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昭君-2(왕소군)-東方逵(동방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아니하네.
자연히 옷이 헐렁해지니
허리를 가늘게 하려 함이 아니라네.
直譯(직역)
오랑캐(胡) 땅에는(地) 꽃(花) 풀이(草) 없으니(無)
봄이(春) 와도(來) 봄(春) 같지(似) 아니하네(不).
저절로(自) 그러하게(然) 옷(衣) 띠가(帶) 느슨해 진 것은(緩)
이는(是) 몸(身) 허리를(腰) 위함이(爲) 아니라네(非).
題意(제의)
花草도 없는 오랑캐 땅에서 살다보니 꽃피는 따뜻한 고향이 그리워 몸도 야위게 된 王昭君의 모습을 읊은 詩(시).
한(漢)나라 원제(元帝BC74~BC33)는 색(色)을 밝힌 인물이었다. 장안(長安)의 미인이라는 미인은 모두 궁(宮)으로 불러들여 궁녀로 삼았다. 그렇게 들인 여인이 3000여 명. 원제는 궁녀를 바꿔 가며 밤을 보냈다. 고르는 것에 지친 그는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그림을 보고 여인을 간택하기 위해서다.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이름의 궁녀도 있었다. 절세 미인이 따로 없었다. 후대인들이 그를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초선(貂蟬)등과 함께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왕소군은 이미 고령이 된 원제에 별 뜻이 없었다. 다른 궁녀들은 모연수에게 돈을 줘가며 잘 그려달라고 매달렸지만, 왕소군은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그림 속의 얼굴은 실물보다 이쁘지 않았다.
어느 날 북방의 흉노족 족장이 원제를 만나 한족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흉노족을 잘 보듬어야 했던 원제는 가장 이쁘지 않은 궁녀를 그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가 바로 왕소군이다. 원제는 작별 인사 차 온 왕소군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림과는 달리 절세 미인이었던 때문이다.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럼에도 흉노와의 약속은 지켜야 했다. 왕소군은 눈물로 떠나게 된다.
이국 땅으로 가는 길, 왕소군은 고향 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했다.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한 무리 기러기가 날개짓을 잊고 그만 땅으로 고꾸라질 정도였다. 낙안(落雁)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훗날 많은 화가들이 왕소군을 그렸고, 시인들은 그의 애달픈 삶을 노래했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게 바로 당(唐)나라 측천무후의 좌사(左史)였던 동방규가 쓴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다.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첫댓글 오늘은 왕소군((王昭君)에 대하여 고부도 잘하고,
東方逵의 좋은 詩,도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고맙습니다.
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王昭君에 관한 글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랑캐 땅이라고 해서 어찌 화초가 없을까,
마음이 편치 않으니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몸매도 가꾸지 않으니 모든 것이 허약해졌으니
봄이 와도 봄같이 않다고 읊은 시입니다. 감사합니다.
春來不似春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공부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