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시장 선거를 70여일 앞두고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성추행 사건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 정치권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가 물러난 것은 성추행 사퇴적 의미도 있지만 한국 좌파 운동권의 한계보를 차지했던 PD계열의 몰락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진보 정당의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인 김 전 대표는 PD(민중민주)계열의 대표적 인사다. 1970년 용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학사로 졸업한 김종철은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대장정’이라는 운동권 동아리를 만들었고 1999년 권영길의 권유로 국민승리 21에 입당하였다. 극단적 삶을 선택한 포스트 노회찬의 대표주자이였고, 노회찬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정의당 당 대표 선출된 후부터 문재인 정권이 추진중인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오는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 민주당을 “성비위를 저지른 정당”으로 지칭하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밝혀왔다.
김 전 대표는 지난 22일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 “정의당이 중심을 잡고 정책적으로 실현을 해 성과를 내는 것이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 단일화를 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범(汎)여권`이 아닌 `진보 야당`”이라고 한 김 대표가 더불어민주당과의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하고 다시 한 번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그는 당 대표 취임 일성으로 선명한 진보정당으로의 독자노선을 예고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차별정당, 비판할 것은 강력히 비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표가 PD노선이 아닌, 문재인 좌파 정권의 핵심을 구축한 NL(민족해방)노선을 걸었다면, 문 정권과 차별화를 견지한 독자 노선과 비판과 갈등과 마찰을 빚지 않았을 것이란 견해다.
집권당에선 “보수우파 야당보다 정의당이 더 집권당 발목을 잡는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민주당은 정의당 죽이기 호재를 맞은 셈이다.
친문세력들도 합세해서 정의당을 공격중이다. 친문 성향 커뮤니티와 SNS(소셜미디어)에는 강성 친문 지지자들이 정의당을 ‘저격’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정의당의 씨를 말려, 정당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이 공식 논평에선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한 데 이어 강성 지지자들은 더 나아가 “이참에 정의당은 해산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작년 이후 지자체장 성 비위와 중대재해법 처리 지연 문제 등으로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던 정의당을 향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의당 공격의 그 감추어진 이면에는 PD세력들의 씨를 말리겠다는 의도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좌파 정권은 주사파 정권이다. 청와대는 물론 입법, 행정, 사법부 전반에 걸쳐 주사파 세력들이 장악했다. 현 여권에선 전대협 1기 핵심멤버였던 김태년 민주당 원내총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인영 통일부장관, 우상호 의원, 윤건영 의원, 오영식 전 철도공사 사장·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이 전대협 출신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후 청와대 1급 이상 비서진 63비사관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 63명 중 22명(35%)인 것으로 나타났다. NL 주사파 세력들이 청와대를 장악했고, PD는 소수파에 머물렀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대한민국이 종북 주사파 세력들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며 “주사파 척결만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조 대표가 문재인 좌파 정권을 향해 공격할 때 빠지지 않는 메뉴가 ‘주사파 정권’이다.
NL(민족 해방)과 PD(민중 민주)는 같은 운동권이지만 지난 40년간 갈등과 대립을 해왔다. 지금의 좌우, 여야 갈등은 저리 가라다.
PD는 노동자·농민이 중심이 되어 기득권 세력을 타파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NL은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남한 적화 전략인 김일성의 남조선혁명론 등이 바탕이 된 이론이다.
NL은 한국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룬 다음에 김일성·김정일이 이끄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좌파는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이나 공산주의 계열을 의미한다. 이들의 이념적인 출발은 민중(People)이고, 방식은 다르지만 부의 공정한 분배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NL(주사파)은 이른바 주체사상을 표방한 왕조적이고 세습적인 북한의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이다. 그러므로 '종북’은 좌파가 절대로 될 수 없다.
PD 계열은 한국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자본주의하에서의 노동·자본 간 계급문제에 주목했다. NL과 달리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뒀다.
NL과 PD는 이념노선 뿐만 아니라 정당 창당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양 측은 운동권의 물과 기름이었다. 2000년대 들어 NL과 PD는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운영과정에서도 크게 충돌했다.
민노당은 2000년 노회찬·심상정 등 PD계가 민노총을 기반으로 민노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이후 NL계가 대거 민노당에 들어와 이석기·이정희 등이 당권을 장악하면서 PD계와 불화를 빚었다.
이후 두 그룹은 2006년 10월 발생한 일심회 사건으로 갈라섰다. 민노당 중앙위원 등 NL계 간부들이 북한에 정보를 제공한 사건이다. 민노당은 이들에 대한 징계 논의를 했지만, NL계가 국가보안법은 악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반대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심상정·노회찬 등이 탈당해 2008년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이후 2011년 이정희·이석기 등 민주노동당계와 유시민·천호선 등 국민참여계, 심상정·노회찬 등 진보신당 탈당파가 모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 선거 의혹에 따른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처리를 놓고 양측이 대충돌을 벌이면서 다시 PD 진영이 당을 떠났다.
이후 NL이 중심이 된 통진당은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에 휘말려 헌재로부터 정당 해산 선고를 받았다. 지금은 PD계가 중심이 된 정의당과 NL계가 다수인 민중당으로 나뉘어 진보정당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의당은 노회찬 의원 자살과 그 후 심상정 전 대표가 당권을 장악한 후 그 후속 신진 세력 핵심이 김종철이었다.
정의당 PD계 계보를 이어온 김종철은 진보 좌파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재벌에 비판적이며 경제민주화를 강하게 지지해 노회찬과 비슷한 성향의 정치인이다.
민주당과 친문세력들이 “정의당 애들 씨를 말려버리고 싶다”는 비판은 결국 선거 때마다 NL이 장악한 민주당과 PD가 장악한 정의당간 진보 표를 두고 서로 힘 겨루기를 해왔다. 집권당이 적지 않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여야 간 '박빙'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번 선거서 민주당과 정의당 표가 갈라질 경우 결국 야권이 당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민주당과 친문세력들이 김종철 성추행 사건을 호재로 삼아로 정의당을 공격하는 것은 한편으론 정의당이 차기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마라는 견제가 깔려 있다.
또 한편으로는 PD계열의 씨를 말려서 문재인 좌파 정권을 장악한 주사파 세력들이 좌파의 한 축인 PD계보의 비판과 견제없이 자신들만의 친북, 반미정책을 밀고나가겠다는 저의도 묻어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양측은 본격 노선논쟁을 펼쳤다. 80년대 중반 한국의 학생운동 진영에서 제기된 이념 논쟁. ‘사회구성체 논쟁’(사구체 논쟁)이다.
사구체 논쟁에서 촉발된 것으로, NL·PD간 대립과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한국사회 운동세력 내에 커다란 구분선 중 하나이다. 문재인 좌파 정권이 대한민국 역사와 체제를 바꾸려는 것은 종북사관이다.
종북사관 주사파 세력들은 주체사상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종철 성추행은 주사파들에겐 또 한명의 운동권 천적이 사라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