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뜰에 서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노비 후예라는 말도 한다.
그럴까...?
그런지 아닌지 나는 모르지만
나도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개는 자신의 가문(家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산다.
누가 시조라거나, 그 시조의 몇 대 손이라거나
조선시대 무슨 벼슬을 한 분의 몇 대 손이라는 등,
그걸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나는 자랑할 거야 없지만
김수로왕의 후손이요,
김유신 장군의 67대손이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우리 가문이 어찌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각 가문마다 족보가 있다지만
나는 지손이어서 족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나 족보가 어떠하든
사람은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나는 훌륭하게 태어났다는 생각,
나는 잘난 사람이고 잘 살아간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자긍심이다.
이와달리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들도 있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생각에 차서
일부러 그걸 겉으로 자랑하면서 사는 사람들 말이다.
남들이 자긍심을 갖든 자만심을 갖든
그거야 상관할 것도 없지만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듯한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을까...?
아마 좋지 않을 것이다.
그저 "훌륭한 집안이네요." 하면서 덕담이나 할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많았다 한다.
특히 세종 때에 종부법을 종모법으로 고쳐서
노비가 더 많아졌다 한다.
종부법은 아비가 종이면 자식도 종이 된다는 거고
종모법은 어미가 종이면 자식도 종이 된다는 건데
그 결과로 노비가 많아졌다 하지만
백성 전체의 얼마가 종 또는 노비였는지는 확실치 않은 것 같고
그중에 나의 가문은 어땠을지 아는 바도 없다.
그렇다면 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보게 되는데
나는 별거 아니지만 벼슬을 했다.
그래봐야 지금은 벼슬이라 하지 않고 공복(公僕)이라 한다.
공공의 노예라는 뜻이다.
나의 부친은 기술자였다.
당시 한양중학(현재의 한양공고)을 나와 엔지니어로 일하셨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직전에 경찰에 투신했으니
역시 공복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고종 때 태어나 향교의 전교이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학교장이었던 셈인데
그렇다면 유교 숭상시대이니 노비는 아니었다고 해야겠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였다.
조선시대 직급으로 말하면 종 2품(從二品) 하위직계인데
부친이 그 묘지를 옮기던 중 위패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종이나 노비 신분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조선시대 공직자의 품계는 18등급으로 되어있었다.
종 9품으로부터 시작해서
정 9품, 종 8품, 정 8품......
이렇게 올라가다가 종1품, 정1품에 달하는데
가선대부는 종 2품 하위게열의 등급이라 하니
꽤 높은 직급인 것 같다.
나는 엊그제 창덕궁에 들어서서
임금이 정사를 보던 인정전 앞뜰에 서보았다.
앞뜰에 신하들 직급을 포시한 돌이 서있는데
임금을 모신 조회 때에 신하들이 그 돌 앞에 도열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돌에 해당했는지... 궁금해서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돌 앞에 서서 기념촬영을 해봤다.
살아가는 데에 저마다 서열이 있는 건 아니다.
직무의 차별이 있을 뿐이다.
그런 중에 누가 나라에 더 충성했는지
누가 더 베푸는 삶을 살았는지
그것도 분별하기 어렵다.
그저 그런 거 생각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다.
나라가 아니라 카페생활에선 어떤가?
그저 아름답게, 재미있게 어울릴 뿐이다.
* 이 글이 자만심의 반영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라며
자긍심을 갖고 살자는 뜻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저도 제 족보를 자랑하고자 하는건 아닙니다.
유명하다는 족보에 끼어넣으려고 애썼다는 글들도 읽었습니다만
그냥 이야깃거리로 읽었지요.
저는 창녕조씬데 족보를 사라고 강권하여 50년전쯤 구매하여 서재에 보관중입니만
한번도 꺼내어 보지 않았습니다.요즘시상은 외국인피가 많이 섞여서 족보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대를 거치면서 피야 많이 섞였겠지요.
면면히 이어지는건 모계로 이어지는 미토콘드리아일 뿐이랍니다.
그런데 소속감이라는건 있지요.
이를테면 한국사람이냐
아니면 미국사람이냐
아니면 조씨냐 김씨냐
하는 것들이지요.
도반 선배님글을 항상읽고 공감 한답니다 거창한 댓글이 많아서 ㅎ 눈팅할때도 많지만요
"거창한 댓글"을 달아서 송구합니다
거창한 댓글이든 짤막한 댓글이든
댓글 쓰는 사람의 성향이자 자유겠지요
댓글을 쓰는 한도가 600자로 한정돼 있습니다
모자라면 더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안단테님의 댓글을 제한하기 위해서
일부러 긴 댓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지배를 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 속에 숨어있는 뜻을 잘 살펴야 하겠지요
안단테님처럼 늘 눈팅내지는
댓글만 다시는 분도 있지요 특이하게
그것도 개인성격이겠지요
안단테님의 댓글 내공과 개성을 존중합니다
저의 "거창한 댓글"도 존중받기를 기대합니다
It's up to you!
고마워요.
댓글이라는게 결국 대화지요.
본글의 의미를 보태기도 하고
본글의 의도와 다른 내용을 더 소개하기도 하지요.
각자는 각자대로 취향이 있고요.
저는 무열왕손입니다 ㅎㅎ
왕손답게 살려는 제 안의 기준이
꽤 단단하게 뿌리 내려져 있어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입각한
나를 초월하여 세상에도 선을 베푸는
삶에 대해 관심이 컸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집안의 역사는
저를 바르게 키우고 살아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지요
자긍심 뿜뿜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도반님
조상님께 감사하는 기회를 주심에요
^^*
그렇군요.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한 왕손이군요.
영광스러운 가문이네요.ㅎ
그런데 저의 가문의 명장 김유신장군이 돕지않았으면 그게 불가능했을겁니다.
그래서 저도 영예를 나눠 갖습니다.
@도반(道伴) ㅎㅎ 네네 그렇겠군요
감사합니다 ^^*
저도 김수로 왕과 김유신 장군의
후예로 金海 金씨 입니다.
고모님이 완전 인도 여자의 얼굴 생김새인데
"인도에서 건너 온
아유타국 허황옥을 닮아서일까?"
혼자서 웃은 적이 있지요.
일본은 姓 씨를 간단하게 붙이던데요.
산악지대면 山(やま)를
숲이 많은 지역이면 林(はやし)
계곡 마을이면 谷(たに)
유명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大谷 翔平)도
이름을 보면 이와테현 계곡이 많은 마을에
선대가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ㅎ
그러시군요.
우리나라사람들은 남방계가 있고
북방계가 있다네요.
그럼 고모님은 남방계인가요...?
저도 웃고 갑니다만 ㅎ
일본은 삶의 현장에서 성씨를 많이 찾은 것 같데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4.12 00:4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4.12 07:26
어느 소설가 회원이 지적하길
경복궁은 근정전이요 창덕궁은 인정전이라 했네요(비밀댓글)
그래서 서둘러 수정했는데
그게 비밀댓글이었습니다.
궁금해 하실까봐서...ㅎ
잘모르던 내용을 새로이 알게되네요..
저는 종손32대손 이라서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붓글씨로쓴 족보를 소지하던중 30년전쯤 종친회에서 일괄 인쇄해서 공급한것을 비싼값에 구매해 아들 자식에게 전수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 순수혈통이라 배웠지만
청나라때부턴지 어쨌든 오랜세월 동안 외침을 받아 그 자손들 또한 순수 우리 조선혈통은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요..
어쨌건 저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로 알려진
신라시대 학자.정치가인 고운(孤雲)최치원선생이 시조인
경주최씨
ㅇㅇ공파 32대손 입니다.
그러시군요.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자긍심을 가지고 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