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연중 11주간 월요일(마태5,38-42)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의견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박할 생각을 하며 심지어는 골탕을 먹일 때도 있습니다.
남에게는 ‘넉넉한 마음으로 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냉정’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네가 그런 식으로 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협박하기도 합니다. '끼리끼리'도 있고 소위 '줄서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고 하십니다. 천 걸음을 걷기도 힘들거늘 이천 걸음을 걸어야 하고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 하시니 그저 당하고 있으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정말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싫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하라고 하시니 이유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당하고 있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악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주님께서 가르치는 정의는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갖은 조롱과 모욕을 안고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으니 오늘도 여전히 그 방법이 유효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철저히 허약함을 선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과 논쟁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보들과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말씀도 이런 측면에서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당시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태 복수법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이것이 가장 공정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맞서게 될 때, 그 안에서 더 큰 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건 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아니 그보다 큰 사랑으로 다가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넓은 마음으로 적대적인 상황을 빨리 끝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난과 죽음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른다면 그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