이런 물결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 물밑에서는 2016년 촛불혁명에 대한 반격(반혁명)의 기회를 노리며 재결집하고 있는 기존 우파와 신우파의 다양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2019년 검찰-언론의 연성쿠데타(소위 '조국 사태') 때부터 본격적으로 청년 남성들을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청년 극우 유튜버들이 본격적으로 청중을 늘려간 것도 이 시기였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무임승차를 부추기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공격했고, 대표적으로 여성할당제 등을 문제 삼았다. 가장 주도적으로 프레임을 짠 것은 바른미래당의 이준석과 하태경이었다. 바른미래당은 청년 남성들 속에서 민주당을 넘어서는 지지율을 얻기 시작했고, 나중에 '국민의힘'으로 통합됐다.
재구성된 우파의 새로운 무기는 첫째 '공정과 상식'이었고, 둘째는, '반페미니즘'이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와 위선적 586들이 내로남불을 하면서 여성들만 챙기고 남성을 역차별한다'라고 떠들었다. 청년 남성들이 다수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커졌고, 202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청년 남성들의 상당수가 오세훈 후보에 몰표를 보냈다.
물론 우파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서 나타난 부족함이나 한계,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이 낳은 불만을 이용했다. 그것을 혐오의 불쏘시개로 삼아서 촛불혁명이 낳은 변화를 파괴하려 했다.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것은 일베사이트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는데, 이제 '문재앙', '대깨문'은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용어가 됐다.
단지 일베사이트나 에펨코리아 같은 곳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어디서든 그럼 혐오 표현들이 나타났다. 2016년 촛불혁명에서 박근혜 탄핵을 위해 다양한 세대와 젠더가 모두 힘을 모았던 '촛불 연합'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무너졌다. 이러한 반혁명은 반페미니즘적 백래시(반동)와 함께 진행됐다.
그 절정은 부활한 우파가 검찰-언론 연성쿠데타의 지도자인 윤석열을 후보로 내세워 '멸공'과 '여가부 해체'를 말하며 권력을 탈환한 2022년 대선이었다. 당시에 윤석열의 득표율은 20대 남성에서 58%, 여성에서 33.8%였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20대 남성에서 36.3%, 여성에서 58.7%였다.
이에 따라서 대선 패배 이후에 오히려 민주당 당원은 청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며 민주당에 더 강한 개혁적 정책을 요구하는 이런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부분의 언론은 '개딸'이라고 낙인찍으며 혐오하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그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지난 2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와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들이 있었고, 그것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20대 남성의 31%가 국민의힘을, 17%가 개혁신당을 지지한 반면에 20대 여성의 51%는 민주당을, 18%는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물론 이 통계를 보면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2030 남성의 일부가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과 지지는 2030 여성들처럼 민주당이나 진보적 야당들로 이동하는 경향만이 아니라 이준석당 같은 새로운 우파 정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신우파의 혐오정치와 갈라치기가 여전히 이들에게 작동하는 셈이다.
윤석열 정권을 만드는데 앞장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권력 다툼 끝에 탈당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었듯이, 윤석열 지지를 철회한 2030 남성들의 일부는 여전히 보수우파 정치세력의 지지자로 남아있다. 12.3 쿠데타 이후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윤석열과 '손절'하고도 광장의 투쟁과는 거리를 두고 있듯이 청년 남성들의 상당수도 광장으로 나서지는 않고 중간에서 관망하고 있다.
반면 대선 때도 윤석열 후보를 반대했고, 민주당이나 진보적 야당들을 지지하며 지난 2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와 정책을 반대하는 여론의 중심에 있었던 2030 여성들은 거리로 나서서 자연스럽게 '빛의 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청년 여성들의 행동에 감동하며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중간에서 관망하는 2030 남성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더 많이 '빛의 혁명'에 동참시킬지도 고민돼야 한다. 첫째, 청년 남성들의 상당수가 지금처럼 이준석 같은 신우파 정치인의 지지기반으로 묶여있거나 이끌리도록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혐오정치와 갈라치기를 무기로 삼는 이준석 세력은 얼마든지 다시 국민의힘과 재통합해서 반동적 우파의 부활에 함께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신남성연대'는 전광훈 목사의 태극기부대와 융합하면서 내란수괴 윤석열을 수호하는 집회에 청년 남성들의 동참을 선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동적 우파가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청년 남성들의 결합과 동참은 '빛의 혁명'을 더 강력하게 만들며 승리를 앞당기는 데도 필요하다.
2016년 촛불혁명 당시에도 세대, 성별, 지역 등을 넘어선 단결과 연대가 기득권 카르텔을 무너뜨린 핵심 동력이었다. 더구나 이것은 한국 사회 기득권 카르텔의 핵심에 있는 가부장적 성차별 구조와 문화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주장한 위대한 페미니스트 사상가 벨 훅스도 이것을 강조했다.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간에 적개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또 하나의 격투장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여성 운동가들은 성차별에 저항하는 투쟁에 남성을 참여시킬 새로운 전략을 개발해야 할 때가 왔다. … 성차별적 억압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주된 행위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들의 의식과 사회 전체의 의식을 변혁시킬 책임을 맡아야만 성차별적 억압은 사라질 수 있다."(<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청년 남성들의 어떤 처지와 불만이 그들을 뒤틀린 방향으로 이끄는지 살펴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 출발점일 수 있다. 동시에 여성혐오를 부추기며 갈라치기에 매달리는 이준석 같은 정치인과 혐오정치의 플랫폼 구실을 하는 에펨코리아같은 곳을 비판해야 한다. 청년 남성들의 불만을 살피는 것과 그들이 이끌리는 우파적 대안을 비판하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
나아가 성별을 떠나 대부분의 청년을 서로 불신하며 각자도생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제도들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이미 자신의 형제나 자매, 친구나 연인을 설득해서 거리로 나오고 있는 수많은 청년 여성들에게 요구할 과제는 아니다. 먼저 거리로 나서고 있는 청년 남성들에게 '왜 너희만 왔냐'라고 닦달하거나, 나오지 않는 청년 남성들을 멸시하고 조롱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불평등과 차별을 기반으로 소수자 혐오와 갈라치기가 가능한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것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 기성언론, 지식인, 민주진보 정당들과 사회운동부터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보면서 깊이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윤석열 수호'를 외치는 노년층의 태극기 집회와 행진이 사라진 자리와 공백을, 청년 남성들의 지지를 받는 신우파가 메우기 전에 말이다.
전지윤 <민들레> 편집위원 misotolenin@gmail.com
입력 2025. 01. 06. 11:30 수정 2025. 01. 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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