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야수> 손병호 "배우는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직업이다” - 원문 |
영화에서 아주 럭셔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권상우가 거지 같은 험한 차림새로 나오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거 분장하느라 아주 오래 걸렸다. 액션이나 다른 면으로 힘든 것은 없었지만 보스답게 럭셔리하게 나오려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스타일 잡는 데 고생했다. 이번 <야수>에서도 <파이란>에 이어 부하이자 친구를 죽이는 역할로 나온다. 그러게 말이다. 보면 항상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양자택일의 역할인 것 같다. 단편 <소풍>에서도 가족을 죽이지 않나. 나도 죽고. 항상 그런 역할을 맡게 되네. 애기가 아직 어리다고 들었다. 딸인데, 이제 두돌 됐다. 결혼을 늦게 했다. 마흔에. 와이프는 송일곤 감독의 <소풍>에서 같이 나온 무용가 최지연이다. 송일곤 감독이 원래 <소풍>에 방은진, 문성근 선배를 내정했다가 문성근 선배가 안 되니까 연극배우 조준형을 섭외하려고 연극을 보러 왔다가 거기 나오는 우리 와이프를 보고 한눈에 반해 섭외를 부탁했다. 세 번인가 부탁하러 오는데 그 때마다 내가 옆에 있었던 거다. 나중에 우리 둘이 그림이 되니까 같이 출연해 달라면서 단편 <간과 감자>를 주더라. 그걸 보고 출연하기로 했다. 당구는 자주 치나? 뭐 가끔. 얼마나 치나? 200이다. 어, 이거 불안하다. 좀 치는데. 이거 내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게임비 내기 어떤가? 게임비 내기로 할까? 그러자. 연기는 언제부터 한 건가? 돈 벌려고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있는데, 대한극장 옆에 은하수, 미리내 같은 어린이 극장이 몇 군데 있었다. 붙어 있는 벽지 보니까 출연배우 얼마, 뭐 이런 식으로 써 있더라. 그래서 들어가게 됐는데, 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거다. <들장미 소녀 캔디>에서 '닐' 역도 했었다더라. 맞다. 그때부터 악역과 인연이 있었나보다.(웃음) 연극계에 오래 있었다. <소풍>으로 영화 데뷔를 했고. 다른 장르에 도전한 적 있나? TV 조연출을 한 적 있었다. 교수님이 '넌 돈 벌어야한다'며 소개시켜줘서 하게 됐는데, TV는 영 별로더라. 그야말로 TV는 편집의 예술이더라. '이게 뭔 예술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난 연극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뒤에 PD할 생각 없냐고 했는데 거절했지. 몇 년 뒤에 좀 후회하긴 했지만.(웃음) 그 때 PD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야수>에선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하나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원래는 유강진 역할이 아니었다. 유강진은 유동근 선배가 맡기로 내정돼 있었다. 그런데 유동근 선배가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정치가 역할을 맡는 바람에 자리가 빈 거지. 지태랑 상우, 김성수 감독이 나를 추천해줘서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운이 좋은 거라고 봐야지. 어부지리다. 어부지리는 아닌 것 같다. <야수>에서 친구 죽이는 장면에선 정말 술을 먹고 찍은 건가? 눈빛이 대단했다. 음, 소주 조금 마시고 찍었다. 원래는 그 장면이 한 '퍽'이 아니라 몇 번을 사정없이 치는 거였다. 그런데 난 그건 좀 뻔하다고 봤다. 요즘 대중들이 무조건 오열하고 지르는 연기에 익숙해져 있고, 그런 연기를 두고 '연기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냉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깔끔하게 한 번 '퍽!'. 영화상에서는 한 번에 끝냈는데 원래는 두 세 번 치는 것을 다른 각도로 찍었다. 디렉터스 컷에 나오겠지. 어떤 악역이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악역보다 훨씬 냉정하고 무감정한 인물인데, 유강진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유강진이란 캐릭터를 쉽게 말하자면 <파이란>의 용식의 20년 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파이란>의 용식이는 시골에서 활동하는 중간 보스이다. 나이도 아직 젊고. 그런 용식이가 모진 세월을 겪으며 규모가 커지고 정치까지 하는 거다. 용식이가 나이 들면 유강진이 되는 거지. 더 세상에 단련되고, 무자비해지는 거지. <흡혈형사 나도열>에서도 악역이라던데? 뱀파이어는 아닌가? 뱀파이어는 아니지만 완전히 새롭다. <꽃섬>의 연장전이라고 봐도 될 거다. <야수>가 <파이란>의 20년 후 모습인 것처럼. 악역만 자꾸 맡는 게 싫을 법도 한데. 그러게. 나도 감독들한테 코미디 하고 싶다고 말하고 그런다. 처음엔 악역만 계속 맡는 게 그랬는데, 달리 생각해보니 악역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매력이 있고 아우라가 있는데. 제각각의 악역이 내게 힘이 되주기도 하고. 흥행은 잘 안 됐지만 <엄마>에서의 '착한 큰아들' 역할도 좋았다. <엄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촬영현장이다. 지금도 그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고. 모임도 만들어서 지금 회장에 추대됐다.(웃음) 재밌고, 인간적으로 따뜻한, 그런 현장이었기에 흥행이 안 돼서 아쉽고 속상하다. 감독도, 배우들도, PD도, 스태프도 모두 한 식구 같았다. 그래서 내 꿈은 막내 한 명, 한 명까지 모두 또 만나는 거다. 해남에서 모두 모여 한 식구처럼, 합숙하듯 찍었으니 좋았던 것 같다. 원래 촬영현장이 좋으면 영화도 잘 되는 편인데.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원래 시나리오는 훨씬 더 좋았는데 찍으면서 [너무 추상적이지 않느냐] 뭐, 이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시나리오보다는 못하게 나왔다. 그런 현실이 속상하다. 흥행과 투자, 여러 가지 조건을 보다보니까 원래대로 찍지 못하는 것. TV 조연출을 한 번 했고, <좋은 사람>에 출연했다. 좋은 역할이 있으면 TV도 할 생각이 있는가. 정말 좋은 역할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아직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TV란 건 정말 바쁘게 돌아간다. 연극이나 영화처럼 인간들이 모여 친해지고 그런 느낌이 안 산다. 쫓기면서 찍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섰다.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너무 긴데. 우리가 원하는 게 그런 긴 이야기다. 당구는 우리가 많이 치고 있을 테니 풀어달라. 너무나 흔한 얘기인데. 연극하면서 누가 라면 먹으며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나. 뭐, 그렇다고 내가 라면 먹었다는 얘긴 아닌데.(웃음) 그리고 요즘은 라면 먹는 사람 보고는 '별미 먹는다'고 하지. 안 그런가.(웃음) 그렇게 연극을 하고, 그러다 영화를 하게 되고. 운명인 것 같다. 힘들게 연극하던 이들도 막상 가정을 꾸리면 달라진다고 하더라.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다. 나 혼자 굶는 게 아니라 처자식 먹여살려야 하니까. 그러니까 뮤지컬 같은 곳에도 눈을 돌리게 되고. 뮤지컬은 연극보다 규모도 크고, 개런티도 세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남경주가 내 동기이다. 그래도 나는 연극이 더 좋은 것 같다. 연극하면서 좋은 선배들 만나고 그러니까 젊을 땐 돈 못 벌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29살 늦은 나이에 목화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고. 삶을 많이 깨달았다. 인간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포함해 많은 경험을 느껴봐야 한다. 그래서 난 배우들은 꼭 군대에 갔다 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는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여 있다. 보초 설 때, 고참들과 얘기하고 그러다보면 가족 이야기 나오고, 이러면 모두 통하는 게 있다. 그러면서도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삶은 없다. 온갖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찌보면 연극적으로 보면 내 삶은 게임이 안 된다. 영화를 보면 당신의 눈빛이 굉장히 슬프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알았지?(웃음) 와이프랑 결혼하기 전 데이트할 때,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점쟁이가 나더러 하는 말이 [이 사람은 죽음만을 생각한다]고 하더라. 정말 그랬다. [이러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뭐, 이랬었다. 인간이면 사실 따뜻하게 살아야 하는데. 사실 내 삶의 목적은 [행복 추구]다. 내 삶 자체가 고통스럽고 힘들었기에 좀더 행복하고자 하는 거다. 행복을 갖고 싶어서 이것저것 다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나이 들수록 점점 슬픔이 존재하는 비중이 커간다. 물론 그만큼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도 많이 받지만. 행복을 추구하지만, 항상 슬픔이 존재하는 것, 그게 인간이다. |
그럼, 마음에 안 드는 역할인데 출연료를 많이 준다면 어떻게 할 건가. (간단히) 해야죠.(일동 웃음) 나 혼자 사는 게 아니잖나. 가족이 있고, 또 자식을 낳아보니까 걔를 위해선 모든 것을 해주고 싶더라. 그게 부모 심정이다. 내가 죽더라도 자식을 위해선 다 해주고 싶다. 그러면 어쩌겠나. 안하겠나?(일동, '한다'고 대답) 거봐라. 물론 그래도 내 이름을 걸고 하니까 섣불리 하진 않는다. 관객들이 내 이름이 달린 영화를 보는 건데 섣불리 할 순 없다. 배우로서의 힘을 갖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배우로서 힘, 권력을 갖고 싶은 이유는 단 한 나다. 영화판의 여러 능력 있는 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다. 내 모토가 [더불어 살자]다. 영화를 찍다보면 여러 재능 있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지금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없다. 거대 자본과 거대 시장의 논리에 휩싸여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권력을 가자고 싶다는 거다. 이번에 1월, 2월 <야수>와 <흡혈형사 나도열>로 입지가 좀 굳혀지고, 그러다보면 나도 남들을 도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프 더 레코드로 묻는데, 후회되는 작품은 있는가? 후회되는 작품은 있는데, 다 끝까지 안 가고 중간에 엎어지거나 한다. 최첨단 스파이 얘기를 다룬 중국 합작 작품이었는데, 오천련, 조재현 나오는 <비너스>란 작품이 있었다. 얘기는 좋았는데 딱 한 번 찍고 나니까 이건 아니더라. 그러더니 결국 엎어지더라.(웃음) 딸 이름은 어떻게 되나. 지오다. 손지오. 알 지에 나 오자. 내 성 손에, 와이프 최지연에 지를 따고 해서 지오가 됐다. 그냥 집에서 부르다가 성명학 하는 데 가서 물어보니 좋다더라. 재밌는 바람이 하나 있는데, 난 걔가 커서 지오다노 모델이 됐음 좋겠다.(웃음) 남자면 다노, 여자면 지오. 전지현, 정우성 예쁘고 잘생기게 말이다.(일동 웃음) 가족이 생기면 어떻나.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족은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달란트'다. 흔히 혼자도 힘든데, 둘, 셋이 어떻게 사느냐 하지만 다 먹고 살 길이 생기더라. 옛말이 맞다. 자기 먹을 것은 타고나나 보다. 나도 지오 낳으면서 여러 가지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지오 낳고 <알포인트> 찍었고.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 무용을 좋아했나. 무용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냥 첫눈에 끌렸다. 계속 대시하는데 안 먹히더라. 몇 번 만나는데, '타장르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연극과 무용이 함께하는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같이 작업을 하다보니 이게, 무용이 참 부르주아틱한 거다. 연극은 정말 배곪는 사람들이 한다고 하지 않나. 무용은 무대 세트부터 모두 맡기고, 그런 걸 보니까 자격지심? 자존심? 뭐 그런 게 느껴지면서 좀 멀어 보였다, 와이프가. 그런 심정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무용 쪽 관계자 사람하고 쫑파티를 하는데 대판 했다. 불판(가스렌지)을 던지고…. 그러고 나니까 '아, 이젠 끝났구나' 싶더라. 그런데 와이프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무조건 사죄했지.(웃음) 남녀의 사랑은 눈물로 시작되는 것 같다.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보듬어주는 거지. 젊은이들은 사랑을 정열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사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장도영이 유강진을 쏘는 장면은 <대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도하고 찍은 건 아니다. 나도 그 장면은 재밌었다. 총이 난사되는 와중에도 가족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를 죽인 후의 모습과 더불어 유강진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흔치 않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해보고 싶은 역할은 있는가? 멜로를 하고 싶다. 안 어울린다고 생각 들겠지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주현, 오미희의 사랑 이야기 같은 멜로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사랑은 나이를 먹은 사람만이 표출해낼 수 있는 거다. 불혹 이상이 되어야 사랑의 진실성이 잘 드러나 보인다고 생각한다. <야수>하면서 힘들었던 건 없었나.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지만 다른 현장보다 좀 오래, 6개월을 찍다보니 사람이 피폐해지더라. 감독도 후배이고, 내가 연장자다보니까 후배들 이야기 들어주고, 현장 분위기 배려하는 게, 물론 내 성격이 편이긴 하지만 이번엔 좀 힘이 부칠 때도 있더라. 나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하니까. 권상우, 유지태 같은 젊은 배우와 함께 작업하니 어떻던가. 한 마디로 좋았다. 특히 지태 같은 경우, 술도 잘 하고 나처럼 연극도 하니까 여러모로 얘기할 거리가 많았다. <야수>할 때, 지태가 <육분의 륙> 준비하고 있었고. 지태가 내가 출연한 연극도 다 봤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할 땐 상우가 좀 빠졌지.(웃음) 그러면서 느낀건 젊은 배우들의 힘이 대단하다는 거였다. 지태의 경우 내가 별명도 붙여줬다. 열혈남아. 아주 뜨거운 남자다. 함께 작업하면서 희한했던 건 감독, 지태, 상우 모두 가족들에 대한 공통된 아픔이 있다는 거였다. 그 중에서도 엄마에 관해서. 엄마가 아프다거나 가족에게 힘든 일이 있었다거나. 그런 공통분모가 있으니 신기하더라. 서로의 아픔, 상처 이런 것들을 공유하다보니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그것을 극복해내고 하지만, 더 많이 겪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배우를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배우는 많은 것을 경험해봐야 한다. 게임 집중을 위해 인터뷰 잠시 중단. 피 튀기는 대접전(?) 후 손병호 승. 무빅, 게임비 1만 4,000원 내다. 그리고 저녁 식사. |
지오(딸아이)와는 시간을 자주 갖는 편인가? 촬영 없을 땐 내가 거의 돌본다. 얼마 전에 양재동에서 평창동으로 이사했는데, 앞에 북한산도 보이고, 가재도 살고 한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기에 서슴없이 이사했다. 집주인한테 값도 좀 깎아달라 하고. 양재동의 경우 집 앞에 도로 있고 차 다니고 하니까 애 데리고 살기엔 불안했다. 요즘은 같이 가재 잡으러 다닌다. 지오가 엄마보다 날 더 찾는다. 와이프도 공연하고, 강의 나가고 바쁘니까. 그런데 며칠 촬영하고 돌아오면 그새 엄마하고 친해져 있더라.(웃음) 지금은 한창 귀여울 나이다. 이제 곧 '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 온다는데 어떻게 될지. 연극계에 몸 담고 있던 배우들이 대거 충무로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극단 목화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게 오태석 선생님의 역량이다. 지금 그 나이에 아직도 자기가 작품 쓰고, 연극 올리고 하지 않나. 남들은 다 뒷짐 지고 있을 나이에. 정말 고생하며 배웠지. 서로 경쟁도 엄청 심했다. 심지어는 '저 선배만 없으면 내가 저 역할을 할텐데, 어디 안 다치나' 이런 마음도 불쑥불쑥 들었다. 배우들이 직접 무대 준비 다 하고. 선후배 위계질서도 엄청나게 엄했다. 언젠가 한 번 리딩 연습할 때, 담배 연기가 자욱하니까 대선배 한 명이 '거 환기 좀 시키자'라는 말을 했는데, 그러고나서 아래 후배들이 선배들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선배 입에서 먼저 그런 소리 나오게 만들었다고. 물론 선후배 사이 위계질서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힘들게 배웠다. 그렇게 모질게 배웠으니 지금 다들 이렇게 잘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박영규, 김응수, 유해진, 성지루, 박희순, 임원희, 김수로, 정원중….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지.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것인가? 따뜻한 멜로. 휴머니즘이 묻어나고, 뭔가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영화가 좋다. <시네마 천국><미션><천국의 아이들> 같은. 연극 연출도 하는데, 그럼 영화 연출에도 뜻이 있나? 물론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다. 내 영화를 찍을 때도 그런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영화를 찍고 싶다. |
이주영 기자 2006.01.10 |
첫댓글 참 멋있으신분...우리의 연원한 용식이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