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실 면벽
구월 말 추석에서 개천절로 이어진 연휴에 들어 창원에서 닷새를 보내고 거제로 복귀했다. 코로나 역병으로 귀성은 않고 근교 산행이나 강둑을 실컷 걸으며 제 철 피어난 야생화들을 완상했다. 추석 전날은 용제봉 정상으로, 추석날은 낙동강 강가로, 추석 이튿날은 여항산 미산령으로, 개천절은 서북동에서 감재를 넘었다. 시월 첫째 일요일 거제로 오던 날 오전은 창원천변으로 나갔다.
연휴가 끝나고 나니 달이 바뀐 시월 초순이었다. 짧은 가을방학을 마친 기분이었다. 월요일 새벽녘 잠을 깨어 이른 아침밥을 지어 먹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다섯 시 반에 와실 문을 나서니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올가을 들어 기온이 가장 많이 내려간 날이라 아침 공기가 서늘했다. 방향이 학교와 정반대인 연사 정류소로 나가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갔다.
벼들이 고개 숙인 들판은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조심스레 걸었다. 서녘 하늘엔 하현으로 기우는 열아흐레 달이 걸렸고 별빛도 간간이 보였다. 사위는 어둠 속인데 교회 십자가만 네온 불빛이 밤을 새워 밝히고 있었다. 연사리에 두 개 교회가 있고 연초천 건너 약수봉 산기슭에도 교회가 있었다. 연초천 둑으로 오르니 냇가 건너 효촌마을도 십자가가 보였다.
어둠이 쌓인 연사 들녘을 바라보며 둑길을 걸었다. 보안등이 켜진 상태라 길섶에 피어난 코스모스 꽃송이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냇가는 밤에 잠이 들었을 흰뺨검둥오리들이 새벽을 맞아 기지개를 켜지 시작했다. 한두 마리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비상을 준비하기도 했다. 날이 밝아오지 않은 때라 산책객은 드물었다. 연효교에 이르도록 한 노인과 중년 부부가 지나는 모습을 봤다.
교정으로 들어서니 날이 거의 밝아왔다. 동료나 학생이 아무도 없어 절간처럼 조용했다. 앞뜰에서 본관을 돌아 뒤뜰로 갔다. 절개지 언덕 봉숭아꽃을 살폈더니 끝물이었다. 지난 광복절 무렵부터 꽃을 피웠으니 달포 가량 화사했던 언덕이었다. 이제 제 임무 다하고 열매를 맺어 잎줄기는 시들어갈 테다. 내년 봄 싹이 트면 비좁은 곳은 솎아주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어 가꿀 생각이다.
내가 지내는 문화보건부실로 들어 노트북을 켜 뉴스를 몇 줄 검색하고 글을 한 편 남겼다. 간밤에 구상해둔 글감은 제목도 ‘글감을 찾아서’였다. 청소년기 글쓰기에서 영향을 받은 서책이나 인물을 언급하고 아침 출근길 동선에 지나온 어둠 속 연사 들판과 교정의 끝물 봉숭아도 죄다 글감이 된다고 했다. 탈고한 글은 문학동인 카페에 올리고 몇몇 지인들에게 메일 첨부파일로 넘겼다.
일과를 끝내고 정한 시각에 교정을 나섰다. 해는 점차 짧아지고 있다만 어디로 산책을 나서도 좋은 계절이다. 내가 머무는 연사 일대는 자주 나가 신선감이 떨어졌다. 연사고개로 올라 유계 임도를 걷거나 장승포로 나가 해안로를 걸어봄직도 했다. 기온이 내려가 쌀쌀하긴 해도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시내버스로 이동해야 하고 두어 시간 걸려 저녁때가 늦어진다.
연휴에 산천 주유를 했는지라 마음을 돌려 그냥 와실에 지내기로 했다. 와실에 머물면 달리 할 일이 없다. 저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 샤워를 마치면 세탁기를 돌리는 정도다. 내가 평소 달여 먹는 영지버섯이나 헛개나무로 약차를 끓이기도 한다. 전기밥솥 전원을 끼워두고 밥이 지어지는 사이 곡차 상을 차렸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인 부두부침과 민어포전을 꺼내 안주로 삼았다.
냉장고에 비축해둔 옥수수동동주를 꺼냈다. 멀리 충북 청주 문의양조장에서 제조된 막걸리로 알밤막걸리와 함께 반주로 드는 곡차였다. 자작으로 두어 잔 비우는 사이 밥이 지어져 보온으로 넘어갔다. 이왕 차린 술상은 밥상으로 전환시켜 밥을 퍼 수저를 들었다. 이후 설거지와 함께 내일 아침을 지을 쌀을 씻어두었다. 약차를 끓이는 일과 세탁기가 돌고 난 뒤 빨래를 널고 나니… 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