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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참석자는 가족, 친지, 친구 등 다 아는 얼굴이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호기심에 관 앞으로 다가갔다가 충격에 얼어붙는다. 관 속에 누운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 아닌가. 기업인이자 자기계발 컨설턴트인 스티븐 코비는 이렇게 독자들을 상상 속 자신의 장례식장으로 초대하기를 즐겼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장례식장을 나와 무덤 앞에 서보라. 내 묘비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가. 어떤 글이 묘비명이길 바라는가.” 인생을 성찰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삶을 반추하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는 묘비명 써보기 강좌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묘비명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흔적이다. 이것이 죽음과 함께 씻기거나 잊히지 않는 건 ‘죽음의 마당’이라는 기록의 시점 때문. 백조가 최후에 단 한 번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울 듯, 인간도 죽음을 예감하고야 실핏줄 끝까지 진솔해진다. 누군가의 발가벗은 마지막 외침 앞에서 산 자는 옷깃을 여미고, 때로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가려온 가면 뒤의 허공을 모골이 송연하게 바라본다. 세상 소풍 … 아쉬울 것 없어라… 35년간 군 생활을 하며 공군 장성에까지 오른 윤상주(56·한국항공 상무) 씨는 전역을 앞두고 뜻 모를 공허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 나가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맞닥뜨린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그를 뼛속까지 흔들었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세계적 대문호조차 인생 막바지에 무슨 여한이 이리 남았을까(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나는 알았지, 무덤 주변에 머물 만큼 머물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편집자). 윤씨는 죽음 앞에서야 털어놓는 마지막 진실을 찾아 묘비명 수집에 나섰다. 유명 인사들이 직접 남긴 묘비명을 찾아 도서관을 뒤지고, 몇 개월간 국립현충원과 공원묘지를 떠돌았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것 120가지를 추려 2007년 말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제목으로 한 작은 책자를 펴냈다. 100부가량 인쇄한 책을 전역 선물로 후배들에게 돌리면서 윤씨는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묘비 사이를 누비노라면 나는 어떤 묘비명을 남겨야 할까 하는 생각에 절로 숙연해졌죠. 전역을 앞둔 그때의 체험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힘을 다해 살아놓고도 성에 차지 않은 이가 버나드 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행(奇行)으로 이름을 날린 승려이자 화가 중광은 ‘괜히 왔다 간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그의 파격적인 삶조차 스스로의 기준에는 미달이었을까. 중광의 한마디에서 윤씨는 어떤 장문의 연설보다 긴 여운을 느꼈다.
삼하 18:18
위선을 경계합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명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Hyde)란 책을 보면, 어느 동네에 마음이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흠모한 나머지 저 사람이 혹시 천사가 사람이 되어서 내려오지 아니하였는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밤마다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살인, 방화, 강간, 도둑, 소녀 유괴 등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공포에 떨며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날 칼경이 단장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그 단장을 보니까 바로 지킬 박사의 친구인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 박사에게 준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잠긴 문을 부스고 들어가 보니까 지킬 박사의 옷을 입고 자살해 죽은 하이드란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하이드란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지킬 박사였습니다. 이 끔찍한 범인 하이드란 사람이 바로 선량한 사람으로 이름난 지킬 박사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소설이 왜 명작으로 불리우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누구나 사람의 마음 속에 이 두가지 요소, 즉 지극히 선한 성풍과 지극히 악한 성품이 있는데 이 이중인격체를 잘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이떤 때는 천사와 같은 지킬 박사가 되고 어떤 때는 악마와 같은 하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스티븐이 쓴 '브로디 목사'라고 하는 책에는 브로디 목사가 낮에는 거룩한 목사 노릇을 하고 밤에는 도둑질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역시 이중인격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7:19-24에서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줄거원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말입니다. 모든 죄 중에 예수님이 무엇보다도 가장 미워한 죄가 바로 이 위선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장 미워하셨습니다. 강도라도, 창녀라도 혹 다른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진실하게 나오면 용서받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가리우고 위선으로 꾸미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이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서 예수님은 구원해 주시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강도는 사형을 당하는 그 순간에 솔직하게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에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무서운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진실하게 나오면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보기에는 진실하고 착해 보이는데 속에는 흉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고로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그렇게 사랑 많으신 예수님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하고 일곱 번이나 저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으로 마 23:27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이렇게 책망했습니다. 1. 솔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2. 바른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 1:19에 보면 "믿음와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양심으로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그이 보혈도 효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양심으로 먼저 죄를 깨달은 사람이라야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날카로운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은 점점 성화되고 하니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하니님의 뜻과 섭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설교를 유창하게 잘하고 남 듣기에 기도를 잘 하는 것 같아도 양심이 마비된 사람의 것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요 8:44에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위선자는 그 속에 마귀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양심 앞에 진실하지 못하고 양심을 속일 때 결국은 마귀에게 넘어가서 미귀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양심 앞에 진실하지 않으면 결국 선한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는 것과 같이 흉악한 자가 되고 이중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3. 절제해야 합니다. 고전 9:25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륙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청교도들의 금언 가운데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다니는 것은 금할 수 없으나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못하게 털어버려야 한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절제하고 금지해야 할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에나 보는 것에나 먹는 것에나 육신의 정욕을 절제햐야 합니다. 또한 시기, 혈기와 같은 감정도 절제해야 합니다. 이 절제하는 것이 없으면 자연히 범죄하게 되고 위선자가 되고 마은 것입니다. 4. 회개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달여가고 있는 위선자는 양심의 가책이나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최대한 사람의 눈에 걸리지 않으면 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애통하는 마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시 51:17에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주리아를 죽인 다음에 나단 선지자가 책망할 때 애통하면서 회개하고 구하기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범죄했을 때 상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할 때에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시 34:18에도 보면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 57:15에 보면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하고 말씀했습니다. 통회하는 것에 그치면 안됩니다. 그 죄를 미워하며 돌아서야 되겠습니다. 5.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히 9:14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이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요일 1:7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하고 했습니다. 또한 요일 1:9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며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불의"에는 포함되지 않는 죄가 없습니다. 어떠한 죄라도 솔직하고 애통하며 자복할 때 우리 주 예수의 피로 다 씻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양심 앞에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위선을 경계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우시의 신앙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솔직하고 진실합시다. 바른 양심을 가집시다. 그리고 절제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아 갑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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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존재 목사님 오늘도 함께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