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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무척이나 더우니까 '홈캉스, 몰캉스' 등 요상한 신생어가 난립한다.
홈캉스 : 집에서 휴식하면서 보내는 휴가
몰캉스 : 쇼핑몰에서 식사, 쇼핑하면서 보내는 휴가
스테이케이션 : 집에서 보내는 휴가
호캉스 : 집과 가까운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휴가
home vacance
mall vacance
stay vacation
holiday
hotel vacation
홈바캉스, 몰바캉스, 호텔바캉스라고 하면 안 되니?
이런 괴상한 신생어를 보면 공연히 땀이 더 난다.
국어를 망치는 짓이고, 외국어를 더욱 힘들게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이해불능한 언어장난이다.
템플스테이 templestay : 절에서 숙박하여 사찰생활 체험
팜스테이 farmstay : 농가에 머물면서 농촌생활을 체럼
1.
'젊을 때에는 세상이 너무 넓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언제 이걸 다하지 하고 열씸히 살아왔는데
지금 돌아보니 딱히 한것이 아무것도 없다.....그냥 난 밥먹고 잠자고 한것 밖에 이거이 말이 됨니까?'
어느 분이 '나는 누구일까' 글 썼기에 위처럼 조금만 퍼왔다.
나는 아랫처럼 댓글 달았다.
'저는 집나이 일흔한 살.
세상 살만큼 살았지요. 사람은 일생동안 소모한 것(쓴 것)과 자기가 생산한 것을 비교하면... 소모한 것보다는 1.5배 이상 생산한다고 하네요.
제가 숫자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체로 쓴 것보다는 더 많이 생산한다고 하네요.
저는 아내와 함께 자식을 넷이나 두었지요. 딸 둘, 아들 둘.
이것만으로도 인구 2배 증가시켰나요? 국가와 사회에 큰 죄 짓지 않고 직장생활했기에...
이제 죽어도 그다지 안타까울 것도 없네요. 누가 내 몸뚱아리를 경제가치로 따져서 사 간다면 돈 10,000원어치나 되겠어요?
안 되겠지요.
살아 있는 동안에 죄 덜 짓고, 사회에 빚 덜 졌으면 합니다.
님의 글에 고맙습니다.'
많을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나는 1949. 1.에 쌍둥이로 태어났다.
산골마을. 무척이나 가난한 마을이었는데도 나는 배 곯지 않고 컸다.
무학의 어머니가 머슴(일꾼)을 두고 지악스럽게 농사를 지었기에 쌀밥은 아니어도 보리꼽쌀미를 잔뜩 넣은 보리밥일 망정 양껏 먹고 컸다. 빤즈? 그런 것도 있었나? 엄니가 광목 떠다가 만든 바지를 입었고, 열세 살 대전으로 전학 가서야 처음으로 빤즈 입었다.
눈치밥 먹으면서 학교 다녔고, 때로는 도시락 없이도 고등학교에 다녔고 서울에서도 학교 다녔다. 군 제대 후에는 설흔 살까지도 직장을 얻지 못해서 골방에 쑤셔박혀서 시험공부를 했다. 직장 얻었고 이내 결혼해서 그해 겨울철에 첫딸을 보았고, 거의 연연생으로 자식 넷을 두면서 그럭저럭 살았다. 큰 죄 짓지도 못하면서 정년으로 퇴직했다.
내가 지금껏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 다니고, 취직시험으로 젊은 날까지 30년동안 남한테 신세지고 살았다. 30년이 넘게 직장생활했고, 퇴직한 뒤에는 시골로 내려가 꼬부랑할머니가 된 어머니와 함께 몇 년간 살았다.
퇴직한 지가 10년 넘은 백수건달.
내가 지금껏 살면서 남한테 신세를 지은 것과 내가 일한 것과는 비교하면 아무래도 내가 쓴 것보다는 더 많이 생산했을 것 같다.
우선 자식부터도 그렇다. 아내와 나는 자식 넷을 낳고 키웠으니 2배 장사한 셈이다.
아무 것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서 터를 잡고, 자식들 넷의 고향이 되었으니 이것도 남은 장사이다.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받기만 했지 빚 갚은 것은 별로 없다. 부모한테 빚 갚지는 못했지만 대신 자식 넷한테 빚을 남겼으니 이것도 남는 장사이다.
나는 촌사람답게, 늙은이답게 매사를 아껴 쓰려고 한다.
나는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초를 기억한다. 너무나 가난했고, 부족한 세상에서 자랐다.
일흔한 살인 지금, 2018년에는 정말로 많은 물자가 넘쳐난다. 과잉소비를 해야 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과거 내가 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며, 과다소비하는 세태도 변했다. 그만큼 과거의 생산양보다도 현재의 생산량이 훨씬 많다는 증거이다.
나는 이따금 아내한테 지청구를 먹는다. '그거 아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자식대에는 훨씬 더 잘 살아요.'
내가 보아도 그런 것 같다.
이런 류의 글감을 얻었다.
나중에 더 보탠다.
1.
고추장만 있다면...
작은딸 산후조리원에 간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다. 깜박하고는 밥 안 짓고 바깥에 나왔다고.
내가 밥통 뚜껑을 여니 찬 밥 한 덩어리가 식기에 담겨져 있고, 찬밥에 물 부어서 죽처럼 끓인 밥도 조금 남았다.
아침, 점심 저녁밥을 먹었는데도 또 남았기에 보온밥통 속에 넣었다.
아내는 먹을 것을 지나치게 많이 장만해서 밥통에, 냉장고에, 냉동고에 꽉꼭 채우기에 도대체 언제적에 만든 반찬이지를 구별이 안 가는 먹을거리가 구석에 숨겨져 있다.
내가 그렇게 가득 채우면 냉장고, 냉동고 안에 공기 소통이 안 되어서 음식이 더 빨리 상하거나 냉장고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고 숱하게 지청구를 했거만 예, 예 대답하고는 그때뿐이다.
예순여섯 살의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내가 냉장고, 냉동고을 열으니 먹을것이 꽉꼭 찼다.
한숨이 나온다. 왜 이렇게 많이 쟁여 놨어?
나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럴까?
식재료 조금만 있으면 아무렇게나 조리해서 한 끼 떼울 것 같다.
'고추장 하나만 있으면 밥 먹는다'고 말하는 나.
냉장고 안에서 묵은 김치를 꺼내서 쑹덩쑹덩 쓸어서 물 붓고, 두부 넣고, 이것 저것 넣고, 밥 한 덩어리를 넣어서 끓이면 개밥처럼, 돼지밥처럼 된다. 싱겁게 먹으니 소금 간장 칠 것도 없고. 한 손에 책이나 신문지를 글자 읽고, 오른손으로는 무의적으로 숟가락으로 개밥/돼지밥을 뜨면 된다.
밥그릇도 하나, 반찬그릇도 한 두 개뿐. 설겆이 하기도 쉽고...
이렇게 오늘 세 끼니를 먹었다.
병원에 간 아내는 늦게 귀가한단다. 병원과 조리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작은딸과 함께 저녁밥을 먹었을 게다.
내일 밥은 아내가 새로 짓겠지.
아내가 올 즈음에 나는 쌀이나 조금 퍼서 씻어야겠다. 쌀 씻은 뜨물이 필요하니까. 쌀뜨물을 받아다가 베란다 위에 있는 화분 속의 식물한테 나눠서 부어주면 식물이 고마워 할 게다.
요즘처럼 뜨거운 여름날에 식물도 목말라서 힘들어 하겠지. 영양가 많은 쌀뜨물을 확보하려고 쌀을 씻어야겠다.
아내가 오기 전에.
1.
오늘 한국경제부동산 뉴스에는 2018년 6월 현재 자영업자는 570만 1,000명이다.
사장님들이다.
요즘 사업이 힘들다고 한다.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13년간 프랜차이드 화장품을 운영하던 업체가 사업을 접었다고.
60제곱미터(18.15평) 월 임대료가 1,500만 원.
18평의 그 작은 가게 터 임대료가 월 1,500만 원. 년간 12달이면 1억 8천만 원!
왜 이렇게 임대료가 비싸?
전국 건물임대업자에 대한 정부의 통계는 없을까?
그런데도 경제신문사 등에서는 2019년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장사 못하겠다는 뜻으로 내비추었다.
정말로 찌질이다. 본질은 임대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내는 비용 등이 아닌가?
강남지역 상가에는 권리금 2 ~3억 원이 붙었는데도 권리금 없이 사업을 접는다고 했다.
2019년 최저임금 때문일까?
월 157만 원에서 174만 원 즉 한 달에 17만 원 더 올려주어서 사업을 못한다는 논리인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가?
폐지 줍는 노인의 사진을 보았다. 80대 할머니가 등허리가 반으로 접어진 채 리어커를 끈다.
폐지 1kg 30 ~50원 벌이. 폐지 100kg 주워서 팔면 돈 3,000 ~5,000원 벌이.
이렇게 벌면 '떼부자' 되는 것일까?
내가 요즘 며칠간 최저임금에 관한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사회경제공부를 많이 한다.
사회부조리가 어디에 있을까?
아무래도 언론매체일 것 같다. 진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강자의 편에 빌붙어서 본질을 흐린다라는 인식이 자꾸만 짙어진다. 여기에는 '개념많은 분'이 그려? 하고는 동조하고.
최강자 갑은 전혀 상관없는 피래미들 사회현상인가 싶고...
폐지 줍는 노인들, 최저임금에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노동자도 그렇고...
'불쌍한 사장'이 안 되었다. 그치?
1.
요즘 주로 보는 성경은 16세기에 영국의 제임스 왕 시절 영어로 번역한 aka 흠정역 성경이 기반이다.
... ...
한국의 세종은 훈민정음/한글을 만들고 신하 정인지 시켜 상세한 사용설명서 훈민정음해례본 까지 제공 하시니
한글 쉽게 배워 세상 돌아 가는 원리를 이해 한 민초들이 온갖 세계 최초의 기록을 수립하고 드디어 촛불혁명에 이르른다.
흠정역 성경은 라틴어 대신 영어로 번역 하여 마구 뿌리니 영어가 세계 공용어 행세 하는 이유이다.
남북이 서로 만나 열차표 한장으로 아시아/유럽 대륙을 오가는 시대에 한글이 세계 공영어/공통어가 됨은 당연한 역사적 예측이다.
위 글은 퍼왔다.
성경번역이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했기에 이해하기 쉽고, 영어가 세계공용어로써 크게 자리매김했다면서
우리 한글도 세계 공용어로 나갔으면 하는 소망이 담겼다.
아주 적절한 소망이다. 그래야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아무런 종교관이 없기에 종교용어에는 맹탕이다.
내 아내는 성당에 다니고, 작은딸은 기독교회에 다닌다. 작은딸네는 남편, 시부모가 모두 기독교인이고, 시어른은 지방목사. 내 큰사위는 인도인이라서 힌두교 계열일 게다. 큰딸, 큰아들, 작은아들은 아무런 종교도 없다.
나는 시골에 내려가면 종가 자손이었기에 어린시절부터 어른들이 시향 지내고, 제사 지내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어린시절에는 아버지가 제주였기에 음시월 상달에는 산에서 시향지냈고, 시골집 안사랑방에는 외지에서 온 영감들이 득실거렸다.
대전의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대전의 아버지도 돌아가신 뒤에는 서울의 내가 제주가 되었다.
오래 전의 일이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는 시골로 내려가 시향에 참석했다.
선산에 오르니 많은 시향꾼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올렸다.
제복 입은 노인네가 나를 꾸짖었다. 왜 절을 하지 않느냐고.
땅바닥에 두 손 짚고는 절을 올리라는 뜻? 내 눈이 똥그랗게 떴다. 세상에나...
또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직장인이기에 토요일, 일요일에는 시향에 참가할 수 있지만 주중에는 참석이 불가할 터. 직장 다니는 젊은이와 합의해서 시사 날짜를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조율하자고 어른께 말씀 드렸더니 안 된다, 날짜를 고정시켜야 한다고 고집.
'지금은 멋대로 하세요. 나중에는 내가 뜯어고칩니다(속으로 당신들이 죽으면).'
나는 그 다음해부터 아예 참가하지 않았다.
제주인 내가 20년 동안이나 빠졌다.
그들은 죽었고, 지금은 아주 적은 숫자의 자손들이나 겨우 모인다.
제주인 나는 변형된 현대식으로 지낸다. 도포가 아닌 양복을 입고, 탕건 그런 것은 전혀 안 쓰고, 제문은 한글로, 그것도 아주 쉽도록 풀어 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이해하는 말투로 제사를 진행한다.
과거의 유교문화인 제사를 지내면서 십여 대의 조상들에 대하여 홀대하는 것일까?
아니다.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이다.
이런 나이기에 아무런 종교관도 없고,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옛 방식은 아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조상의 영혼이 가까이 올까? 뭐가 있어야 오고 가고 하겠지.
옛 어른들이 과거에는 존재했고, 그 뿌리가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하나의' 끈'이기에.
그 이외에는 없다. 영혼도 없고, 귀신도 없다. 나한테는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나이기에 아내는 집안에서는 성당의식은 전혀 하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이기에 성당에는 자주 나가나 내 집에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집안에서는 성경책 읽고, 외출해서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는 손가락으로 얼굴에 성호를 긋는다. 그것까지 내가 말할 바는 전혀 없다.
오래 전의 일이었다.
이웃 마을에 초상이 났기에 문상 갔다.
큰며느리가 기독교인지 성당교인인지는 몰라도 시아버지 초상에 일체 관여를 하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혔다고 소문이 둥둥했다.
내가 보기에도 세상에나였다. 큰며느리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도 초상을 치뤘다. 아무런 종교관이 없는 나는 큰며느리의 행동이 그다지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편협한 종교인이라는 인식만 깊게 남았다.
서해안 산골마을 태생인 나.
어린시절에는 4개 마을에는 무당, 무수리, 점쟁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할머니, 어머니, 동네사람 모두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어서 그럴까? 정말로 귀신들이 가득 찼다.
부엌 살강이도, 방에도, 장독대에도, 뒷간(똥수간)에도, 소우리에도, 돼지집에도, 마을어구에도, 무덤에도, 큰 바위에도, 오래된 나무에도, 온통 귀신과 잡신들이 득실벅실거렸다.
뒤켠 장독대에 물 한 그릇(정한수)를 올려놓고는 두 손바닥을 비비면서 고개를 자주 끄덕이며 중얼거렸고,
동네 안방과 사랑방에는 무당이 징 치고, 꽹가리 타앙 치면서 죽은 귀신을 불러내고, 정월 대보름에는 길거리에 제삿밥과 반찬그릇을 떠놓고... 부엌의 조앙신이며... 가 한없이 이어질 게다.
이런 것들을 보고 컸던 나는 그들 세계가 무척이나 무서웠다.
특히나 내 시골집은 조금 외진 곳이 있어서 집으로 들어오는 담부리(돌을 내다버리는 곳)에는 무덤 두 개가 있었다. 이곳을 지나치려면? 비 내리는 날이면? 컴컴한 밤중에는?
어디 이것뿐이랴? 신작로 바로 비킨 곳에는 상여집이 있었고...
고개마루에는 정자나무가 있었고, 정자나무를 빙빙 굴러친 밧줄에 오색의 헝겁이 나풀거리고,
1.
2018. 7. 23. 월요일.
오늘도 무척이나 덥겠다. 이른 아침부터 찌니...
어제 서울은 1994년 이래로 7월 중 가장 무더웠단다. 온도가 38.0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충남 보령지방은 최고 34도이다. 해변가라서 그럴까 서울보다 4도 정도 낮다.
1949. 1.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호적 출생신고가 늦은 바람에 아홉 살이어서야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밤에는 소나무 뿌리를 캐서 잘게 뽀갠 왕솔에 불 붙여서 책을 읽었다.
석유 등잔에 불 키면 석유지름 단다면서 책을 못 보게 했던 엄니였다.
공책 잡기장에 한글 글짜를 삐뚤빼뚤하게 쓰는 나한테 엄니는 공책을 아끼라면서 글자를 다다다닥 붙여서 쓰라고 했다. 즉 띄어쓰기를 하지 말라면서.
이렇게 공부하던 나는 4학년 말, 벚꽃이 필 때 어미와 헤어져서 대전으로 전학갔다. 오로지 공부하려고.
나는 학교 공부보다는 만화가 훨씬 재미있었다. 대전 2층집 바로 곁에는 만화가게가 있었다. 집 대문을 밀면 불과 10m 거리였으니 오죽이나 만화책, 청소년용 책을 즐겨서 봤으랴.
그것도 어미와 누이들과 헤어져서 객지에 왔으니, 눈치밥이나 먹는 나한테는 만화가게가 피난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한문시간이 있어서 한자를 배웠다.
또 돌집이라서 빗돌에 한자로 된 비문도 엄청나게 보았다. 정(쇠 錠)으로 빗돌에 한자를 새기고.
그런데도 아는 한자는 별로 없다.
읽기 쉬운 한글이면 다 좋아했다. 콩 기름 발라서 인쇄한 종이냄새가 그렇게 좋았다.
한글로 된 만화책을 넘어서 동화책, 동화책을 넘어서 소설을 줄기차게 읽었다. 직장에서 쉬는 황금연휴에는 장편소설 열댓 권을 한꺼번에 빌려서 하루 4~5권을 우습게 보았다. 대하장편소설이라도 3일면 끝.
그만큼 한글은 속독한다는 뜻.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하며, 사랑한다.
잇 세상 내 어머니와 아버지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분 가운데에서 세종대왕이 첫째였다. 1446년에 공포했다는 한글이 왜 그렇게 더디게 확산되지 못했을까?
왕족, 세도가, 양반, 사대부들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자를 독점했다. 일반 백성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배제한 그들이었다. 백성이 눈 뜨면 안 되기에...
불과 100년 전 저쪽 주시경선생이 한글을 다듬고, 이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1957년에서야 가갸거겨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2018년인 지금까지도 책벌레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지금도 한자병에 걸린 자들이 정말로 많다.
서예하는 자들, 우리말이 있는데도 그 어려운 한자어를 말하고 글 쓰고,...
유식병에 걸린 자들이다. 치료가 안 되고, 치유가 안 된다.
우리 생활어에는 한자어가 너무나 많다. 국어대사전 표제어 중 한자어가 70% 된다고 한다.
7만 자를 넘어서 8만 자로 육박하는 한자. 8만 개의 한자를 조립하면 단어는 몇 개쯤 만들까?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수십 수백 조의 단어라도 합성하겠다.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표제어는 50만 개. 이런 사전이 몇 억 권이 더 필요로 할 만큼 한자단어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생활어가(학문과 일상의 말 포함) 뭐 그리 많을까?
나는 서해안 출신의 촌것이다. 지금은 촌늙은이.
그렇게 어려운 한자 몰라도 되고, 따라서 말하기도 어려운 외국말 그렇게 많이 알지 않아도 산다.
우리말과 우리글(한글)을 사랑한다. 특히나 우리글(한글)이다. 이를 발전시켜서 세계어, 국제어로 확산했으면 싶다. 세계공용어가 되어서 국제회의 때 한국말과 한국어로 국제회의를 했으면 싶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한국언어를 사랑해야겠지.
2018년. 북한 남한의 최고지도자가 손을 맞잡았다.
1948년 나라가 두 쪼각이 나서 북한과 남한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산다. 언어가 자꾸만 변화해서 이질화되고 있다. 땅 하나에 두 개의 국가(정부)가 들어섰으니... 언어의 통일화가 필요하다.
남북한의 언어학자가 머리를 맞대고서 남북한의 합작인 국어대사전을 새롭게 발간했으면 싶다.
결론이다.
사이버 세계인 카페에서 우리말을 우리글로 쓰는 기회가 더욱 늘어났으면 싶다.
1)
영국이 해양국가로 발전한 저변에는 언어인 영어가 기본이 되었징요. 세익스피어의 공로이지요.
최근 우리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바탕은 한글 교육때문이지요.
위 글에는 라틴어에서 영어로 변했군요. 지금은 세계 제1의 언어.
우리 한글도 국제사회에서 공용어(10대 언어)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한국어는 전세계 1.1%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지요.
우리말과 우리글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야겠네요.
조선조 불과 600 ~100년 전에는 양반들이 한문숭상. 불과 100년 전에는 상놈(백성)이 공부할 공간이 있었나요?
서당에는 양반 자식이나 가고... 상놈들은 언문(가갸거겨)조차도 배우기 힘이 들었지요.
지금은 새로운 세상이지요.
2)
100년 전인 1900년대 초 시골 읍장, 리장들의 문서.
문서를 보면 나는 머리가 돌아버립니다.
온통 한자투성이의 공문, 한자에 한글토씨가 이따금 한 두어 개씩. 책벌레인 나, 일흔한 살인 나는 공문을 읽을 재간이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이네요.
한글로써 배우고 글 쓰고, 글 읽는다는 것이...
위 글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사랑을 엿봅니다.
우리말과 우리글(한글)을 배우려고 한국에 온 외국인이 늘어나지요.
제 큰사위는 인도인. 그 형제 4명이 한국에 와서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글을 배웁니다.
2017년, 작년의 일이지요.
제 시골 무학자들(할머니)도 가갸거겨를 배워서 이제는 한글로 쓴 글을 읽지요.
마을회관에서 공부했다네요.
3)
제 아버지 어머니는 무학자. 폭삭 망한 집, 가난해서 일제시대의 소학교에 다니지 못했지요.
아비는 객지로 나간 노동자. 석수쟁이. 비석에 한자 새기려면 한문을 스스로 배워야했지요.
엄니는 마을 야학사랑방에서 단 하루만 가갸거겨를 배웠다네요. 시할아버지가 밤마실 나가지 말라고 엄명해서....
하루에 배운 가갸거겨 한글을 스스로 터득해서 글자 배웠다네요. 옛날 소설책도 많이 읽었공요.
어려운 한문이 아니라 읽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 덕분에 눈이 떴다고 하네요.
일제시대에는 순사들이 장터 길목을 막아서 한글을 읽나 못 읽나를 조사했다네요.
일제는 소학교에 다니도록 강제화하였다네요. 이 점은 일제를 칭찬합니다.
4)
충남 보령지방, 예전에는 보령현(지금의 오천항 주변), 남포현(지금의 남포면)에는 향교가 있지요.
여기에는 구한말 양반 자제만 다녔지요. 제 조상들은 조선조에서 몰란한 경주최씨 잔반. 이 향교에 다닐 수 있었나요?
100년 전의 마을역사에 관한 책을 보면... 정말로 욕 나옵니다.
온통 배운 자들이 사는 세상... 몰락한 잔반, 백성인 증조부는 구한말, 일제시대의 마을리장이대요.
저는 39살까지 공부했지요.
그런데 한자로 된 문서, 책, 비문 등은 읽을 재간이 없습니다.
평등사상, 평민이 주인이 된 세상이지요. 그 앞장에는 서구의 종교가 큰 역활을 했다고 봅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실천했기에.
5)
불과 150년 전인 1866년 병인양요.
1863년 열두 살에 왕위에 오른 고종,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천주교신자 8,000여 명과
불란서 선교사 9명을 때려죽이고, 칼로 목베여 죽이고 물에 쳐박아서 죽였다.
불과 150년 전이다. 천주교를 믿으면 왜 그게 조선왕조, 양반, 사대가문에 어떤 해가 끼치기에?
조선조는 자유 평등사회가 아니었나 보다.
아무런 종교도 없는 나, 유교문화인 제사를 지내기는 하나 나는 형식적이다.
죽은 자가 먼저가 아닌 산 자가 먼저인 세상에서 살고 싶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는 사회일 게다. 그 본질에는 자유와 평등이다.
요즘에는 경제평등이 핵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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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아내는 산후조리원으로 나갔다.
작은딸은 조리원에서 2주일간 요양한단다.
서울에서는 머저리인 나는 오늘도 사이버세상에서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이따금 잡글 써야겠다.
아래처럼,. 글감을 찾아서...
1)
대주교 어셔(USSHER)는 17세기 중렵에 천지창조일의 년 월 일, 시간까지도 계산했더군요.
서기 2004년 전 10월 24일.
저는 날짜와 시간은 명확히 기억 못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010년 전쯤에 우주가 탄생했나요?
우주과학은 우주탄생을 137억 년 전으로 보는데 지금은 157억 년 전을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네요.
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책) 등 어떤 과학지를 확대해석하면 우주 나이는 180억 년 전으로 보고요.
그런데 어떤 대주교는 우주창생을 고작 6000년 전으로 보다니..
2)
충남 보령지방 산으로 패주한 동학잔당.
그거 누가 때려잡았을까요?
지방 토호족... 끔찍하대요. 가진 자가, 배운 자가... 패주한 동학잔당을 잡아다가... 가진 자들이 친일하고, 가진 자들이 공산 인민군의 앞잡이가 되고...
2018년인 지금은 많이 변했을까요?
한국정치사를 1960년대 말, 젊은 날 조금 공부했지요.
더 공부하면 더 혐오스럽대요. 백성문화는 없나요? 서민문화는 없나요?
우리나라 2대 부통령인 김성수(동아일보, 고려대). 전북 고창출신.
왜 동학난이 일어났을까요?
해방 뒤, 이승만 정부수립 뒤인 1949년 토지개량법에 의거 900만 평을 헌납했다네요.
불과 70년 전...논이 4만 5천 마지기!
3)
아침에 막내아들한테 영국이 왜 비약적으로 발전했는가? 그 기본에는 영어때문이다. 쉬운 영어로 공부하고 말했기에 해양제국이 되었다.
그런데 조선조는? 그 찌질이들은 한문을 숭상했다가.. 겨우 구한말 주시경선생이 한글교육을 확장해서... 운운했지요.
저도 오늘 아침에 동학혁명을 잠깐 언급했지요. 1894년. 1860년 동학교를 창시한 최제우(경주최씨), 2대교주 최시형(경주최씨)는 관가에서 처형당하고요.
고부 군수의 농민수탈에 반항한 백성들이... 1894년에서 노비제도를 국가에서 없앴지요. 사노비, 공노비... 일제시대에도 민가에서는 사노비가 존재했고요.
동학교도, 공주에서 일경한테 패전한 뒤 전라충남도로 피신했지요.
첫댓글 우린 한글이 쉬운데 외국인들은 너무어렵다고 하잖아요
과학적이고 우수한한글. 나라가 부강하면 한글역시. 널리퍼지리라 생각합니다.자랑스런 한글. 좋습니다 ㅎ
외국말이 쉽겠어요?
언어란 10살 이내에 다 습득한다지요.
정확히는 4살 이하 때...
저도 영어공부한다고 해서 쉰 살까지 영어책 끼고 살았지요.
외국으로 공무 다녔는지... 외국말과 글이 쉽겠어요?
우리말과 글 다시 공부하고 있지요.
너무 어렵대요.
어떤 댓글에서 보았지요. '내로남불', 졌잘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올림픽 축구에서 한국선수가 16강에 떨어지니까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뜻으로 '졌잘싸'
이런 말이...
고개가 흔들어집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은 쓰기 쉬운 우리글(한)을 바르게 많이 썼으면 싶네요.
잘 보았습니다.
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외국에서 더 인정하고, 배우려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공부 많이 하신분들은 외국어를 더 많이 시용한다고 하더군요.ㅎㅎㅎ
공부한 우리나라사람은 외국어 잘 해서 해외사람과 교류해야겠지요.
국제화시대이기에. 우리말도 외국어도 함께 잘 해야겠지요.
자기 것도 모르는 헛똑똑이가 더러 있지만서도...
오타 발견보고. 덮다. 덥다.
( 타이핑 실수시겠지만 주제가 한글이니..)
그리고 세계 1위언어에 대한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사용인구로 보면 당연 중국어 (13억)입니다.
중국은 중국외에서는 사용이 안되므로
중국을 제외하면 스페인어(5억) 라고 합니다.
그다음이 영어(4억), 힌두어(3.5억) 아랍어(3억)...
그러니까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ㅣ위언어는
스페인어라고 하는게 맞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의 발언권이 워낙쎄서
일어나는 착시효과 입니다.
암튼 인구수로보나 공용어사용국가수로보나
영어는 스페인어보다 못하니까요.
글의 전체 맥락과는 관계없지만
오류는 고쳐야 하겠기에...
인구수 언어사용 순위보다는 국제회의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보았지요.
언어학에 관한 한 저는 지식이 없지요.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현재 1위인 양 착시했군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한 수 배웁니다.
사용언어는 중국어. 스페인어, 힌두어, 아랍어....
다다닥님이 고맙지요.
저는 상식 수준도 아닌 혼자만의 판단으로 다다닥했기에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아니올씨이다.
님의 덕분에 저도 눈이 맑아지고요. 저는 이런 지적이 고맙지요. 저를 반성하면서 더 확인 공부하니까요.
@곰내 '덥다'를 '덮다'로
제가 자판기 안 보고 다다닥 하는 못된 버릇때문에 '덥다'를 '덮다'로 실수했군요.
이 단어의 차이를 아는데도 제 손가락은 전혀 엉뚱한 글자로 다다닥하대요.
생각과 손가락은 때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대요.
그래서 글은 늘 고치고, 다듬고를 거듭해야겠지요.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수, 공용어로서는 스페인어가 세계 1위이군요.
그런데 왜 우리는 스페인어를 덜 가르쳤을까요?
저는 고교시절에 영어, 독일어를 배웠고, 대학시절에는 일본어를 선택했지요.
불어는 자가학습하다가 포기했고. 스페인어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네요.
영어가 가장 급하였기에. 제가 시험을 봐야 하는 시험지에는 오로지 영어로 되었기에.
@곰내 국제회의 사용빈도나
세계 인구의 배우고자하는 언어선택의
선호도 등을 기준으로 하면
영어가 1등이라해도 그다지 틀린 사실은
아니고 현실적으로는 정답일수도 있지만
그런데 만약 퀴즈 같은데서 1위 언어로
영어를 찍으면 틀린 답 입니다.
@다다닥 예.
고마운 지적이 저한테는 정말로 소중한 가르침이지요.
우리말과 우리글이 저한테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나의 예로써 서해안 시골 촌마을에 가면 무학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는 말이 무척이나 ...
제 외가, 이모, 제 어머니 등의 옛사람들의 말은 학교에서 배운 말이 아니대요.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표준어로 되어 있대요.
지방 고유의 토착어는 그 지방에서는 표준어인데...
하물며 저한테는 외국어 그게 가능하겠어요? ]
제 큰사위가 인도인. 도대체 무슨 발음인지 귀에 안들려요. 그는 한국어?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지요.
말과 글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님의 댓글로도 저는 배웁니다. 그래서 고맙고요. 꾸벅꾸벅,
한국 어디에 가던 영어 꼬부랑 글씨
뭐 젊은 세대들이야 다 안다고 하지만
아니 이 시골 여주동네에 미장원에도
미용 제품들이 다 영어로 써 있네요
수입품인가 하고 들여다 보면 다 made korea
아니 왜 한국 제품 한글 로 쓰지 참
한가지 더 한국말 엉청 어려워요
'같은 단어라도 앞과 뒤를 다 읽고나서 해석 해야하지요
좋은글 좋은 지적입니다 해서
그러게요.
미국에서 사는 장미님이야 본토발음이 귀에 들어오겠지요.
저는 영어의 r, l 발음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외국어를 잘 하려면 귀가 좋아야 하는데도 귀가 어두운 저는...
오래전 전남 바닷가 출신의 아내. 처가에 가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고개를 가우뚱했지요. 지방언어를 쓰는 그들이.
서해안 출신, 대전, 서울에서 살던 제가 어떻게 전남 바닷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겠어요?
100년 전의 구시대 사람들은 온통 한자, 한자어, 왜놈말로 썼지요.
지금은요? 외국어인 영어에 물들어서..
제 손녀, 손자는 기저귀 차고 있음. 영아원에서 영어 가르친대요!
기저귀 찬 애가 영어라니..
'가시장미님 이뻐유' 이 말도 어려워유?
한글을 사랑합시다
한글의 우수성 세계가 다 인정합니다
세종대왕 의 해안을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봅니다
세종대왕의 혜안을~ ㅋ
누가 글자를 만들었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진 국가.
세계 최고의 문자이지요.
우리말은 세계 최고는 아니더라도 글자만큼은 최고이지요.
국보 제1호는 한글이여야 하지요. 새로 개정한다면...
그런데도 아직도 한자병에 걸려서...
종가집 제주라서 시향 때 제일 먼저 절을 하지요.
예전에는 유세차.... 어쩌구 저쩌구 하는 제문을 읽었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요!
지금은 그냥 우리말을 우리글(한글)로 써서 유치원생 아이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말하고, 읽지요.
제 것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국제시대에 살려면 외국어도 알아야 하지요. 단 우리 것도 외국에 더 많이 전파하고요.
제가 제 부모 다음에 세종임금을 존경합니다.
저한테 눈을 띄워주셨거든요.
예전 한문은 양반 계급이나 배웠고, 상민, 천민은 어디 서당이나 향교에 얼씬 했겠어요?
근세후기 저의 고조부, 증조부가 남긴 문서를 보면 온통 한문... 그거 일반 상민이나 천민(노비들)이 어디에서 배우나요?
세상은 많이 변했지요. 발전했지요. 최고로 칭찬받아야 할 분이 세종, 한글이지요.
며칠 저녁 가갸거겨를 배우면 스스로도 터득할 수 있거든요.
산골마을에서 자란 저한테는 시골누이들이 야학에서 공부하던 거 기억합니다.
큰사위가 인도인이라니
제 지인이 아니신가 잠깐~??? ^^
그댁 사위도 인도 왕족(?)이라나~~
그 분은 우체국장 출신인디
잠실엔 안 사시는걸로ㅋ
예.
한국에 5,000명 정도가 와 있다네요.
인도에는 3,000개의 계급사회.
아직도...
제가 보기에는 신의 세계이지요. 병신, 병자들의 수준...
극과 극을 달리하는 문화이겠지요. 인구 13억 명이 넘는 나라이고 조만간 중국인의 숫자를 넘어설 것 같다네요.
현재 이들의 문화수준은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이라고 하대요.
더러는 공부 많이 했지요. 인도에서 최고학부를 다녔는데도 한국어를 배우대요,
한국어를 수출했으면 좋겠지요.
그런 저도 한국어 강사가 될까요?
달라($) 벌고 싶네요.
저역시 곰내님처럼 우리말과 글을 눈물겹도록 사랑합니다.
한글에 관한 내용 모두.....
곰내님 생각과 일치합니다.
어쩌면 제 생각과 이리도 같을까요?
웃지 못하는 얘기 하나 해 드릴게요.
어느 교수님.
<이쑤시개>라는 말이 너무 경박하다면서
점잖게 <치봉>으로 바꾸자고 주장하신 글을 읽고
분노로 제 두 눈알이 튀어나올 뻔 했습니다.
분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
1년 전, 어느 카페에서
자칭 漢詩를 쓰시는 분께서
한시의 아름다움과 시로서 월등한 점과 중요성을 말하면서
우리말 시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경박하고 무게가 없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하면서 쓰신 글에
제가 몇 날 며칠 물고 늘어지면서 싸운 적 있습니
전..... 실생활에서는 아주 조용하고,
말도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글로 다투는 일은 석달 열흘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보고 사람 보면 완전 딴판이라고 해요.
글은 투사 같은데
사람은 전혀 반대라구요.
암튼 전 우리말과 글을 엄청 사랑합니다.
우리 고대가요도 엄청 좋아하고,
토박이말도 엄청 좋아하고.....
우리말이라면 꼬박 죽습니다.
북한말 중 이쁜 말 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곰내님께서도 알고 계실 거 같아요.
색동다리-네, 무지개의 북한말입니다.
@종이등불 색동다리.
처음 보는 말이네요. 무지개를 색동다리라고 부르는군요.
저는 충남 보령사람이기에 보령출신 이문구씨의 소설 좋아하지요.
보령지방에서 쓰는 옛말을 많이도 수록했기에...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진 방언이지요.
학교에 다니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말투는 이제는 재현이 불가능하겠지요.
지금은 모두가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우기에.
지방언어는 그 지방의 표준어인데도 우리는 지나치게 서울말 위주로 표준어 교육을 시켜서...
불과 100년 전에 한자병에 걸렸더니만 지금은 영어병에 걸렸대요.
기저귀를 찬 손자가 '영어로 뭐라고 해"라고 물었다네요.
유아원에서 벌써부터 영어를...
100년 뒤에는 우리말과 우리글 사라질까요?
@곰내 100년 후에 사라질 글 중에 <한글>도 포함된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우리말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구가 줄어서..... 우리말도 100년 쯤 되면 사라진다는
슬픈 내용의 보고서를 읽은 적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친손자가 아닌 외손자.
독신아들을 둔 사둔네가 무척이나 반갑겠지요.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졌다는 게 자랑스럽지요.
특히 우리글인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이지요. 24개의 자음모음을 조립하면 11,000개의 글자를 만들고, 소리는 7,000개 쯤 낼 수 있다네요.
아쉽게도 세종이 창제했던 28개 가운데 4개는 지금 사용하지 못하지만...
일전, 뉴스를 보니까 중국 황토고원지대에서 고인류화석를 발견했는대 인류의 조사을 2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네요.
비공식이지만 만약에 국제공인되면? 아프리카 발생설을 뒤엎는 것이지요.
그만큼 한반도의 인류역사도 뿌리깊고요...
우리 언어를 더 발전시켰으면요...
저도 세종대왕을 많이 존경합니다
어려운 한문이나 외래어 보다 한글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세종대왕. 한글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땅을 많이 넓힌 분이지요.
조선 초기의 왕들은 국토확장(고구려가 멸망하여 잃어버린 옛땅)했는데 이조 중기에 와서는 왕들이 정말로 찌질이들이지요.
초기의 왕인 세종대왕. 특히나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주셨으니...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대한민국!
노인네들만 빼고는 거의 다 학교교육을 받고는 거의 다가 자기 뜻을 한글로 나타내지요.
저도 그렇고요.
댓글 고맙습니다.
외손주 축하드립니다 곰내님
예.
고맙습니다.
시집 보낸 딸이 자손을 낳아서 '끈'을 이어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