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1441~1468)의 본관은 의령이다.
할아버지는 태종의 부마인 의산군 남휘이고 어머니는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이다.
정선공주는 남이의 아버지인 남빈을 낳았는데 21세에 일찍 사망하였다.
태종과 오빠인 세종대왕이 무척 사랑했는데 그녀가 일찍 죽자 세종은 무척 슬퍼하였다고 한다.
남이는 태종의 외증손이며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명문가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연고로 1475년(세조3)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무직을 역임했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쳐 진압하여 적개공신1등에 봉해진 후,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등군공에 올랐으며, 그 뒤 공조판서에 임명되였다.
1468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했으며, 이어 26세에 병조판서에 발탁됐다.
그러나 예종이 즉위하면서 신숙주.한명회등에 의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등장한 신진세력이 제거될 때 형조판서 강희맹이 지중추부사 한계희에게 남이의 사람됨이 군사를 장악하기에는 마땅치 않다고 말한 것을 한계희가 예종에게 아룀으로써 병조판서에서 해직되어 겸사복장으로 물러났다.
첫댓글 28세때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등의 모함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불세출의 영웅 남이장군을 생각하면 님께서 언급하신 세월의 무상함과 권력의 허망함 그리고 인간욕망의 부질없음을 동시에 떠오르게 합니다
작금의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각설하고,,,
찜통더위 건강 잘 챙기시고 화이팅합시당^^
맞습니다 다르마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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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덕분에 건강히 일하고 산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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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일 또 후속편 올리겠나이다 비취구슬님
오늘도 역사한페이지 잘읽고갑니다
너무덥습니다 건강하새요
감사합니다 화성에 그분 묘소가 있어 관심을 갖게됩니다
불운한 무관입니다.
아마도 일찍 출세한 탓에
사려깊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그렇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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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그분 묘가 우리 화성시에 있어서 관심가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