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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비잔틴 제국 세계사를 바꾼 사건들 - 콘스탄티노플 함락..
치우천 추천 0 조회 919 04.11.13 15:26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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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4.11.13 15:28

    첫댓글 술탄 메메드(마호메트) 2세가 난공불락인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파괴할 때 사용한 대포가 바로 우르반의거포. 미디블 토탈워의 포병유닛'밤발드'나 '모탈'과 비슷한 것 같군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대포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사실상 중세가 끝난 셈..

  • 04.11.13 14:12

    딴건몰라도 배가지고 산을 넘엇다는것이 정말 경이롭기만합니다..

  • 작성자 04.11.13 14:56

    3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 공방전이 3년이었지만,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불과 두 달만에 끝났음.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통찰력이 있었다면 견고한 성벽에 의존하지 말고, 헝가리 기술자 우르바누스가 제안한 청동 대포 개발 계획을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 작성자 04.11.13 14:58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는 칼과 화살만으로 싸웠던 '기사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간파하고 우르바누스에게 거액을 주고 대포를 제작하게 했죠. 우리나라도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극심한데 기술의 진보를 무시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 배워야 할 겁니다.

  • 04.11.13 15:01

    이 책 신간인가요? 빌릴수 있다면 도서실에서 빌려봐야겠군요

  • 04.11.13 16:11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현 한국 사회의 이공계 기피 현상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 04.11.13 20:18

    이책재밌긴하더이다, 치우천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두달이었던가요..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그책좀찾아봐야겠는데 어디있는지원..

  • 작성자 04.11.14 12:20

    신간이라 도서관에서 구하기 어려울 지도..스티븐 런치만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은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좀 다르더군요. 책의 행간에서 느낀 건데..전자는 비잔틴 사람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고, 후자는 오스만 투르크의 강력한 공격을 좀 더 부각시킨 것 같아요.

  • 작성자 04.11.14 12:21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서양과 동양 간의 한판 승부라서 영국학자와 일본작가의 관점이 서로 차이가 있는 건가? 다크킬러님이 말씀하신대로 투르크는 전함을 육지로 운반해 북쪽 금각만으로 옮겼고, 해군과 육군의 병사가 함께 성벽을 돌파하는 인해전술에서 정복왕 메메드2세의 집념이 무섭다는 건 실감했음.

  • 04.11.14 16:51

    본시 해운 전통이 없던 투르크 인지라 그래도 타 해운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전함의 크기가 작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래봐야 전함이 전함인지라 크긴 무지하게 컸겠지만요... 그나저나 제 생각엔 금각만을 쇠사슬로 막아놓을 생각을 한 비잔틴 쪽도 대단하더군요... 좁다해도 거길 쇠사슬로 막으려면 그 쇠가 얼마겠습니

  • 04.11.14 16:52

    까. 만들다 지쳐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일것 같더군요...--;;;

  • 04.11.14 20:18

    전 치우천님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네요.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우르반의 말을 수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결정적인 자금부족이었습니다... !!!

  • 04.11.14 20:18

    그리고 저책이 신간이면서, 이번에 무슨 인문독후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 중에 하나더군요. 그래서 불티나게 팔리더군요.

  • 04.11.14 20:58

    책 사긴 글렀네요..(어차피 돈도 없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앞뒤 사정에 대한 이해 없이 100% 느낄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04.11.17 16:14

    제가 알기로는 1000년 아틸라도 콘스탄티노플 뚫었다고 들었습니다만..

  • 04.11.17 17:43

    그런적은 없던걸로 아는데요. 1204년과 1453년 이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적은 없는걸로 압니다만...(그리고 1000년이라면 아틸라가 활동하는 시기도 아니죠.

  • 04.11.17 21:48

    아틸라는 콘스탄티노플로 가려다가 말고 서로마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즉 공격한 적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 적어도 사료상으론...

  • 04.11.17 21:51

    그리고 만을 사슬로 막는 방법은 적어도 제가아는 바론 유럽쪽에선 많이 쓰였습니다. 아마 동양에서도 쓰이지 않았을까하지만 이건 정확히 모르겠고, 어쨋든 로마 시절에도 쓰였습니다. 금각만이 얼마나 넓은 지는 모르겠으나 항구방어시 쓰인 전략중 하나.

  • 04.11.17 21:54

    하나 더 제가 생각하기론 우르반의 대포가 있었든 없었든 이미 로마제국이 진게임이었습니다. 방어병력이 5000명도 안되는 상황에서라면 꼭 터키가 아니더라도 질 가능성이 높은데, 게다가 당시로선 거의 무한인력의 터키였으니...말이 무한이지 졸병들이 불쌍타..ㅡ.ㅡ

  • 04.12.31 22:27

    치우천님 콘스탄티누스11세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고는 완전히 텅 비고 수비군은 8천가량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2만명의 서유럽 구원군은 전멸, 성에 기대는 수 밖에 없었죠. 대포300문과 육상군 20만 함선 400척을 수비군 8000으로 막으려 한 데서 이미 콘스탄티누스11세는 죽을을 예감하지 않았을까요? 체통을 버리

  • 04.12.31 22:28

    면서까지 교황에게 카톨릭으로 개종하겠다고하면서까지 구원군을 요청했지만.. 결국 1200년 역사에 맞는 장렬한 최후였죠.. 애초에 성벽에 기대는 순간부터 이길 가능성은 0% 니....

  • 04.12.31 22:30

    아 엘 테무르님 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겁니다. 아틸라는 콘스탄티노플의 2중성벽을 뚫지 못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1200년 역사중 세워진지 900년만인 1204년에 한번 그로부터 200년후인 1453년 밖에 없습니다. 아틸라는 대신 조공물을 두둑히 챙겨갔지요

  • ,MTW2에서는 콘스탄티노플도 성벽 하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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