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노아와 그의 아들들
그리스도인은, 우리 가톨릭 교우든 개신교회 형제들이든 전 국민의 약 30%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로운 사람 10명만 있었어도 그곳은 유황불로 멸망하지 않았을 거다(창세 18,32). 아브라함은 죄인들로 인해서 의인들까지 죽게 되면 온 세상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공정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하느님과 흥정했다. 그런데 결국 그곳이 멸망한 걸 보면 의인이 열 명, 아니 한 명도 없었나 보다. 우리나라에는 그리스도인이 약 1500만 명이나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참 그리스도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스도인이 되는 건 어렵지 않다.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고 극한 수행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도 다 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은 십자가다. 스승이고 형제이며 주님이신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따라간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구세주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그를 악한 이들을 모두 벌주고, 이 답답하고 불의한 세상을 개혁해서 새롭게 만들어줄 존재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 믿음 안에서 그분은 십자가 수난과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분이다. 세상 개혁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길, 새 하늘과 새 땅 새 세상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우리 가톨릭 교우들은 기도할 때 머리와 몸 전체에 십자가를 긋는다. 어렵지 않았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긋자고 했을 거 같다. 그리스도인은 온몸과 온 삶 안에 십자가를 지니고 산다. 그 십자가는 세상과 권력자들이 예수님에게 짊어지게 했던 그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이니 피곤하고 아프기도 하셨을 텐데,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견디셨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십자가는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뼛속 깊숙이 박혀 있는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견디는 것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참 하느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증언하고, 함께할 수 없다고 여기는 그들과 함께하자고 할 때 세상이 우리에게 짊어지어 주는 십자가다.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건 기본이다. 어쩌면 그건 신앙이 없어도 할 수 있을 거다. 살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걸 생각하면, 그리스도인의 십자가는 더욱 분명해진다.
하느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첫 인간을 만드셨을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분부하셨다(창세 9,1; 1,28). 마치 두 번째로 사람을 만드신 것 같다.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바람은 한결같다. 세상을 잘 다스리는 거, 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평화롭게 잘 사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쩌면 하느님이 세 번째로 만든 사람들일지 모른다. 하늘나라의 비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알게 해주신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꿈을 품고 산다. 세상살이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세상을 바꾸거나 하늘나라를 이 땅에 세운다는 뜻은 아니다. 하느님의 아들도 못하신 일을 우리 죄인이 무슨 수로 하겠나. 우리는 이념, 종교, 문화의 다름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민족, 새로운 인종, 참 그리스도인으로 되어간다. 참 그리스도인,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한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도 아닌 악마라고 규정하고, 대화나 논쟁은 없고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외치기만 하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조용히 마음 모아 기도하고, 정말 힘들지만 나와 다른 이들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그런 우리가 노아의 아들들이고 참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 하느님의 구세주와 사람이 바라는 구세주는 참 다릅니다. 제 안에도 그런 슈퍼맨 구세주가 와서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이 바라시는 걸 잘 분별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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