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원이 쓴 삶이란 무엇인가 란 뜻의 글을 읽고
못난 글로 화답해봤는데
이어서 다양한 화답들이 이어졌다.
이게 글을 나누는 의미가 아니던가.
삶의 의미를 자못 학문적으로 풀이해준 분도 있고
삶이란 어울림이란 분도 있던데
삶이란 사랑의 기록이란 분도 있더라.
사랑, 그 오묘한 속내를 한 두 마디로 다 표현할 수야 없지만
그 생각의 일단을 표현해본 못난 글을 아래에 붙여본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이화동의 어느 예식장을 나와
혜화동 지하철역으로 가다가
네거리에서 왼편으로 돌아서면
고산孤山 윤선도의 시비詩碑와 만나게 된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맑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 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쉽게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 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光明)이 너 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전문)
조선 선조 대에 태어나 현종 대까지 살면서
주옥같은 시가를 지어낸
우리나라 시가문학의 비조 고산 윤선도.
산중신곡山中新曲에 들어있는
그의 오우가를 읽어 내려가노라면
마치 탈속脫俗하여 자연과 벗하며
선경仙境에 들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벗이란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하게 사귄 사람을 이른다.
이를 다른 말로
붕우朋友, 우인友人, 친구, 동무라고도 하며,
벗 따라 강남 간다고도 하고
살면서 진정한 벗 하나 얻었다면
산 보람이 있다고도 하니
모두 벗을 귀히 여기는 마음에서
생겨난 말들이라 하겠다.
익자삼우益者三友라 했으니
사귀어서 유익할 벗을 정직과 신의와 지식을
그 품성으로 들고 있다.
고산은 아마도 속세에서는
진정한 벗을 만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탈속해 다섯 벗과 즐기면서
선경에 들었을 터이다.
팔십 평생을 살아가면서 당쟁과 모함에 휩쓸려
유배되기를 여러 차례 했으니
그 참담했을 지경을 알 수야 없어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벗이란 말 중에서 동무라고 하면
어렸을 때의 벗을 떠올리게 되니
아무런 잇속이나 헤아림 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가까이하던 사람을 이른다.
친구라 하면 어느 정도 인간성이나
사회성에 대한 인식을 한 뒤에
가까이하게 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나 사람 이외의 것에서 가까이하면서
마음을 달래거나 고양시키는 대상을
친구나 벗이라 이르기도 하는데
말벗이나 글벗, 또는 취미의 대상이 되는
시서화악詩書畵樂
등의 기예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경향들은 전통적인 문화생활에서
비롯되는 것들이지만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부터는
가까이한다는 말로
사랑한다거나 애인이란 용어도 쓰이게 되어
표현의 내용과 양식이 다양해졌다.
사람을 사랑함이 애인愛人이요
말을 사랑함이 애마愛馬요
강아지를 사랑함이 애견愛犬인데
포괄적으로는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보살피며 즐기는 일을 애완이라 말하기도 한다.
요즘엔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가까이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따라서 소위 사이버 공간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른 네티즌들과 교우交友하는 일도 흔해졌다.
“애인이 있어요?”
어느 회원과 채팅을 하던 중
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우선 없다는 대답을 했지만
내가 애인이 있는 것처럼 처신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애인은 통상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즉흥적으로 대답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랑이란 애틋하게 여기어
위하고 아끼는 일이거나 그런 마음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을 공경하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라 했으니(敬天愛人)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운 데에 미움이 없고
미운 데에 고움이 없다는 것이니(不可憎, 不可愛)
고운 사람 미운 사람 가릴 수밖에 없고
고운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다.
보편적으로 결혼하기 전의 젊은 시절에
특별히 둘만이 사랑하는 이성을 애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결혼하여 한참이나 지난 중년시절에는
애인이 있을 수 없는 것일까?
헬라어는 우리와 달리
사랑을 네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다 한다.
에로스는 본디 희랍의 신 에로스에서 나와
사랑의 뜻을 가진다.
플라톤이 최초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말로
관능적인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예지적인 아름다움으로 나가는
이데아 추구의 심기(心機)를 말한다.
아가페는 신의 사랑, 즉 신이 죄인인 인간을 위해
자기를 희생으로 하여 긍휼히 여김을 이르며
예수의 사랑으로 집약할 수 있는 사상을 말한다.
스톨게는 가족생활의 희비 애환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필리아는 교제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친구 간의 우정을 설명할 때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 글벗들이 모두 나의 애인인걸요.”
이렇게 대답했더니
글벗 말고 애인이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
에로스의 애인은 있을 수 없겠지만
있다 하더라도 그걸 말하면 경을 칠 일이요
아가페의 애인은 가끔씩 그렇게 흉내나 낼뿐
늘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스톨게의 애인은 내 가족들과의 관계이니
그걸 물었을 리 없을 것이다.
필리아의 애인은 친구 간의 우정을 말하는 것이라니
덧없는 사이버 세상에서야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생겼다 없어지고
없다가 생기기도 하는 게 그것이 아닌가.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할 것인가?
동산에 달 오르면 그도 벗이라 할 것인가?
속세에 찌든 부질없는 객이야
선경에 든 시선詩仙을 넘겨보다가 돌아설 뿐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네 가지 고통 중 하나는
애별리고愛別離苦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따른 고통을 말하는 것일 테다.
유명을 달리해 사랑을 잃는 것이야
어찌 그 아픔을 말로 다 이르랴.
그럼에도 누구든 그 길을 한 번은 가야 하느니
이런 생각에 잠기노라면
사랑하는 동안에도 숙연해질 때가 있다.
이와 달리 하늘 아래 함께 살아가면서
이별하는 사랑도 있으니
한 사랑이 다른 사랑을 버리고 돌아서는 일이다.
더 큰 사랑을 찾아가는 쪽이야 좋을 일이겠지만
버림받는 사랑은 큰 고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또 신중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홀로 태어났으니
사랑을 얻으면 덤이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얻은 사랑을 잃는 것은 본전이 아니던가.
사랑의 아픔을 누가 모르랴.
애별리고를 벗어날 수 없다니
그렇게 자위나 해보는 것일 뿐이다.
사랑이 떠난 자리엔 미움이 깃들기도 한다.
마음에도 평형의 원리가 적용될 터이니
무엇인가 깃들 게 아니던가.
빈자리엔 증오의 독버섯이 돋지 않도록
레테의 강물로 채우고 새로운 인연을 심어야 하리라.
나는 인연을 저버리기야 아니하지만
때론 만난 인연을 잠시 쉬게 하고
이런저런 인연을 새로 찾아 새로 어울리기도 한다.
잠시 쉬는 인연은 무언가 기록으로 남아
가끔가끔 열어보기도 하지만
새로은 인연은 색이 바라지 않도록 다독이기도 하느니
그게 나의 살아가는 과정이겠다.
첫댓글
윤선도와 같은 양반들은 유유자적하며
풍류나 즐기는 신선놀음을 했지요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놀면서 잘 살았지요
조선을 지탱한 건 수많은 노비들입니다
조선초에는 인구의 90% 조선말에는 70%
그들의 짐승같은 삶으로 조선이 지탱됐지요
일제가 들어와 성씨를 만들게 했지요
모두 주인양반들 성을 따릅니다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모두 2만여개의 성씨가 생긴데 반해
우리는 겨우 300개가 채 안 됩니다
모두 양반집 족보를 신주단지처럼 모십니다
없던 성씨가 거저 새로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제사때마다 싸웁니다
진설과 제례를 놓고...
어차피 어깨너머로 배운건데 다 그게 그겁니다
퇴계 이황이 죽은 후 20만평의 토지와
400명 가까운 노비를 상속합니다
분재기에 상세히 적어 5남매에게 줍니다
노비숫자를 늘리는 재테크도 전수하지요
조선의 선비들과 양반들
모두 무위도식하며 노비들을 등쳐먹은
못된 놈들입니다. 결국 조선이 망했지요
세종이 만들었던 한글도 방치되고
무식한 아녀자와 노비들이 씁니다
양반놈들은 모두 한문을 썼지요
한글을 갈고 닦은 건 일본사람들입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생기지요
현대적 한글로의 재탄생입니다
지금까지도 한문을 고집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국한문혼용을 주장하기도 하지요
일본을 예로 들면서...
일본문자생활은 한자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한자를 안 써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동음이의어?
글 문맥을 보면 다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요즘도 한시를 배우고 식자연하는 이들 있습니다
그런 한시는 현대 중국인들도 모릅니다
모두 간자체로 구어체로 씁니다
임진왜란시 경복궁이 불탄 것도
성난 노비들이 달려가 장예원에 지른 불때문이지요
선조가 서울을 채 빠져 나가기도 전에
이미 비가 오는 도망길에 불길이 솟아 오릅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양반들이 한 첫번째 일이
장예원의 노비문서를 복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명나라의 구원군이 없었다면
그때 이미 우리는 일본이 됐을 것입니다
이후 또다시 병자호란이 나지요
대비없이 군역을 면제받은 양반놈들
국방이랄 것도 없이
전쟁나면 바로 농민들과 노비들을 징집했지요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악습은 고스란히 전승되고
돈없고 빽없는 집 자식들만 군대가지요
여자들은 군 가산점제 결사반대 하구요
떡해먹을 우리 조선족입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맞아요.
그런점이 있지요.
저도 김수로왕과
김유신장군의 후손이라지만
그냥 그런줄 알고 삽니다.
@도반(道伴)
김수로왕이나 김유신 장군 후손 중에
가짜가 90%정도라고 합니다
일제가 들어와서
조선시대 노비들을 1차 해방시켰구요
6.25전쟁이 터지면서
제 2차 노비해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돈없으면 노비신세지요
한국인들 대부분은 그런 점에서
일본과 김일성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아니었다면 아직도
조선시대 노비제도가 존속되었겠지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노비후손입니다
특히 집성촌들이 그렇다고 합니다
이제는 주제파악을 해야할 때입니다
@청솔 네에, 그렇군요.
애인 있어요?
그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었어요
젊은 세대 청년이었는데요
남편이 있는 줄 알면서 그렇게
묻길래.. 아뇨? 했더니
요즘엔 애인 따로 두고 만나던데요?
해서 놀랐었습니다.ㅎㅎ
사랑 ..
혹여 결과가 상처로 남을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그럴 것 같죠.
에휴 세상 뭐 있나요?
사랑만이 제 가슴을 뛰게하는
유일한 축복입니다
한 남자를 사랑함.
그것이 강물처럼 길게 흐른다면
최고 👍 겠어요
친구는 그냥 친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 주시니
참 좋아요 😀
문학향기 가득한 님의 글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
댓글도 재미있네요.ㅎ
피천득 님의 수필집 '인연' 에는
이런 귀절이 나오지요.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구름이 뭉쳤다가 흩뿌려지듯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연을 스쳐
지나쳤을까요.
다시 만날 줄 알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는데
영영 못 만나고.
귀한 인연을 만났는데도
상처 줄까봐,
이별의 고통이 무서워 일부러 멀리 하지요.
지나고 보면
모두 소중한 인연이었는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지금 옆에 있는 인연을 소중히 하렵니다.
'얻은 사랑을 잃는 것은 본전.'이라는 말씀.
부처님 가르침 같습니다. ㅎ
사노라면
고운인연을 알아보지 못한채 지나치기도 하고
떨어내야 할 인연에 묶여 아파하기도 하고
내것이 아닌 인연에 매달려 가슴앓이 하기도 하는데
지금 옆에 있는 인연이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게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