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孝宗 때의 禮學者·性理學者. 字는 士剛, 號는 愼獨齋. 本貫은 光山. 沙溪 金長生의 아들. 아버지와 龜峯 宋翼弼에게서 예학을 전수받았다. 參奉 때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였다가 仁祖反正 후 등용되었다. 인조 중기 이후 功西派가 집권하자 사퇴하였다.
효종 즉위 후 淸陰 金尙憲 등과 함께 재등용되어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어 효종과 함께 北伐을 계획하였다. 이 때 실각한 공서파의 金自點이 淸나라에 북벌 계획을 밀고함으로써 청나라의 문책이 일어나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임하였다. 그 후 다시 대사헌·좌찬성 등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의 戒懼謹獨의 공부를 계승하였으며, 眞德秀의 「홀로 걸을 때에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고, 홀로 잠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럽지 않다(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는 말을 써서 自號를 지었다. 특히 禮學에 힘써 父師에게서 전승한 것을 더욱 연구하여 「喪禮備要」 등 沙溪의 舊本을 하나하나 검토 수정하였다. 또 「禮」라는 것은 人慾을 억제하고 天理를 보전하는 법칙이라고 하여 예를 숭상하였다.
따라서 당시 그의 門徒는 모두 관혼상제의 禮에 통달하였으며 그의 예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고 한다.
性理說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설을 계승하여 栗谷의 氣發一途說을 고수하였다. 그는 부친의 行狀을 지을 때 「아버지께서 일찍이 「栗谷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發하는 것은 氣요, 發하는 所以는 理이다. 만일 理氣가 분리되고 합하는 것이 있다면 太極과 陰陽이 서로 動한다는 것이 되어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태극과 음양이 서로 動할 수 없으면 理와 氣가 서로 發한다는 것이 어찌 그릇된 것이 아닌가」하고 말씀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格言이다」라고 沙溪의 이기설을 설명하였다. 그는 부친인 沙溪와 함께 朝鮮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다.
門下에 美村 尹宣擧와 市南 俞棨 · 草廬 李惟泰 · 石湖 尹文擧 등의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文廟와 孝宗의 廟庭에 配享되었다. 孝宗 9년에 遯巖書院에 배향하였고, 高宗 8년에 文廟에 從祀하였다. 位牌를 모신 곳으로는 沃川의 滄洲書院·鳳山의 文井書院·扶餘의 浮山書院 등이 있다. 諡號는 文敬이다. 著書에 「愼獨齋遺稿」, 편저에 「疑禮問解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