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절정이다. 무엇이 되었든 절정을 미워하지 않는다. 기승을 부리는 절정의 순진을 얌전하게 따라간다. 비록 더위가 힘들지만 더위가 수그러드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 여름이 한 해의 끝이다. 여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멈추고 정지하게 된다. 더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 이수명 산문집『내가 없는 쓰기』난다 / 2023 -
안부 인사를 대신해 우리는, 계절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간단히 노닥이기 좋은 소재이며,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해보는 데에도 제법 쓸모가 있는 이 질문을 나 역시 받곤 한다.
고민할 것 없다. 어차피 봄, 여름, 가을, 겨울 넷 중 하나 아닌가. “아, 저는 간절기가 좋은데요”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사 너무 진지한 건 아닌지 생각해볼지어다. 그렇게 따지면 계절이 어디 넷뿐인가. 시큼 달콤한 살구가 열리고 시원함으로 가득 찬 수박을 판매하고 장맛비가 내리고 휴가를 떠나는 매 순간순간이 계절이겠지. 그러니 나는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여름이라고 답한다. 청춘의 계절이다. 생기 넘치는 것들로 가득한 이 시절을 시샘 가득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지나와버려 내 것이 아니고, 도로 누리며 내 것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그땐 좋았지’와 같은 회상의 배경은 어쩐지 여름이 아닌지. 그리하여 요즘 같은 때가 되면, 제목에 ‘여름’이란 단어가 포함된 시집이 부쩍 판매된다. 젊은 사람들은 한껏 누리고 싶어서, 나이 든 사람들은 여름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찾아보는 거겠지.
그러나, 또 지나고 보면 지금 이 순간 또한 여름일 것이다. 내 어머니가 보기에 나는 그저 어린이에 불과한 것처럼 나이도 계절도 다들 저마다의 때와 공간을 품고 있을 테니.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청춘의 계절 여름이란,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후회하지 않게 만끽할 수 있도록, 이 여름 부디 그리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