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하인드 스캔들
# 03.
"싫어."
아침부터 높은 언성이 오고 간다. 한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왜요? 바람도 쐬고 나가요."
은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아를 데리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에만 갇혀있는 것은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나가기를 극도로 꺼리는 한아에게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싫다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건데요? 평생 이럴 거예요?"
"내버려둬."
"그렇겐 못하죠."
한아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둬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은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겉모습만 보고 그의 예의바르고 단정한 것에 홀려 속아넘어가기 쉽지만 은준은 진정한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의도한 것이라기 보다는 어렸을 적부터 집안에서 배운 교육으로 자연히 몸에 베인 것이었다.
"귀찮아."
"나이가 몇인데..20대 맞아요?"
장난끼가 스며들어 있는 말투로 묻는 은준.
"나이하곤 상관없어."
한아는 간략하게 답하고는 소파위로 아예 드러누워 버린다. 쿠션을 하나 껴안고는.
"너무 무방비 상태인 거 아니예요?"
은준은 한쪽에 서서 한아를 조르는 것을 중단하고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곧 짖궂은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는다.
"뭐가?"
"지금 현재 한아씨 상태요."
"뭐?"
한아는 황당한 은준의 말에 상체를 일으켜 그를 쳐다봤다. 은준은 묘한 한아의 자세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타이트한 짧은 원피스 차림의 한아는 화보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듯 했다. 한쪽 다리를 다른쪽 다리위에 올려놓고 꼬운채로 누운 그녀는 훙분히 매혹적인 자태를 내뿜고 있었다.
"흠흠..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러지 마요. 특히 남자 앞에서는."
"뭐라는 거야?"
한아는 알 수 없는 은준의 말에 짜증을 내며 도로 누웠다.
"정말 안 나갈 거예요?"
"안 나가."
"이래두요?"
"아악- 뭐하는 거야?!"
예기치 못한 은준의 공격이 시작되자 한아가 몸부림을 쳤다. 소파가 들썩일 정도로 그녀는 들썩거리며 움직여대고 있었다. 은준의 손가락이 무자비하게 한아의 옆구리를 간지럽히자 발악을 해대는 한아였다.
"이래도 안 나가요?"
"그,그만..아하..하..해."
은준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한아의 입가에선 의도하지 않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아가 고분고분 따라나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기에 조금의 자극이 필요했다. 머리를 굴리다 떠오른 묘안이 바로 감지럼태우기 공격이었다. 먹힐 지 안 먹힐 지 어느쪽도 해보지 않는 이상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뾰족히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소파위를 뒹굴다가 아래로 쿵- 떨어져버렸다. 떨어진 것까진 좋았는데 은준의 위로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마치 한아가 은준을 덮치는 듯한 야릇한 포즈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은준의 탄탄한 가슴팍에 코를 박아서 슬슬- 문지르면서 몸을 일으키다가 그의 근육이 붙은 가슴팍에 손을 댄 한아. 무신경한 것인지 의식을 하지 않던 한아는 반쯤 몸을 일으켜 일어나려다 그와 눈이 부닥치자, 그의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는 자신의 손을 허둥지둥 재빨리 떼어낸다.
"유혹한 건 한아씨예요."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입꼬리를 말아올리더니 한아가 앗 할 틈도없이 허리를 껴안아버린다. 그로 인해 다시금 그의 품안으로 직행하게 된 한아는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었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몸짓은 은준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다.
"숨 막혀.."
은준을 그야말로 한아를 으스르질 듯이 껴안고 있었다. 놓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은준 저도 이런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자라면 무관심하기만 했던 은준이었다. 은준의 재력을 보고 달려드는 그렇고 그런 여자들은 꽤 있었다. 물론 거기에다 훤칠하고 훈훈한 은준의 외모도 큰 몫을 하였다. 한아를 보면 은준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기분 좋다.."
"난 짜증나."
"이대로 조금만 있어요."
"답답해."
은준은 품안에 쏙 들어온 한아가 투정을 부리는 듯한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한아는 한것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었지만 은준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 보였다.
"한아씨한테서 좋은 냄새 나요."
한아의 머리카락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음에도 은준은 그런 것은 개념치 않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뭐야?"
한아의 가라앉은 음성이 들리자 기분좋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은준의 얼굴이 서서히 굳는다.
"원하는 거라니.."
"..자고 싶어?"
바라는 것은 없었다. 은준은 그녀를 안고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달콤함마져 느낄 수 있는 이 감각이 좋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그 이상으로 원하는 것은 없었다. 은준의 한아의 돌발적인 질문에 넋을 잃고 그녀를 응시했다. 한아는 그의 손이 느슨해진 것을 느끼고 몸을 일으켜 옆쪽으로 자리를 옮겨 은준과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은준도 바닥을 짚고 누웠던 몸을 세워 앉으며 한아를 부른다.
"..한아씨."
"솔직하게 얘기해 봐."
단정짓고는 묻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준은 자신을 그런 하찮은 남자로 생각했다는 자체가 언짢았다. 그가 밝히는 남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찝찝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단코 생각지도 않은 일로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했다.
"그렇다면요?"
"..................."
"그렇다고 하면..어쩔 건데요?"
은준은 저 혼자 당하기엔 억울했다. 그의 얼굴에 심술이 일렁이더니 되려 한아를 추궁한다. 한아는 그의 말에 움찔- 하는 것도 잠시 표정을 싹 바꾸고 자조적인 웃음을 걸친다.
"..해 줄게."
전혀 뜻밖의 대답. 한아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잘못 들은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되묻는 은준.
"뭐라구요?"
"하룻밤 보내자고. 원하면."
한아는 남자들이 자신에게 스킨쉽을 하면서 결국에 손에 넣고 싶은 것은 자신을 갖는 것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마
음이 아니라 자신의 몸둥아리. 한아도 어디서 대담함이 나온 것인지 놀라고 있었다.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심경이
반영된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진심..아니잖아요."
"진심이야."
한아의 눈빛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은준은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버렸다.
"후회할 짓 하지 말아요. 틀림없이 그런 말 한 거 후회할 거예요."
"후회는 벌써 하고 있어. 이제 더는 후회할 것도 없어."
"......................."
"내 마음은 텅 비어 있어. 욕심따위 없으니까 후회할 일도 없어."
한아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은준의 마음 따위 가짜라고 생각했다. 어젯밤 안좋은 꿈을 꾸어서일까 한아의 행동은
충동석인 성향이 다분했다. 그녀는 꿈에서조차 치욕스러운 순간을 맞보았다. 그녀 자신이 주인공인 입에 담지도 못
할 비디오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S양 비디오라고 해서 떠들썩했던 당시 그 속의 내용이 꿈에서까지 그녀를 괴
롭혔던 것이다. 아주 훌륭한 기술로 합성이라고 알기도 힘들게끔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영상으로 한아는 쓰디 쓴 맛
을 보아야만 했다.
한아는 최고조로 우울한 상태라 은준이 건들지 말았으면 했다.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은준을 보자 문득 역겨워졌
다. 동영상을 보고 적자라하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과 은준이 같은 류의 인간으로 스크랩되면
서 입에서는 제멋대로 말이 나왔다. 어떤 이가 인터넷을 통해 보낸 말처럼 사라져, 사라져라..사라지고 싶다는 말만
되뇌였다.
'사라지면 편안해 질까..'
은준은 얼핏 보기에도 낯설은 한아를 걱정스럽고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한아씨.."
그의 목소리에 그를 향해 시선을 두고는 한아는 그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찔한 교태로움까지 내풍기
며 그의 허벅지위로 올라가 팔을 그의 목에 가볍게 두르고는 유혹의 몸짓을 한다. 한아가 그의 얼굴을 들게 하고
는 입술로 다가가 그대로 입맞춤을 했다. 저돌적인 한아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리고만 있는 은준을
대신해 한아가 그의 입술을 훑는다. 어느새 틈새로 들어와 혀로 유린을 하자 은준도 한아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뜨겁고 진한 키스를 한다. 한참 후 입술을 뗀 한아가 그를 바라보자 은준은 참기 힘든 욕망에 사로잡혀 허우적댄
다. 한아가 그것을 느꼈는지 자조적인 웃음이 입가에 머문다.
"..어?"
한아가 은준의 상체를 밀어 뒤로 넘어뜨리고는 그의 셔츠 위를 더듬기 시작한다. 단추를 하나씩 풀다가 고개를
숙이고 뜨거운 열기가 은준의 가슴에 닿을락 말락 할 때, 그녀의 입술보다도 어떤 액체가 먼저 닿았다. 은준이 그
느낌에 한아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액체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은준이 놀란 눈으로 멍하니 있다가 한아를 안아들고 소파위에 앉힌다. 가슴이 찌릿하면서 아려왔지만 애써 아무
렇지 않은 척하면서 한아를 응시했다. 여전히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안아 자신에게 기대게 만
들고는 부드럽게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낸다.
은준은 득도 되지 않는 심통으로 그녀를 울게 만든 것이라고 자책을 하고 있었다. 억울한 마음에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맞장구쳐준 자신이 한심했다. 겉으로 날카롭지만 속은 한없이 여리기만 한 한아를 어떻게 하면 좋
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상처받은 조그맣고 불쌍한 강아지같이 커다란 눈을 보거나 지금처럼 우는 모습을 보면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운준이였다. 우는 모습은 처음 대면한 것이지만 가슴이 아픈 것을 느꼈다.
"울지 말아요.."
은준의 목소리가 입김과 함께 귓속으로 파고든다.
"..더러워...더러워 미치겠어.."
한아의 슬픔과 증오심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내가..내가..아닌 것 같아.."
첫댓글 ㅠㅠ한아 불쌍해요..ㅠ
상처가 많은 인물이라 초반에는 아무래도..ㅠㅠ
불쌍...ㅠ.ㅠ
툴툴 털고 일어나게 될 거예요^^;
아 왜이렇게 한아가 불쌍해 보이는지 ㅠㅠ
곧 딛고 행복을 찾을 거예요..ㅠㅠ
어익쿠...왜케불행해하는건가요.ㅠㅠㅠㅠ마녀사냥의폐해죠!!이런게.ㅠㅠ
그쵸..절대적인 피해자죠. 한아만의 행복을 찾게 되겠죠..ㅠㅠ
ㅠㅠㅠㅠ 둘다 볼때마다 가슴이 아프네여.... 잘봣어여~
감사^^ 초반에는 주인공 캐릭터상 어쩔수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