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겠다는 말인가? 자네?"
모나드리우스 산맥의 한 오두막.
두 명의 사내와 한 소녀가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소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봐. 당신이 아무리 에이션트 급과 필적하는 마도사라고 해도 도시 한 가운데의 처형장에서, 그 것도 짐짝 하나까지 들고튀는 건 무리가 있다고. 에이션트를 넘어선 고룡이 폴리모프 한 상태라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물론 도시를 날려버린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피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지."
붉은 머리칼에 귀여운 인상을 가진 이 소녀의 정체는 윔 급 레드 드레곤 칼 루이에의 새로운 폴리모프 형태였다. 유희 중 연인인 빈센트와 나란히 세워 두면 아버지와 딸로 보였다. 빈센트는 아무말하지 않고 스프를 들이키고 있는 사내, 김화민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어떤 말을 한다해도 자네의 결론은 가야 한다겠지?"
"..."
화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 빈센트는 다시 물었다.
"왜지?"
"...그녀만이 나를 존재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화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자네의 목숨과 바꾸라고 하라 해도 바꾸겠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길 자청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네는 그림자의 마수왕을 흡수한 탓에 낮에는 마력도 절반으로 감소한다고 들었네. 대책은 있는 것인가?"
"일단 부딪치고 봐야지요."
화민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전신을 감싸고 있는 로브의 끈을 단단히 매며 중얼거렸다.
"그럼 가봐야겠습니다. 애시당초 목적이던 네크로폴리스에 관한 조사는 혁명군으로 인해 물 건너 가버렸고 테라칸 세르반의 초대에는 응할 테니 그 때 보도록 하지요."
화민은 그대로 텔레포트를 해서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칼 루이에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차 한 잔 할까요? 빈센트?"
"수민이 녀석은..."
윤기가 보라의 말을 듣고서 입을 열었다.
"마로드.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시선이 윤기에게로 모여들었다. 윤기는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 녀석은 신분제나 평등이나 자유... 더 낳은 세상 따위에는 관심 없지요. 권력에는 더더욱. 그 녀석은 단지 마로드라는 나라를 유지시키고자 할 뿐입니다."
"무슨 뜻이죠?"
세리스 사제가 윤기를 보며 물었다. 윤기는 입을 열지 않았다. 보라는 그런 윤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르차넨 젝슨, 샤드 베일루스, 프란츠 하이시커... 이런 이름들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인거야?"
"그래. 하지만 그 녀석 바보지. 자신이 그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자신에게 지워진 이름의 무게를 단지 마로드가 존재하는 것으로 덜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그렇고..."
보라는 윤기를 향해 말했다.
"그 것은 너도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지 않아? 너도 바보잖아. 네가 흐르게 만든 피의 무게를 혼자 책임지려는 바보."
"후훗. 어쩌면 혼돈의 여울 속에서 비롯된 인간이란 존재들은 모두 바보가 아닐까?"
"피... 또 엉터리 같은 철학을 내세우실 셈이야?"
보라가 윤기를 향해 말했다. 그 순간 세리스 사제는 윤기를 주목하고 있었다. 세리스 사제는 과연 신탁이 가리키는 이들이 대륙 전쟁의 영웅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속세의 아들을 찾는 다는 것은 사실 대외적인 이유였다. 교황과 세리스 사제만이 받은 파이란의 신탁. 세리스 사제는 그 신탁의 주인공들을 찾아야 했다. 그 것이 지금 그녀가 교단을 떠나 여행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였다.
"자, 그럼 결론은 뭐죠?"
레니 사제가 윤기를 보며 물었다. 윤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혁명군과 맞설 필요가 있겠지요."
"네?"
"무턱대고 사라져버리면 세레네즈는 피로 물들어버립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다른 귀족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위해 세레네즈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혁명군과 맞서려고 하겠지요. 그러면 결국 진정으로 피를 흘리는 것은 사람들. 저는 그 것을 막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혁명군과 맞설 필요가 있지요. 밖에 누구 있습니까?"
윤기가 소리치자 무장을 한 기사 하나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세리스 사제는 그 기사가 들어오면서 방안에 미미한 마나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방음 결계를 쳐 놓은 것이었다.
"지금 당장 크리스티앙 대공 전하와 레비던트 후작에게 전한다. 각 수도 방어 병력 1천 씩을 이끌고 항구로 전진 배치. 반도들의 상륙을 저지한다. 헬던트 후작은 성 벽 위에서 마법사들과 주술사들을 이끌고 후방 지원을. 황실기사단은 도시의 주민들을 내성으로 인도하며 모든 귀족들은 세실리드 중앙홀로 모이라고 해라. 그리고..."
윤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순백의 위저드 6754대 마스터, 브리칸 시르크의 권한으로 위고리안 판타시즘의 중추의 세실리오스 코안을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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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소문 없이 브리칸 시그덩의 계급이 승진되어 마스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위고리안 판타시즘은 쓸모가 없게된 마법진이지만 홍윤기는 지금 그 것을 부활 시키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이지요. 그에 관해서는 제4막으로 넘기고 다음 내용은 김화민의 박혜진(엘레나 여황) 구출 작전입니다. 그럼 기대해 주시길...
첫댓글 당연히 기대를 해야죠>_< 아이...근데 신미록은 인물이랑 장소가 너무나 많이 나와서 딸리는 제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돼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