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고 있는지(At Ease)
월터 드 라 메어(Walter de la Mare, 1873-1956)/후고(後考) 번역
세월이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
상심(傷心)을 치유해주는 약은 없으며
무사안일만 바라는 게으른 마음을 치유해주는 약도 없다.
비록 잔 머리는 돌리고 있어 편안하게 느끼지만 돌 같이 차갑기만 하다.
이루어 놓은 일 아무것도 없고 모진 풍상(風霜)을 겪은 얼굴도 아니다.
그러나 습관이 시키는 대로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고
버릇이 된 듯 한숨만 내몰아 쉬고 있다.
영혼이 죽어있기에 저주를 받아도 모르고 있다.
<At Ease>
Most wounds can Time repair;
But some are mortal -- these:
For a broken heart there is no balm,
No cure for a heart at ease --
At ease, but cold as stone,
Though the intellect spin on,
And the feat and practiced face may show
Nought of the life that is gone;
But smiles, as by habit taught;
And sighs, as by custom led;
And the soul within is safe from damnation,
Since it is dead.
첫댓글 참 현재의, 현 세상의 나태함을 찌르는, 정공을 찌르는 글입니다. 무사안일만 바라는 게으른 마음 - 그저 상처받는게 주는 게 두려위서 다른 영혼한테 다가기지도 못하는, 그런 모양세들로 우리 천주교는 답보상태에 있다고 건방진 진단을 내려봅니다.
우리 주변에 사케오가 있는가 모두가 포기한 사람, 더 이상 선한 구석이라곤 찾아볼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 배우자, 처가 나 시댁식구, 성당교우, 동네이웃, 직장동료인가? 당신이 이렇게 말한 사람인가 ? 너한테 뭐라고 이해시켜 보려다가 지금까지 내 시간만 낭비했다. 넌, 구제불능이야, 이제 나도 포기했다. 너한테서 해방이야. 다시는 내집에 발도 들여놓지 마라.
- 아마 이렇게 가지 잔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잔인한 말을 하기 싫다. 하고 나면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난하게 한다. 맺고 끊는 예의와 정중한 무관심이라고 여기면서,... 전국 각지의성당에서 우리는 이런 쓰레기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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