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요나서 3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시간에는 요나서 2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를 하나님과의 귀한 만남의 장소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요나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렇게 평신도 이던지 목회자이던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시간을 우리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이 가질때에 우리는 신앙적인 건강함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 시간에 요한복음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셨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사셨는지? 본문이 말씀해 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낮에 다니는 자들은 빛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실족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시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짧은 생애를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데에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문제 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면 행동으로 옮기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늘 항상 예수님 자신이 행동하는 기준이 있으셨습니다. 그 기준에 따라 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낮에 다니는 삶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낮아 다니는 자들은 실족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예수님처럼 선택과 집중하는 삶에 신중을 기해야할 것입니다.
요나가 실패했던 요인중 한가지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이렇게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그 자리로 나아갔을때에 자신의 불순종과 교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영적인 시간들을 통하여서 우리를 때로는 부르십니다. 요나 역시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 앞에 물고기 뱃속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성숙한 일꾼되기에 필요로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가지 목표가 있으셨습니다. 한가지는 요나가 하나님의 소중한 일꾼되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는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하여서 두가지일 모두를 성취하십니다.
2. 본문강해
욘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욘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다 사용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깨어진 경험이 있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영적인 부흥을 이 땅 가운데 허락하실때에나? 또한 교회 가운데 부흥을 허락하실때에, 세상에 영적인 역사를 허락하실때에 사용하시는 도구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는 다른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온전히 깨뜨려진 경험이 있는 자들 중에 한 사람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온전히 깨뜨려지고, 낮아진 심령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무라도 들어서 사용하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급할때는 발람선지자를 나귀를 통해서도 교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한 영적인 부흥을 주시거나,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실때에, 어떤 자들을 통하여서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깨뜨려져 본적이 있는 사람, 눈물과 회개로 자기 자신의 참으로 악한 죄악됨을 경험해 본 자들을 통하여서 일하십니다. 참으로 요나 선지자는 1장을 통하여서 나타난 요나 선지자와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1장의 요나와 3장의 요나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요나는 2장의 물고기 뱃속에서의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영적으로 깨어지고,깨뜨려지도록 하셔서 사용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완전히 깨어지고 싶은 마음이 충만한 분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오늘이나 어제나 동일하십니다 깨어진 만큼 주님의 소중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온전히 깨뜨려지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태도로 나아가십시오. 아프지만 그것이 주님께 쓰임받는 지름길이 됩니다.
주님께 이렇게 순종하는 자는 크게 사용하세요. 그러나 자신이 살아서 깨어지지 않은 자들은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인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 깨어졌습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전심이 하나님께 나아갈때에, 돌아설때에, 그러할때에 우리의 마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어질 것입니다.
3. 니느웨의 회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요나 선지자에 대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니느웨 백성들에 대한 그런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면 우리는 놀랍니다. 어떻게 요나가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고 해서 이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고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맞는가?
요나는 니느웨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흘길을 걸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회개의 선포를 합니다. 앞으로 40일 후에 이성이 멸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단순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듣고서 강퍅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양심에 찔림을 받고, 굴복이되고, 심령에 애통해 하며, 눈물과 재를 뒤집어 쓰고 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가운데 은혜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이러한 일들이 충분히 일어납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당시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수차례에 걸쳐서 이웃나라의 침공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당시 앗수르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리하여서 이들은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전염병과 어려움이 이 도시에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니느웨 백성들의 마음은 극도의 두려움과 슬픔에 잠겨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서 곧 있으면 40일이 지나면 이땅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렇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을때에 이 외침은 뇌관에 불을 붙이는 듯한 놀라운 파장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이메세지를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깨어 집니다.
이 나라의 어린아이서부터 어른들과 심지어 임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혼이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악한 행동들과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던 모든 것들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긍휼히 여기는 민족들에게 은혜를 내리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그렇게 하십니다. 영혼들을 강팍하게도 하시고, 하나님께서 만일 사람들을 냉담하게 하시면 그들은 회개할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없이 부드럽게 하시면, 사람들은 애통과 눈물로 하나님께 눈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나타낼 민족들과 영혼들을 스스로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또 다른 자들에게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은헤를 우리 자신들이 더욱 누려야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요나처럼 주님께 쓰임받는 그런 생애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조차도 우리가 결심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