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부슬비가 내린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가랑비는 가뭄에 시달린 우리에게 아침부터 신선한 기쁨을
준다. 비 내리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늘 산행을 하는데 어쩌지 하고 약간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가뭄이라 많은 비가 내려야 하는데
이런 방정맞은 생각을 했다는데 죄책감을 느낀다. 오직 산을 가야 한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 왜 떠올랐을까? 오늘은 충북 단양에 있는 도락산을
송우산악회서 가는 날이다. 짐을 꾸려야 할지 망설여진다. 그래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챙겼다. 비는 내리는데 무슨 청승이냐고 말하겠지만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가야 한다.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했다.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잠을 청하는 아가를 재우기
위해 엄마가 옆에 앉아 토닥토닥 두드리는 소리 같다. 잠을 재우는 엄마의 간절한 아름다운 사랑의 자장가로 들리기도 한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
없이 듣던 빗방울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소리가 왜 이리도 아름다울까?
오늘 산행을 할 많은 회원이 좌석을 메웠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칠 때면 생긋 미소를 짓는다. 얼굴은 반가움을 표하고 눈으론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간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행복한 장면이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아침은 행복을 주체하기 힘들다. 송우의 기둥이며 미남인 김종배 회장이 나를 보는 순간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잠시 후 이 산악회를 사랑으로 이끌고 모든 회원의 가슴에 사랑을 심어주는 전윤연 여성 회장 역시 상기된 얼굴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행복하다 했다. 오늘은 온종일 두 회장을 위시해 모든 회원이 사랑의 핑크빛으로 물들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종배 회장의 인사말에서 망종(芒種)이 지났으니 무엇보다 농사가 잘되어야 훈훈한 마음이 싹튼다는 아름다운 말을 남긴다.
망종(芒種)이란 24기 절기 중 9번째 절기이며 6월 5일이 망종(芒種) 이다. 일 년 중 논보리나 벼 등의 곡식의 씨를 뿌리기에 가장 알맞은
날을 말한다. 이어 전윤연 회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무엇보다도 안전 산행을 하라는 당부의 인사말을 한다. 두 분은 역시
산악인으로 사랑을 나눠주는 전도사다. 김문환 고문께서 도락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박치원 수필작가께서 파도는 바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서도 일어난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행을 자주 해야 한다는 건강법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했지만, 꼭
기억해야 할 좋은 말이다. 오늘도 역시 송우의 보배이며 살림꾼인 주세영 총무가 방긋 사랑의 미소를 보낸다. 행복한 산행을 하라는 무언의 말인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살 정도의 재산만 있다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존재다. 또한, 넋을 놓고 자연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버스는 서울이란 거대한 도심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희한하게도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고 산허리를 휘감은 안개가 춤을 춘다. 창밖을 내다보는 회원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숨을 죽이고 사색을 하는 듯 눈만
깜박인다. 유월의 산야는 신비롭게도 시원하게 짙은 초록으로 물들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약 3시간 30분
정도 달린 버스는 목적지인 상선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안전 산행을 하기 위해 김종배 회장의 구령에 맞춰 가벼운 체조를 했다. 모두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뿐사뿐 산을 타기 시작했다.
도락산(道樂山)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단성면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가
964m의 산이다. 소백산과 월악산의 중간지점에 있는 바위산으로 월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도(道)를 즐기는 산으로 알려진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단양의 명산이다. 도락산(道樂山)의 유래는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깨달음을 얻는 데는 그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필수적으로
즐거움도 뒤따라야 한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도락산(道樂山)으로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선생이 군수로 재직할 때 극찬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소백산과 금수산, 도락산의 계곡마다 기암괴석이 웅장한 신비로운 비경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도(道)를 즐기며
살아가는 산처럼 산행은 험난한 암봉(巖峰)을 지나가기도 한다. 때로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가슴에 그리며 오를 수 있는 정겨움이
가득한 산이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란 조선후기(1700∼1850년)를 통하여 유행한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오르며 야생화도 감상하고 산세의 절경에 매료되어 힘든지도 모르고 신나게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바위로
뒤덮인 산으로 걷기까지 힘들고 무섭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쫑긋 일어난다. 이마에선 힘들고 겁에 질려 땀방울이 정신없이 떨어져 내린다. 젊은
사람들은 뛰어다니며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겠는가, 내가 힘이 들고 무서움을 느낀다는 것은 오직 나이 탓일 거다. 그러나 심산계곡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은 송골송골 솟아나는 땀방울을 시원스럽게 식혀준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바윗길은 설악 공룡 능선의 축소판 같아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바위틈 사이에서 자란 금강송은 암벽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러나 필자는 무섭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도락산
산행은 경관이 뛰어나고 바위를 오르내리는 재미 또한 각별하지만, 초보자들은 절대 만만치 않은 산이다.
나로서는 감당하기조차 험한
산이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거나 손에 힘이 빠져 잡고 있던 물체를 놓쳤을 때는 사정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 저세상으로 가고 마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혹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해도 크게 다치거나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돌부리도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산은 매사 조심하지 않으면 화를 면하기 어렵다. 있는 힘을 다해 오르지만, 회원들과 거리가 작고 멀어진다.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다. 옷은 땀에 젖어 걸을 때마다 몸에 달라붙어 걸음을 방해한다. 가는 곳마다 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다. 몸은 지쳐 힘은 모두 빠졌고 땀이
흘러 옷까지 흠뻑 젖어 더는 걷지 못하도록 괴롭힌다. 이렇게 못된 삼 형제가 나를 힘들게 한다. 전윤연 회장과 김종배 회장은 오늘도 내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조금 가다 뒤돌아보고 격려를 해준다. 올라가는 곳마다 깔딱고개로 형성된 바위산이라 너무도 힘들고 지친다.
드디어 있는 힘을 다해 정상까지 올라왔다. 도락산(道樂山)이라고 쓴 표석이 지쳐있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표석을 보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기쁨이다. 이것을 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올라왔단 말인가? 정상은 약 20평 정도로 협소하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964m이다. 이것밖에 안 되는 거리를 그토록 힘겹게 올라온 것이다. 마침 명산 100 도전 단이 자리를 함께했다. 젊음의 패기가 넘치는 건실한
청년들이다. 옆에는 이주의 명산 인증 장소라고 프랑 카트가 붙어있다. 이주의 명산으로 선정된 곳을 재수 좋게 올라온 것이다. 함께한 장건진
회원과 정진학 회원이 이곳저곳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혹시 내가 뒤처질까 봐 보살피려고 뒤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이
두 분의 고마움은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자연이 그려 놓은 산수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있다.
우리 세 사람은 내려오기
시작했다. 불볕더위가 온몸을 달구어 댄다. 개울이라도 옆에 흐른다면, 찬물에 세수라도 한번 하고 갈 텐데, 그러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하면서 속으로 중얼대 본다. 그러나 물은 없다. 마침 그때 선들바람이 불어오고 공교롭게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가 나타난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고운 소리를 들으니 구세주를 만난 듯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새소리에 반해 힘들었던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사방을
바라보는 곳마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렇게 아름답단 말인가? 연신 입에선 감탄이 쏟아져 나온다. 신께서 최고로 완벽한 절경 작품을 이 땅에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필자는 절대자이신 신께 당신 덕분에 행복했노라고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정상에서 다시 신성
봉으로 내려와 전망 좋은 암반 위에 자리를 깔았다. 가장 위대한 분께서 만들어 놓은 자연 속에 산수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며 늦은 점심을 먹는
그 맛은 꿀맛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제봉에서 올라오다 만났던 삼거리에서 채운 봉 방향의 좌측 등산로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채운 봉을
오르고 내려가는 구간은 철계단과 쇠파이프로 난간대가 설치되었다. 위험한 바위가 깔린 곳을 내려가는 것도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온몸에
짜릿하게 스릴이 넘쳐 흐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산행한다는 것은 이렇게 위험도 체험하며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맛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려온 길을 뒤 돌아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슬아슬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급경사에다 옆은 낭떠러지로 형성된 내리막길을
어떻게 내려왔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이렇게 범봉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까지 넘어와서야 더 이상의 어려운 오름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려오는 길 숲속에 유별나게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큰 선바위와 작은 선바위가 도락산을 수호하고 있는 것 같다. 한참을 내려와 계곡물을 건너는
서문곡 철 다리를 지나 산행 출발지였던 상선암 휴게소에 도착했다. 험한 산을 무사히 내려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도락산은 월악산국립공원 관할에 포함시켜 가꾸고 관리해 접근하기 좋은 산행인 것 같다. 월악산과는 거리가 떨어진 산이지만
별동부대인 도락산은 장엄한 산세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산이다. 금강송과 암릉미가 어우러져 뛰어난 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송우산악회 김종배 회장과 전윤연 회장을 비롯해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특히 오늘 끝까지 나를 보살펴 주느라 자기
나름의 즐거움을 접고 도와준 장건진 정진학 두 회원께 글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회원 여러분 가정에 평화와 모든 가족의 건강과 행복
행운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