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사지로 기어 다니며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립보행으로 진화를 펼친 후 선사시대의 인간 '몸'은 본능의 최고 가치관이자 삶의 의미였다. 그러나 역사시대로 접어들어 인간이 문화를 만든 이래 지금까지 수 백년 동안 인간의 철학은 오직 '정신'만을 위해 존재하여 왔다. '몸'은 그저 욕망의 대상일 뿐이며 철학의 주제에도 끼지 못하는 천박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최고의 위치에 있던 '몸'은 철저하게 '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강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서양철학의 근원이라 불리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건너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절대적 코기토에 심취해 철학의 역사는 오직 정신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토록 고귀하게만 여겨지고 마치 정신이 죽으면 육체는 아무 쓸 데도 없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철학자들에게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굳이 순수 정신이 어쩌고, 자기 반성이 저쩌고 하는 장황한 설명은 이제 그만 하고 정신이 무엇인지 좀 더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 백년동안 이미 정신은 지상 최고의 위치로 떠받들어 모셔졌기에 그렇게 쉬운 말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저 높은 곳에 고이 모셔진 '정신'을 잠시 지상세계로 끌어내려 본다면, 지상세계로 내려온 정신은 이제야 비로소 "몸" 이라는 것을 통해 발현되고 이해되는 우리에게 조금은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다. 수 백년 동안 저 높은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던 '정신'이라는 고귀한 분을 이해하려면 '정신'을 담는 그릇인 '몸'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철학자 이거룡을 비롯한 몇 분들이 만들어 놓은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한길사)를 통해 우리에게 '몸'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 몸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작은 실마리를 풀어 보자.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는 전체 아홉 개의 작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맨 먼저 동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몸의 의미에서 출발해 서양을 넘어, 좀더 미시적인 관점으로 영화, 의료기술, 미디어, 미술사 등으로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시작은 동양철학의 한 축을 형성하는 인도철학에서 본 '몸의 의미' 라 하여 인도사상사에서 나타나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며 설명하고 있다. 인도사상사에서 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는데, 세계와 몸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흐름과 이 정반대의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두 가지 흐름은 서로 부정하며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 적극 인정하고 때로는 서로 벼랑으로 몰아가는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한다. 좀더 쉽게 말하면 몸 부정의 철학과 몸 긍정의 철학이 공존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측의 흐름은 정치, 종교 등의 내생환경과 맞물려 여성의 지위문제나 불교의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만들게 된다. 결론적으로 인도사상사에서 나타난 몸에 대한 인식은 정신과 조화롭고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하고 이를 통해 인도사상사의 핵심인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가 미학에서 바라본 몸이라는 장으로 중국에서 만들어 조선 최고의 가치관으로 반도를 뒤흔든 유학의 시각에서 몸의 의미를 풀어 보았다. 물론 동양적 사유 구조방식은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일원론이 적용된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시대와 사상가에 따라 몸에 대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본다면, 먼저 자신의 욕망과 관련된 몸을 끊임없이 수행하여 욕망을 부정하고 수신(修身)이라는 절대 위상으로까지 확대시킨 욕망 절제의 미학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궁극에 이르러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욕망긍정의 안신(安身)미학이 있다. 욕망 부정의 수신 미학 관점의 대표적인 인물은 공자로 그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몸은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수신 미학적 관점은 주자학이라 불리며 조선시대의 강고한 유교 흐름을 만들었다. 이후 명대 중기 이후 안신의 철학이라 불리며,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발생한 양명학(陽明學)에서는 기존의 주자학과는 사뭇 다른 '수신'이 아닌 '안신'과 '보신(保身)' 더 나아가 '애신(愛身)'의 미학을 강조하였다. 이는 곧 조선으로 흡수되어 형신론과 풍속화에서 몸에 대한 긍정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수신의 미학과 안신의 미학은 몸과 마음의 서양적 이분법 사고가 아닌 동양적 심신일원론의 관점에서 출발하였기에 그 둘의 차이는 서양에서의 몸에 대한 완전한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몸을 생각하게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아니 바로 '나'인 몸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없이 예법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몸은 그저 욕망 덩어리에 불과하였다. 과거 남성지배주의적 관점과 자연지배적 발상 또한 현재의 '몸'을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정신'에 사로잡혀 현실의 문제를 머리 속으로만 해결하려 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몸'을 천시하지 말자. 저 높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정신'의 위치와 동일한 곳으로 우리의 '몸'을 승격시키자. 그러한 몸철학적인 발상만이 현실과 사이버세계를 혼동하는 세대들에게 '접속'이 아닌 '접촉'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급하게 내는 것이지만 앞의 내용과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올리시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조별과제물도 미제출이시네요. 일단 개별과제물은 [3]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