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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 박춘 이야기
임진왜란에 사야가(김충선金忠善) 처럼 일본군에서 조선군으로 투항한 장수가 있는 반면에 조선인으로 일본군에서 장수가 된 사람(박춘) 이야기도 있길래 올립니다.
일제시대에 왜놈보다 왜놈 앞잽이가 무섭고
육이오 때는 빨갱이 보다 지역 빨갱이가 무서웠다듯이
임진왜란에도 왜군보다도 박춘 같은 부역자가 더 무서웠을 것입니다.
원본 글쓴이는 백사 이항복(李恒福)인데 그런일도 있었더라고 하면서 기록해 놓은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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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박춘의 인생유전
- 캐나다 앨버타주 신문 _ CN드림 -
박춘은 재인(才人)으로 전라도 임피에서 박세동의 아들로 태어났다. 재인이란 천민의 일종으로 곡예(曲藝)·가무(歌舞)·음곡(音曲) 등을 일삼던 광대로 일정한 거처나 재산이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온갖 재주를 부리거나 풍악을 하고 잡가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박춘은 임진왜란이 나자 충청도 금산 전투에 참전했다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였던 박춘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모르지만 왜군의 장군이 되었다. 그의 휘하에는 1,000명의 부하가 있었으니 중간 지휘관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초기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적을 막을 때 병력이 300명 이라고 하니 1,000명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었으니 포로 출신으로 지위도 꽤 높았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정유재란 때 박춘은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옛집은 흔적만 있을 뿐 이미 폐허가 되었다. 그는 언문(한글)으로 편지를 써서 주춧돌 밑에 끼어 넣었다.
“나는 이 집에 살던 박 아무개다. 왜군이 나에게 1,000명의 군사를 주어 선봉으로 삼았다. 그래서 본국에 투항하려고 계책을 세워 포로가 되었던 조선인들을 내가 인솔하게 되었다.
내가 거느린 1,000명의 군사 중 2/3가 조선인이다. 그 중에 믿을만한 사람 몇몇이 비밀리에 약속하기를 본국의 군대를 만나면 즉시 투항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우며 올라오며 단 한번도 본국 군대를 만나지 못해 계책을 이루지 못하고 통곡하며 돌아간다.”
한편 박춘의 막하에 재인 임세붕의 딸이 포로로 잡혀 있었다. 저녁 무렵 왜군들이 각기 흩어지자 박춘은 두 세 명의 왜군들과 조선말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여기가 옥야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그들 역시 조선인 출신 왜군들이었다.
박춘은 옛일이 생각나는 듯 “마당, 기운, 세붕은 어디에 살아 있을까?”라고 중얼거렸다.
임세붕의 딸은 왜장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으나 왜장이 어떻게 조선말을 하고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재인들을 아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박춘은 임세붕의 딸에게 말을 걸었다.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임세붕이란 것을 밝히고 임세붕은 원수부(元帥府)에서 종군하고 있고 모녀가 피난길에 숨어있다 왜군에게 발각 되 어머니는 죽고 자신만 끌려 왔다고 말했다.
박춘은 회군길에 친구의 딸을 데리고 해남에 이르러 풀어주며 왜군 한 명을 딸려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주게 했다. 박춘은 임세붕의 딸에게 밀봉한 편지를 주며 임세붕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편지는 두통으로 한 통은 아버지 박세동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편지는 무사히 전해졌겠지만 아들의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아들이 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관에 알려지면 불이익 당할 것을 두려워해 입을 다물었다. 이웃의 재인들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기록에 조선인 출신 왜장이 부하 데리고 투항했다는 기록이 없으니 박춘은 전사했거나 일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휩쓸려 갈 때가 있다. 박춘도 그런 경우로 전쟁에 휩쓸려 가야 할 곳을 잃은 전쟁피해자의 인생이다.
전쟁은 서로 죽고 죽이는 간단한 게임 같으나 의외로 복잡한 게임이다. 임진왜란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터지면 싫던 좋던 포로가 생긴다. 포로가 된다 해서 다 죽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짐승 취급 당하듯 학대만 받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피아의 식별을 하는 것이 무디어진다.
식민지 시절 친일파가 득세했듯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 점령지에 친일파가 있었을 것이다. 한 두 달 아니고 몇 년씩 점령당했는데 조선인을 모조리 죽일 수는 없었고 점령지 주민을 학대만 할 수도 없었다. 점령지 주민을 지나치게 학대하면 반발을 일으켜 전쟁수행이 곤란해지므로 회유를 해서 민심수습을 해야 한다.
왜군들은 항복한 조선인들로 둔락을 이루게 하고 둔장을 두었다. 둔장을 기올(其兀)이라고 불렀는데 둔락에는 조선인뿐 아니라 왜군들도 섞여 살았다. 조선인 둔장은 왜군들도 다스릴 수 있어 왜군들도 기올을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물론 아무나 기올이 될 수는 없었다. 학식과 명망, 지도력 있는 자들이 기올에 임명되었다. 조선인은 물론 왜인들까지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기올들에게 쥐어주고 대우를 잘해주니 자발적 충성심을 유도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기올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왜군들은 힘 안 들이고 점령지를 다스릴 수 있었으니 방어사 김응서가 왜군의 점령지인 동래, 부산을 정탐한 보고서를 선조에게 올리며 “간교하고 흉악하기가 이와 같으니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조선을 침략한 왜적을 극악무도한 도적으로 여겼겠지만 막대한 권력을 쥐어주니 마약에 취한 듯 술에 취한 듯 사리분별 못하고 자발적으로 부역행위를 하는 것이 전쟁의 비극이니 누구를 탓해야 할까?
신문발행일: 201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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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陂才人朴春被擄而爲將後欲投歸本國(임피재인박춘피로이위장후욕투귀본국 : 임피 재인 박춘로가 포로가 되어 장군이 된 뒤에 본국으로 투항하려 하다.
臨陂才人朴世同之子朴春(림피재인박세동지자박춘) : 임피(臨陂)의 재인(才人)박세동(朴世同)의 아들 박춘(朴春)
亦爲才人(역위재인) : 또한 재인이었는데,
壬辰之亂(임진지란) : 그는 임진년의 변란 때
戰於錦山(전어금산) : 금산(錦山)에서 싸우다가
爲賊所擄(위적소로) : 적(賊)에게 포로가 되어
久在賊中(구재적중) : 오랫동안 적중(賊中)에 있으면서
積功爲將(적공위장) : 공을 쌓아 장수가 되었다.
及丁酉之亂(급정유지란) : 급기야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賊使春爲前鋒(적사춘위전봉) : 적은 박춘을 전봉(前鋒)으로 삼아
領兵千人(령병천인) : 군사 천인(千人)을 거느리게 하였다.
春願向全羅(춘원향전라) : 그러자 박춘은 전라도(全羅道)로 향하기를 원하였으니,
其意盖欲尋見舊居也(기의개욕심견구거야) : 그 뜻은 대체로 자기 옛 집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轉鬪而直抵臨陂故家(전투이직저림피고가) : 그는 이리저리 옮겨 싸우면서 곧장 임피의 옛 집을 찾아가 보니,
則已成荒墟(칙이성황허) : 옛 집은 이미 빈 터가 되어 버렸으므로,
春不勝慨然(춘불승개연) : 박춘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以諺書題其柱礎曰(이언서제기주초왈) : 그리하여 언서(諺書)로 그 주초(柱礎)에 쓰기를,
我是此家主朴某也(아시차가주박모야) : “나는 바로 이 집 주인 박모(朴某)이다.
賊與我千兵(적여아천병) : 적이 나에게 1천의 군사를 주어
使爲先鋒(사위선봉) : 선봉(先鋒)으로 삼았으므로,
我便欲因此投歸本國(아편욕인차투귀본국) : 내가 문득 이를 인하여 본국(本國)에 투항하여 귀부하고자 하였다.
心生一計(심생일계) : 그래서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내었으니,
求領我國被擄人爲兵(구령아국피로인위병) : 즉 적의 포로가 된 우리 나라 사람들을 내가 인솔하여 군대로 삼게 해 주기를 바랐다.
故所帶千兵之中(고소대천병지중) : 그래서 이미 거느린 1천의 군대 안에
被擄者居三分之二(피로자거삼분지이) : 포로가 된 우리 나라 사람이 3분의 2나 되는데
時於誠信人處(시어성신인처) : 내가 수시로 아주 믿을 만한 사람들과
密密相約(밀밀상약) : 비밀히 서로 약속하여,
萬一得見本國軍兵(만일득견본국군병) : 만일 본국의 군대를 만나면
與被擄同約者(여피로동약자) : 함께 약속한 포로들과 더불어
一時投降(일시투강) : 일시에 투항하기로 하였다. .
轉鬪而上(전투이상) : 그러나 이리저리 옮겨 싸우면서 올라오는 동안에
一不見本國駐兵處(일불견본국주병처) : 본국의 군대가 주둔한 곳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여
徘徊累日(배회루일) : 여러 날을 배회하다가
初計不遂(초계불수) : 처음의 계책을 이루지 못하고
痛哭而返云云(통곡이반운운) : 통곡하며 돌아가노라.…… ”고 하였다
其時全羅沃野居才人林世鵬女時年十餘(기시전라옥야거재인림세붕녀시년십여) : 그런데 그때 전라도 옥야(沃野)에 살던 재인 임세붕(林世鵬)의 10여 세쯤 된 딸이
亦被擄(역피로) : 또한 포로가 되어
在春帳下(재춘장하) : 박춘의 장하(帳下)에 있었다.
黃昏衆倭皆散(황혼중왜개산) : 황혼(黃昏) 무렵에 여러 왜군(倭軍)이 모두 흩어지자,
春獨與數倭居(춘독여수왜거) : 박춘이 홀로 왜군 두서너 명과 함께 있다가
忽然以本國語(홀연이본국어) : 갑자기 조선어(朝鮮語)로
自相謂曰(자상위왈) : 자기들끼리 서로 말하면서,
此是全州沃野(차시전주옥야) : “여기가 바로 전주(全州)의 옥야로구나.” 하니,
兩倭對曰然(량왜대왈연) : 두 왜군이 그렇다고 대답하므로,
春曰(춘왈) : 박춘이 말하기를,
麻堂氣運世鵬等(마당기운세붕등) : “마당(麻堂), 기운(氣運), 세붕(世鵬) 등이
能得生存否(능득생존부) :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其女在傍聞之(기녀재방문지) : 이때 임세붕의 딸이 곁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心竊私恠曰(심절사괴왈) :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겨 혼자서 말하기를, ‘
這是倭將(저시왜장) : 이 사람은 왜장(倭將)인데,
何得爲本國語(하득위본국어) : 어떻게 조선말을 할 수 있으며,
又何得知我父名字耶(우하득지아부명자야) : 또 어떻게 우리 아버지의 이름자를 안단 말인가.
况麻堂氣運(황마당기운) : 더구나 마당과 기운은
皆是我父一時名才人(개시아부일시명재인) : 모두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한 시대의 이름난 재인들인데,
倭將何得知之(왜장하득지지) : 왜장이 어떻게 그들을 알 수 있을까.’ 하고,
心甚疑怪(심심의괴) : 마음속으로 매우 괴이하게 여기면서도
而不知朴春爲倭將也(이불지박춘위왜장야) : 박춘이 조선 사람으로서 왜장이 된 것을 몰랐다.
至夜春潛問其女曰(지야춘잠문기녀왈) : 그날 밤에 이르러 박춘이 남몰래 그 여아(女兒)에게 묻기를,
汝是何人(여시하인) : “너는 누구냐?”고 하자,
對曰(대왈) : 대답해 말하기를,
我是沃野才人世鵬之女也(아시옥야재인세붕지녀야) : “나는 바로 옥야의 재인 임세붕의 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春驚曰(춘경왈) : 박춘이 놀라면서 말하기를,
汝父母好在否(여부모호재부) : “너의 부모는 잘 계시느냐?”고 하니,
女曰(녀왈) : 여아가 대답하기를,
父在元帥陣下(부재원수진하) : “아버지는 원수(元帥)의 진하(陣下)에 계시고
獨母與我隱林間(독모여아은림간) : 어머니와 나만 숲 속에 숨어 있다가
一時被擄(일시피로) : 일시에 포로가 되었는데,
賊斬母而活我矣(적참모이활아의) : 적이 어머니는 참살(斬殺)하고 나만 살려 주었습니다.”라고 하였다.
春惻然咨嗟(춘측연자차) : 그러자 박춘이 그를 측은하게 여겨 탄식하였다.
數日回軍南下(수일회군남하) : 그로부터 며칠 뒤에 박춘이 회군(回軍)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令女騎馬(령녀기마) : 그 여아를 말에 태워
在春馬前(재춘마전) : 박춘의 말 앞에 세우고
至海南將乘船(지해남장승선) : 함께 해남(海南)에 이르러서는 장차 배를 타려고 하면서
春袖出一封書授女曰(춘수출일봉서수녀왈) : 박춘이 소매 속에서 한 통의 봉서(封書)를 꺼내어 그 여아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今放汝歸(금방여귀) : “지금 너를 놓아 돌려보내 줄 터이니,
可將此書(가장차서) : 이 편지를 가지고 가서
傳致汝父(전치여부) : 너의 아버지에게 전하거라.” 하였다.
仍使一倭(잉사일왜) : 이어서 한 왜군을 시켜
護送於伏兵處(호송어복병처) : 복병(伏兵)이 있는 곳까지 호송해 주어
其女遂得脫歸(기녀수득탈귀) : 그 여아가 마침내 그곳을 탈출하여 돌아가게 되었다.
直到沃野(직도옥야) : 그 여아는 곧장 옥야로 가서
仍以其書授其父(잉이기서수기부) : 그 편지를 자기 아버지에게 주었는데,
書中所言(서중소언) : 그 편지의 사연은
亦如前日題柱礎之辭(역여전일제주초지사) : 역시 지난날 주초(柱礎)에 쓴 내용 그대로였다.
仍內附一書(잉내부일서) : 인하여 또 다른 한 통의 편지를 동봉(同封)하여
使之傳於其父(사지전어기부) : 이것은 박춘의 아버지에게 전하도록 했는데,
其父恐事洩累及於身(기부공사설루급어신) : 박춘의 아버지는 그 일이 혹 누설되어 자기 몸에 누가 미치게 될까 염려하여
一切隱諱(일절은휘) : 일체 숨겨 버렸으므로,
故一隣才人(고일린재인) : 같은 이웃의 재인도
無敢發言云(무감발언운) : 감히 이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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