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의 새
육정숙
'삶은 꿈꾸는 자들만의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비록 그 꿈이 크거나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자신
의 틀 안에서 그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면 이는 분
명 삶을 꿈꾸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서서히 꿈을 꾸다가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면 물론 錦上添花이겠지만 그러나 그 꿈이 실현 가능성이 절대
없다 하더라도 한순간 순간의 과정을 즐기며 살아 갈 수 있다면 그 자체만
으로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 여학교 때 짝꿍이 경찰청 총경이 되어 고향 모 지방의 경찰서장으
로 내려와 몇몇 친구들이 모였었다. 모두가 잘 나가는 자신의 입지를 나타내
는 듯 당당한 앞가슴에 빛나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지만 그중 나만 전업주
부였다.
같은 학교 같은 선생님 수하에서, 배우고 자랐는데 모두들 제 각기 역할들
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내 이름은 어
디로 가버렸을까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
난 늘 그렇게 내 이름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은 피해 의식 속에서 여
건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시시비비만 따지며 안일의 늪 속에 푹 빠진 채 그
모든 걸 모두 남의 탓으로만 돌리며 살아왔다. 35년이 넘는 세월의 차이는
이렇게 서로 달랐다. 자녀들도 모두 잘 자랐단다. 그들 모두에게 주어졌던
여건들이 잘 닦여진 고속도로처럼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는데도 나름대로의
꿈을 향한 그들은, 쉼 없는 날개 짓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깔과 향기를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베란다에 놓여있는 작은 새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날개를 가졌어도 마
음껏 나래를 펴고 날 수 없는 새!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무기력해
진 그들을 바라보며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그 어떤 다른 일들은 무의미했었
기에 좁은 새장 안이 좁은 줄 몰랐다. 그저 편안히 안주하고 싶어만 하는,
게으름의 타성에 흠씬 젖어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느 날 분명히 모이와 물을 주고 새장 문을 닫았는데 십자매 한 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집안에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좁은 새장
을 박차고 날아간 작은 새를 생각하니 순간 나는 박하사탕을 입안에 가득
물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이 오늘따라 더 없이 높고 넓기만
하다 투명하고 정갈한 하늘! 그 곳은 손끝만 닿아도 금방 푸른 물 뚝뚝 떨
어져 내려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의 싹이 순식간에 움터 오를 것만 같
았다. 숱한 잡념들을 씻어 내린 듯 비 개인 칠월 티끌 하나 없는 창공으로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날고 싶어졌다. 단 하루만이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
으로 마음껏 날아오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작은 새장 속에서 허둥대다가 실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은 키 재기라도 하
듯이 치솟은 건물들 틈새로 햇살은 뜨겁게 내려 쪼이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에 현기증마저 일었다. 오랜 동안 새장 안에서 길들여
져 온 나는 어느새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꽉 짜여진 시간표에 의
해 어긋남이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시간의 목마름이었다. 한 치의 실수가 용
납되지 않을 것만 같은 도심을 바라보며 나는 번데기처럼 자꾸만 움츠러들
었다. 어찌해야 할지 뜨거운 아스팔트위에 서있는 듯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모두 낯설고 어설펐다.
나머지 한 마리는 몹시도 파드득거리며 날아 다녔다. 떠나버린 임이 그리웠
던가! 산만하다 못해 제 몸을 거대한 창살(새가 보았을 때)에 내던지 듯 부
딪쳐가며 모이도 먹지 않고 허둥대다가 무슨 기척이라도 들리면 꽁지깃을
화들짝 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아있는 녀석이 가엾긴 하지만 한편으론
날아 가버린 녀석이 더 걱정스러웠다. 먹이를 구할 능력이 상실되었기에 며
칠 버티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 전의 입안 가득 화한 박하사탕 맛은 어
디로 가고 입안이 텁텁하니 쓴맛이 돌았다.
학습된 무기력 앞에서 난 어쩔 수 없이 작은 새장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내가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곳이 그리워졌다. 내가 살고
있는 주위를 돌아보면 인생살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터지고 부서지고 깨지
고 성한 곳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끝없는 날개 짓을
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 지체 장애이면서도 사력을 다하여 입으로,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 화가들 새벽이면 어김없이 어린 고학생이 신
문을 돌리며 새벽을 흔들고 오는 희망의 소리들이 있다. 그 희망이 작든 크
든 이루어지든 그렇지 못하던 그들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간다는 그 자체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살기 위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선에서 빵 조각을 얻기 위해 단조롭게 날
아 오가는 일 대신 살기 위한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無
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자신들이 지적으로 우수하며 재능 있는 생
물임을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는 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죽은 듯 해 보이는 번데기가 어느 날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오랜 시간 삶의 무게에 짓 눌려온 내 날개가 비록, 녹슬어 비상 할 수 없을
지라도 지금부터라 나는 날개 짓을 시작 하리라. 그래서 가끔은 허황된 망상
속에서 허덕일지 모르지만 거듭나는 삶을 위해 꿈이라도 꾸어 보리라. 그런
일들을 위한 과정은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
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겪으면서 우리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 가다보
면 삶의 모든 것들이, 바로 자연의 섭리임을 알 수 있다. 그 삶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둥지를 튼다. 그렇다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리라. 그런 자유로운 마음은 그 어떤 상황이 내 앞에 닥칠지라도 그것에 굴
하지 않고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누구든 원하는 곳, 있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그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생활에 무질
서한 방종이 아닌 질서를 지키며 마음을 고요하고 한가롭게 가지며 얽매임
없이 날고 싶은 거다.
나는 나머지 한 마리의 또 다른 비상을 위해 새장 문을 슬며시 열어 놓았
다. 2003 17집
첫댓글 자유로운 마음은 그 어떤 상황이 내 앞에 닥칠지라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누구든 원하는 곳, 있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그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생활에 무질서한 방종이 아닌 질서를 지키며 마음을 고요하고 한가롭게 가지며 얽매임 없이 날고 싶은 거다.
나는 나머지 한 마리의 또 다른 비상을 위해 새장 문을 슬며시 열어 놓았다.
죽은 듯 해 보이는 번데기가 어느 날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오랜 시간 삶의 무게에 짓 눌려온 내 날개가 비록, 녹슬어 비상 할 수 없을
지라도 지금부터라 나는 날개 짓을 시작 하리라. 그래서 가끔은 허황된 망상
속에서 허덕일지 모르지만 거듭나는 삶을 위해 꿈이라도 꾸어 보리라. 그런
일들을 위한 과정은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