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육군의 잘못은 러일전쟁과 중일전쟁때의 승리의 주술력의 무서움을 알고 실행한것에 시작된다
단기전에 강력한 군대였고 대량의 사망자의 집착에 의한 영력에 의해서 육탄돌격과 정신무장으로 고지와 단기전에서 승리를 했다
그 경험에서 제국 육군은 정신력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기에 이른다
물론 주술 력 ' 정신력은 현실을 타파하는 파위가 있는데 그 발휘에는 3가지 조건이 따른다
1 장기 간의 단련과 집중
2 인력의 희생
3 주문
과학력은 이와 같은 단련없이 쉽게 대규모의 전력을 생산할수 있었고 그에 의해서 총과 대포의 발달로 인해서 누구이던간에
동일한 힘을 갖게되었다 그것을 일본은 2차대전 후반 장기전에서 깨닫고말았고
승승장구하던 일본 군대는 태평양 대동아의 전쟁의 전사자 310만명의 목숨은 그 후반전 90% 19454년 패전의 반년간의 기록이었다
주문이란 무엇인가?
일본이 내세웠던 가치를 4자 성어로 나열한것이고
매진 일로 . 성업 완수 . 동아 교란. 일억 옥쇄 . 거국일치 . 신주 불멸 .귀축영미 . 무적황군
등 단순하게 전쟁을 승리하는 목적과 수단을 4자성어로 외치면서 일체화 할때의 파워를 말하는것이고
전쟁을 감정론 정신론 숙명론으로 보았고 서양전쟁론 숫자 물리 과학의 세계를 이해하지못했고
개전이후에 전선이 길어지고 식량이 없는 곳에 백병전으로 육탄공격으로 국민 다수의 희생자가 나날히 늘어남에도
침착 냉정한 전력과 판단 결정하지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너질수 밖에없다..
정신력의 우위
정신력의 우위 연금술이란 일반 물질을 순수한 물질로 변화하는 기술이었고 또한 인간의 영혼또한 변셩시키려는 의미가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 영과의 융합을 지향하는것이고
일본육군의 비밀은 바로 진언밀교 에 있었고 정신력에 의 한 물질 변환에 있었다
일본육군은 화약의 힘에 정신력을 더하면 파괴력은 증대되고 어떠한일이라도 가능한다는 검증된 결과에 근거했고
전력기공술은 서구 근대 병기에 의한 전술을 효과적으로 저지할수있다 일본 육군 참모들은 정확히 간파했다
이전훈은 러일전쟁과 청일전쟁때의 백병돌격과 진지전 단기전에서 효과적으로 나타났고
전선이 길어지고 과달카날이나 태평양전쟁에서의 무기공급과 식량배분의 공급이 따르지않았기때문이고 병착차이가
너무났기떄문이다 정신력이라는 무기는 2차대전 전반에 걸쳐깨지지않았다
아니 본토결전때에도 일본 정신력 은 무너지지않았고 패배를 인정하지않는 무서운 군대였다
일본이 패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같은 정신력이 무너졌기때문이고 야마토의 침몰 의 비밀에 있다고 봐야한다
일본의 혼이라는 야마토는 원폭의 비밀을 들고 스스로 기폭해서 침몰을했고 이같은 잠재의식이 깨어지면서 일본이 내세웠던
정신력은 하루아침에 몰락을 했고 악귀에서 순한 양으로 변모하고말았다
일본의 전쟁과 평화는 감정론 정신론 숙명론이다.. 평화와 전쟁과 원폭과 원전은 숫자 물리 과학의 세계이고
이상론에 평화는 유지되지않겟지만 일본의 정신론은 틀리다
극동의 변방의 섬나라 일본은 지리적 풍토와 기후의 풍토에서 틀리듯이
지진 .태풍 .화재 에서 에너지를 받고 다른민족의 전쟁은 커냥 그를 실행하는 노하우가 있을리가 없었고
천황을 기점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는 강렬한 자기 주장과 발신은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보았고 .
일본인의 변하지않는 dna적인 습성인것이다
전쟁이 격해질수록 이같은 주술적인 믿음은 더욱거 강해졌고 전쟁의 승폐가 기울어졌지만
남방의 최선선으로 보내에서 영광스런 전사와 자결을 강요했고 카미가제특공대로 출격되었고 적당한 숫자를 정렬 마치 미국을 박살낼수있다는 환상을 자아내었다는점이다.
이상론과 정신론의 군대
오늘날도 변하지않는 일본의 습성이다. 전쟁과 평화 원폭과 원전은 리얼리즘이고 사실이다
일본의 전쟁과 평화는 감정론 정신론 숙명론이다 숫자 물리 과학의 세계를 정신론으로 이길려고하는점이고
후쿠시마 원전의 핵연료봉은 소멸하지않는다 방사능은 계속해서 나오고있지만..
먹어서 응원이라는 정신론으로 돌파하려고하는점이다 태평양전쟁과 현대의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의 유사성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지않고 대본영과 원자력 산화기관처럼 편리한 정보는 흘리고 불리한 정보는 숨기고있고
일본의 강한힘은 바로 영력에 의존을 한다는점이고 야스쿠니신사라는 영력을 발휘하는 힘이 강하다고할수있다
육군과 해군의 대립
적이기이전에 미군과 싸우기전에 일본 육군과 해군은 서로 사이가 나쁘고 통일된 움직임을 나타내지못했고
애초의 전쟁계획을 무시하고 의미없는 혹은 파멸적인 움직임을 한것은 원래 해군은 대미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기를
원하지않았다고 보여지고있다
대동아 전쟁이라고 하면 육군의 독주와 폭주였다면 태평양 전쟁에서 미드웨이 과달 카날 진주만공격은 해군의 독단으로 시작되었다
해군과 육군의 대립은 왜 일까 출신지역과 농민과 부자와의차이였고 일본의 터부는 해군이 적과 내통 일본이 패배할것을 희망했다는
충격가설이 해마다 드러나고있고
a급 전범에는 해군 관계자는 전무하고 따라서 영미파가 많고 군국주의 육군이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다는 인식을 가지고있다.
육군의 지지체력은 지방의 지주계층이었고
끈질긴 일본육군의 완강함은 병사 대부분이 농민출신인것이 컸다
사라져버린 육군 세력 ghq의 정책의 농민 정책이 관촬되었고 장남 상속제도가 폐지되고 평등하게 상속권을 가질 규정이 법제화 된후 사실상 세대를 거듭할수록 자활할수있는 농가는 소멸되었고 농가가 파괴됨으로써 육군의 인력공급구조는 파괴되었고 완전히 사라졌다
태평양 전쟁의 일본해군의 목적은 바로 일본열도와 한반도 대륙과의 분열 절단
따라서 이씨 조선의 비밀조직을 공격대상 따라서 열도와 한반도의 지배층의 혼혈이 공격대상
제 51사단 조선왕조 최후의 황태자 의민 태자가 지휘했던 부대는 파괴했고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작전 (조선왕조후예 리우는 )폭살)에 협력했고
일본해군은 일본을 패배시킬 한반도의 일본의 분리에 성공했다
패전후 조선인의 반도 송환을 맥아더에게 강하게 진언하였다..
성공하고 은폐된 일본의 원폭실험
1945년 8월 12일 새벽 북한 흥남(일본 핵개발기지)에서는 핵이 해상폭발했고
전후 소련 중국 북한의 핵개발의 거점은 흥남이다..
일본인의 원죄
남자들의 야마토의 환상의 특공영상
심령전 주술전의 일환으로 미성년자를 포함한 특공작전 가미가제는 통했고
일본에 핵무기가 떨어지지않았다면 본토결전의 특공은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이 강했고
일본내의 자기희생정신과 무사도의 생각은 남아있다.
일본의 육군과 해군의 대립은 치명적이었고 전쟁이 길어지면질수록 육군을 중심으로 사상자는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였고
왜 이길수 없는 전쟁을 시작했고 거대전함 야마토는 일본의 갈라파고스화의 상징인것인가
대 아시아주의 에서 소일본주의로 바뀌었고
육군에게 절대 질요소가 없는 전쟁이었지만 해군의 이상행동으로 일부러 전쟁에 졌다는 역사를 은폐해가고있다
관동대지진과 천도
관동대지진과 한반도 천도 1순위는 용산과 서울이었고 아이러니하게 순조로웠던 만주를 중심으로한 대일본제국은 탄생하지못하였다
아무것도 않고 방치하면 일본과 중국은 하나가 될뻔했다
제 51사단 의 비극
담피르의 비극처럼 살아남아 보급도 없는체 지옥화 한다 뉴기니에서 말리리아 굶주름에 고통을 받으면 종전까지 맥아더군과
장렬한 싸움은 계속되었고 51사단은 육군대부분은 전후 해군에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말았고
제 51사단은 조선 인황태자가 움직이던 부대였다.
패전을 잊어버린 한국인
1948년 북한과 한국이 분단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경우는 북한의 건국에 참여한 일본육군 에 의해서 한국의 남하를 억제하는 역할이 있었다고 볼수 밖에없다
요컨데 한국이 남하해 대마도 규슈를 점령하지못하게하는 목적도 포함되어있었고
한국의 이승만이 일본의 대마도 규슈를 침공하려한것이 조선전쟁의 시작이다.
대일본주의와 소일본주의
만주과 몽골을 거점으로 일본은 에의 절대적인 신뢰를 발전을 지원한다 만주와 몽골에서 일본을 개조한다
일본섬은 대륙방위의 전초기지에 불과하고 내륙에 있는 만주를 발전시켜서 미국과 유럽 세계 최종전쟁에서 싸워서 이겨야한다
대일본주의 사관고 소일본주의 사관의 차이는
대륙사고와 해양사고의 차이일분이고 해군은 이 생각이 싫어서 육군을 멸하고 열도를 반도와 대륙에서 분리하기로 했다
일본 육군 지원시스템 조선 지원병제도
포인트 조선출신은 제국육군의 군인으로써 차별없이 대우를 받았지만
일본 해군 군인으로 들어가는것은 인정되지않았다.
용산 한미연합사 21년 말까지 이전정책
용산기지
일제 시대 용산기지는 일본 제국 욕군의 주둔지로 사용되고 조선군 사령부가 놓여있던 공간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에 따른 일본군 철수호 미군 7사단이 일본군 의 병영을 점령 현대사의 비밀과 비극이 숨겨져있는 장소이다
한국인도 모르는 소식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전 론
관동대지진후 분명히 수도 이전의 이야기가 나왔고 게다가 그 위치는 한국의 서울에 있는 용산구이다
도쿄대지진이후에 일본육군이 관동대지진으로 수도이전을 계획한 용산의 한미 연합사 이전의 이야기를 한국이
크게 보도한것은 우연이 아닐것이다
일본의 내전
일본은 육군과 해군이 서쩍과 동쪽으로 나눠어서 2차대전 열전을 시작했고 미일전쟁 대동아 전쟁
패전을 거듭해서 오래된 군을 배제 일본의 근대화를 이뤘다
물론 300만명이라는 일본군 희생위에 서있는 큰 사업이었지만 ..진짜 내전이 있었다면 희생은 더큰 화근을 남겼을것이고
일본 황실도 확실하게 2개로 나눠어졌을것이고 그것을 피하기위해서는 그길밖에없었다
일본인의 국민성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유교와 불교를 흡수하고 이 기초위에 무사도 정신 야마토정신을 완성한것으로 분석하고있고
이에 신도의 가르침이 더해져 극단적인 양면성이 형성되고 부처님을 믿는데 살육을 하고 예의를 중시하는데
잔인하고 과학을 추구하는 실로 다양한 미신 민족성이 완성되었다
본래의 무사도 정신은 좋은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할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숭고한 정신을 확대
일본특유의 왕타와 괴롭힘 일본의 수치의 문화를 형성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바로 선악의 판단기준이 되었다
반대로 일본은 타인에게 알려지지않으면 죄가 되지않고 은폐하고 은둔하는 폐쇄적이고 방종한 사회를 만들었다
또한 일본의 등급제도는 일본인의 민족성에 큰 영향을 준 다
상사의 사람의 명령은 절대적이기때문 거역할수가 없고 집단화된 일본인은 통일을 취할수가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지않고 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양처럼 행동하는 괴이한 국민성을 완성했다
본토 결전
오키나와 이오지마의 옥쇄에 이어서 본토결전만 남아있었지만. 일본군의 악마성 즉 패배를 인정하지않고 죽음을 무시한 돌격작전은
무모했지만 연합군에게 공포를 남겨주기 충분했다 완전히 박멸하지않는 승리를 보장할수가 없다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할 경우 어떻게 본토결전을 싸울계획이었는가??
아직까지 제국 육군의 전투방식은 드러나지않고있고
보통생각해보면 일본군이 조선인으로 위장 하고여서 현지 한반도인을 이끌고 게릴라전을 전개할생각이었는가
한반도에서는 장기 항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작전계획은 소각될수밖에없었고
소련군이 침공해온 한반도 북구에서 현지군에 의한 북한이 건국된것이다.
잔류 일본인
종전후 한반도에 잔류하고있던 육군과 참모 본무는 남한에 진주한 미군과의 연력을 당담했다
조선남부 남한에서는 재향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었지만 소련에 첨령된 조선 북부 북한의 재향은 그렇지않다
북쪽에 있던 일본육군의 장교와 병사는 항복수락과 시베리아 억류를 옿다고 생각하지않고 북한에 남아있다고 본다
강력한 의지
집단적 강력한 의지가 존재하고 모두가 통일된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면 역사도 진실도 우주전체가 근본적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천지 창조 그 의지의 승리 신비주의적 의미이다
오컨대 모든 진실은 의지속에 있는것이다 강한 믿음과 신념에 의해서 현실은 새롭게 구성된다
성과 생명
죽음과 생명은 맞다아있고 일본 제국 육군의 군대는 절대로 후방으로 불러들어서 휴식을 취하지않고 전쟁터에 여자까지 징집을 해서 전방으로 올린다는 병크의 전략이 바로 위안부 문제이고 이미 2번에 의해서 협상을 통해서 끝이났지만 90년대를 들어서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대아시아주의를 공격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서 공격을 시작하기 시작을 했다 이미
신격화되가 되어있고 이스라엘의 유태인 학살과 대동아전쟁때 징용된 20만의 위안부 문제가 바로 아시아주의를 공격하는 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