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거나, 또는 함께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과 실제를 망각하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불안하거나 두렵게 되기가 쉽고, 수시로 남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습관처럼 원망하게 되며, 작은 일에도 짜증내거나 스스로 버겁게 만들곤 하고, 종종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거나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게 되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아부하거나 또는 아예 세상 자체가 심히 두려워지곤 하며..
특히 위기나 절망적인 상황들이 생길 때면 쉽게 넘어 지거나 포기하거나, 심지어는 이성을 잃게 되거나 여기저기를 찌르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조금 더 세부적이면서 다른 측면으로 다시 한 번 더 부연하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이거나, 또는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는 하나 탕자와 같이 하나님과 멀어져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처럼 된 인생들 또한 비슷한 것인데..
어쨌든 하나님이 아닌 어둠에 빠져 있는 인생들마다 갈수록 더 탐욕에 빠지기 쉽고, 음행에 자주 흔들리곤 하며, 세속과 깊이 벗하게 되고, 온갖 불신앙들에 빠지며, 분별이 어두워지고, 혼잡에 빠지며,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며, 함부로 정죄하고 불평하곤 하며,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과 찬미의 몸부림과 능력들은커녕 갈수록 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들, 소욕과 욕구들을 찾다가 더욱 힘들어 지며 꼬이게 되고, 그러면서 그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수렁에 빠뜨리기도 하며,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도구나 축복의 통로가 아닌 종종 사탄의 도구나 죄악의 누룩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자들, 진정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믿음의 사람들,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이나 책임을 미루거나 어떤 식으로든 정죄하는 것 자체가 쉬울 수 없는 자들인 것이고..
참으로 그 어떠한 사람들이나 상황들이나 문제들에 둘러싸인다고 해도, 심지어 절망의 광풍들, 위태한 홍수들 속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특히 자신의 모든 약함과 허물과 한계들 속에서야 말로 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으며 몸부림치고 치열해 지는 살아 있는 신앙이 됨과 함께 더더욱 강건해 지고, 오히려 위기와 사망의 권세들 가운데 있을수록 마치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자 같이 더욱 더 강인해 지며, 진정 독수리 날개 활짝 펴고 하늘을 솟아 오르듯 하기 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난해할 수 없는 것으로 온 세상이, 모든 인생들이, 그 어떤 문제들도, 그 누구보다 그러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모든 것들 하나하나마다, 순간순간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모든 문제와 상황들보다 하나님께서 더 크시며, 실상 그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힘과 역사들이 상상 이상으로 더욱 생생하고 놀라우며 더욱 섬세하고 실제적인 것들이기 때문인 것이고..
특히 바로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 누구보다 그렇게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들, 곧 말씀의 신앙으로 깨어 있는 믿음들을 전적으로 지키시고 책임지시며,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생생하게 부어 주시고, 앞서 가시어 예비하시며, 어떤 식으로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등 모든 시간과 공간들 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서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의 그 목숨값으로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아끼지 않으심과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다 세지도 못하며, 상상도 다 못하고, 심지어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죄와 문제들, 사탄과 음부의 세력들, 사망과 심판들에 있어서 모든 대속과 대신들, 나음과 화평들, 승리와 역전들 등과 같은 구원의 일들을 위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온전히 다 치르셨고 필요한 것들 하나하나에 있어서 대신 모두 지불하시면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며..
그 누구보다 오늘 이 시간 나에게 있어서의 모든 죄와 문제들, 연약과 낙망들, 사망과 심판들, 그리고 그에 있어서의 모든 사함과 나음들, 치료와 응답들, 생명과 승리들,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구원을 대략 2000년 이라는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진정 바로 나에게야 말로 다 이루신 것이고 믿음과 함께 값없이 참예케 해 주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으로 인한 구원의 일들 하나하나마다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정말 구주 예수님과 함께 역사하시고 그 이름 가운데 예비 되시며, 진정 구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과 함께, 참으로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의 기도와 함께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일들, 실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모든 약속과 말씀들을 시공을 초월해서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정말 실제가 되게 하시고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시며, 모두 나타내시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근원적으로는 그와 같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그대로 모든 시대와 나라들,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하시며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곧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그 누구보다 살아 있는 말씀 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기뻐 역사하시면서 말씀대로 다 이루시고 경험케 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직접적, 본질적으로는 죄악들로 인한 심판들에 합당하고 실제로 진멸케 된 남유다의 대다수의 불신앙의 백성들이 아닌 그 가운데에서의 남은 자들, 특히 말씀의 신앙으로 돌이키고 훈련되며 연단되고 단련됨과 함께 바벨론 땅의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케 된 자들을 위시해서 오직 말씀의 신앙으로 제대로 자복하고 돌이키며 회복되고 새롭게 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약속과 계시인 것이라 할 수 있고..
실상은 더 나아가 더욱 원론적이고 근본적이며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나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오신 메시야를 믿으며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하며,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의 값들에 직결된 것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등과 같이 성령님으로 인 쳐진 자들, 특히 오늘 이 시간 더 이상 옛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세상적인 방법들을 여전히 우선하면서 죄와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과 약속들을 알고 믿으며 사모하고 의지하며,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 있는 믿음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들, 그 누구보다 바로 오늘 이러한 말씀과 함께 믿음으로 결단해야 하는 나 자신을 위한 약속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오직 믿음으로, 진정 말씀의 열정, 말씀의 믿음의 그릇대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에 의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실상 그에 있어서의 생생함과 강렬함들은 실질적으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내가 오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곧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속에,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얼마나 죄악들에서, 곧 세속, 소견, 탐심, 우상, 음행, 미움, 거짓 등에서 싸울 수 있느냐와, 뿐만 아니라 혹 범한 죄악들은 속히 자복하며 돌이키고 벗어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로까지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 하는 등과 같이 갈수록 더 기도와 찬미, 경배, 경건, 섬김, 나눔, 용서, 헌신 등으로 살고 몸부림치는 믿음인가와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믿음의 몸부림들이나 열정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 안에서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구원의 일들의 생생함과 강렬함과 풍성함들이 결코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사실상 생각 이상으로 전적으로 직결되어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다름 아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라고까지 하셨을 정도였던 것이고..
실상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진정 그러한 믿음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믿고 사모하며 말씀과 함께 간구하면서 말씀에 약속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의 법, 곧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영생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누리고 풍성히 맛보며 그 속에 실제로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하나부터 끝까지 모두 말씀, 말씀의 신앙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8일(금)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