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속의 단상
임순옥
낙엽이 완연히 물들어 가는 가을이다 사랑했던 사람을 이별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가을 속에서 나는 영원히 헤어나 올 수가 없다. 우수
에 젖은 마음을 잊으려고 가을이 되면 무척이나 몸부림을 치며 가을
등산을 재촉한다. 마음속 전부를 점령하고 들어와 흔드는 가을 바람
은 나를 공림사 근처의 낙영산으로 발길을 향하게 하였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산에 올랐다.
낙영산 산머리에서부터 붉게 물든 가을은 화려하게 펼쳐놓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가을 햇살은 더
없이 따사롭고 바람에 살랑대며 조용히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나뭇
잎 소리는 낙엽과 함께 가을이 떨어져 가는 소리였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고 또 걸으면서 가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고달픈 내 영혼을 미련 없이 저 가을 하늘로 날려 보내고 싶은
심정으로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위대한 태양이 비껴
갈 정도로 에머럴드 빛 가을 하늘은 계속 나를 붙들어 매어 놓는다.
언젠가부터 내 가슴속에는 가을이 한숨 쉬고 있다. 어쩌면 가을 속
에 빠진 내가 영원히 평온한 나 자신으로 건져질 수 없으리라 생각하
며 낙엽방석에 주저앉아 물 끼 젖은 두 눈으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온 지난 날 들을 돌이켜본다. 지금 이 순간의 가슴앓이는 지난 가을
속에 담겨진 추억의 슬픈 사연들로 굴비 두루미처럼 엮어지고 있다.
들국화 향기 속에 서리치는 가을밤을 깨어 피 칠한 듯 붉은 단풍을
가슴에 담아 울어보고 싶다. 삶이 결국엔 제 길을 따라가야 하는 자
연의 순리인 것처럼 인생도 사랑도 더욱 순리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
까? 저 높은 나뭇가지에 제 둥지를 만든 까치집을 바라볼 때 들려오
는 까치소리가 정겹다. 만남이 헤어짐의 이름으로 바뀌어 모두가 떠
나 버린다. 해도 이 가을 속의 나는 영원히 남고 싶다.
우수수 가을이 떨어지는 소리에 이 밤도 잠 못 이루며 가을 냄새
속에 마음의 아픔도 더 깊어진다. 어느 것 하나 가을 숨소리가 들리
지 않는 것이 없다. 이 깊은 계절 속에 한 순간의 나의 행복한 마음
을 풀벌레 도롱이 속에 매어 놓고 이 억새풀 바람소리와 함께 한없이
울어 보고 싶다.
나뭇잎들은 봄의 연두빛 새싹으로 자라 여름의 무성한 진초록으로
그리고 낙엽으로 변하여 대지의 흙속으로 회귀한다. 인생도 가을의
낙엽처럼 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따름이다.
웬일일까. 엊그제까지도 쫓기며 복잡한 생활 속에 분주했던 시간
들이 오늘 이 가을 산 속에 묻힌 내 하루가 갑자기 느긋한 세월로 느
껴지며 넉넉함을 함께 느낀다.
진실한 친구와의 다투었던 감정이 아득한 꿈인 양 느껴지며 남의
일처럼 여유 있게 웃음도 담아본다. 가을 속의 나는 더없이 행복했
다.
산 속의 바람이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예쁜 새 두 마리가 청
아하게 지저귀며 날아간다. 한가롭고 쓸쓸한 이 외진 산길을 깊은 산
길 만큼이나 깊은 생각에 잠겨 걷고 걸었다. 단풍으로 낙엽으로 깊이
익어가고 있는 계절을 아쉬워하면서 나의 마음속 세월의 이름이 바
뀌는 인생의 나이테도 더 깊어져 간다.
2003 16집
첫댓글 임순옥 수필가님은 <수필창작 첫걸음>을 엮을 때
요양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커피숍을 운영하고, 건강하셨었는데 ?
들국화 향기 속에 서리치는 가을밤을 깨어 피 칠한 듯 붉은 단풍을
가슴에 담아 울어보고 싶다. 삶이 결국엔 제 길을 따라가야 하는 자
연의 순리인 것처럼 인생도 사랑도 더욱 순리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
까? 저 높은 나뭇가지에 제 둥지를 만든 까치집을 바라볼 때 들려오
는 까치소리가 정겹다. 만남이 헤어짐의 이름으로 바뀌어 모두가 떠
나 버린다. 해도 이 가을 속의 나는 영원히 남고 싶다.
들국화 향기 속에 서리치는 가을밤을 깨어 피 칠한 듯 붉은 단풍을 가슴에 담아 울어보고 싶다. 삶이 결국엔 제 길을 따라가야 하는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인생도 사랑도 더욱 순리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