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마리아가 대략 삼백 데나리온 정도 되는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구주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은 그 예수님의 장례할 날, 곧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고, 그러한 마리아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6장 13절에서와 같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라고 말씀하실 정도로까지 귀하게 여기시고 기뻐 받으시는 것임을, 심지어는 수많은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사용되어 지고 기념이 되기까지 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원론적, 통전적인 관점으로 바꾸어 말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은 그러한 값비싼 나드 한 근보다도 더욱 크고 귀하며 가치 있고 복 되며 엄청나고 최우선이어야 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고, 사실상 세상 그 어떤 것들보다도 그러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심지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와 같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라고 고백하고 증거하며 강조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가장 최우선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어렵거나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무엇보다 오직 그러한 십자가 목숨값 구원만이,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그 예수님만이 믿음과 함께 값없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이시자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또한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고, 실질적으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는 길과 통로와 열쇠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바로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다시 말해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실제로 이기고 승리하며 오히려 흥왕케 될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실상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범하게 된 크고 작은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 등도 생생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참으로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이 온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죄악들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더더욱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인 것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기적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사실은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 더군다나 예배의 열납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실제로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의 십자가를 붙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실상은 그 전에 그와 같은 일들 하나하나마다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실제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12:3~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8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