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고국천왕의 죽음 앞에서 다시 한 번 정치적 재기를 꿈꾸게 된 우왕후! 그러나 그녀의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주변 환경이 너무도 척박했다. 믿었던 친정은 박살이 났고, 내세울 자식 한명 없었던 상황. 결국 우왕후는 '고구려의 전통'을 마지막 승부수로 들고 나온다.
"군대에도 군번이란 게 있으니까… 일단은 큰 시동생부터 찾아가 보자."
우왕후는 고국천왕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는 그길로 첫째 시동생인 발기(發岐)에게 향한다(신대왕에게는 발기란 이름의 아들이 두 명 있었는데, 큰 아들이 발기拔奇, 셋째가 발기發岐였다).
"형수 이 야심한 밤에 웬일 이심까? 가뜩이나 형님 몸도 안 좋은데…"
"형님은 지금 관 사이즈 재고… 아니, 상복 사이즈… 아니,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구요. 툭 까놓고 말할게요. 언제까지 왕자로 살 거예요?"
"왕자가 어때서요? 그럼 공주 할까요?"
"지금 그걸 개그라고 치는 거예요? 센스하고는…"
"제 개그센스가 어때서요?"
"하여튼, 제가 말하고 싶은 건요. 남편한테 자식이 없잖아요."
"없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다음 왕위는 누가 차지 하냐는 거죠. 제가 보기엔 도련님이 딱인 거 같거든요? 촌수로 봐도 그렇고…"
"지금 저보고 왕 하라는 겁니까?"
"좋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덤으로 저도…"
"!"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 우왕후가 말한 고구려의 전통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형수!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거든요? 지금 형수가 소를 내뱉는지, 말을 내뱉는지 분간이 안가나 본데, 제발 개념 좀 탑재하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제가 개념을 찾아 드릴까요? 왕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다 천운이 따라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야심한 밤에 아녀자가 시동생 찾아와서 이게 뭐하자는 토킹 어바웃입니까? 이럴 시간 있으면, 형님 간호나 하세요. 그리고 옛정을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형수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형수 나이가 몇갭니까? 저 나름 눈 높습니다."
시동생 발기에게 제대로 씹혀버린 우왕후는 쪽팔림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었다. 그런 우왕후를 발기는 내쫓듯이 집밖으로 밀어냈다. 솔직히 이때의 상황을 보면, 발기가 화 낼만도 했다. 왜? 우왕후가 택도 없는 소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음 왕위는 고국천왕의 첫째 동생인 발기에게 돌아 올 상황. 그런데 여기에 난데없이 한물 간 페이스를 들이밀고 나타난 형수가 인심 쓰듯이 왕위를 주겠다니… 기도 안찰 노릇이다.
"저색희. 명절 때 와서 상 엎을 때부터 알아봤어.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누굴 가르치려는 거야? 이름도 촌스러운 주제에… 지가 세우면 얼마나 세운다구."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인 우왕후. 이렇게 그녀의 꿈은 무너지는 것일까?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김장이라도 해야지! 이대로 물러날 순 없어. 시동생이 걔 하나 뿐이야?"
발기에게 채인 우왕후는 그길로 둘째 시동생인 연우(延優)에게로 달려간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연우의 '영업정신'이었다. 투철한 영업마인드가 몸에 밴 연우는 우왕후가 야심한 밤에 자기 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뭔가를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형수님,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일단 앉으세요… 집이 누추해서… 야! 형수님 오셨는데, 지금 뭐하자는 거야! 당장 주안상… 아니 주안상은 그렇고, 다과상이라도 내와야 할 거 아냐!"
발기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우왕후는 마음이 움직였다.
"도련님, 제 말 잘 들어야 합니다. 아셨죠? 저기…형님이 방금 전에 돌아가셨어요."
"…형님이…"
"도련님, 지금 눈물 질질 짠다고 형님이 다시 돌아오는 거 아니잖아요. 툭 까놓고 말합시다. 제가 큰 도련님한테 갔다가 개쪽을 당했거든요? 작은 도련님도 남잔데, 왕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예?"
"왕 하세요."
"제가… 어떻게…"
"제가 밀어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구요… 예?"
이 짧은 순간 연우는 계산기를 두들겼다. 승산이 있는 일이었다. 형수가 OK를 한 상황. 형수와 결혼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아무리 박살이 났다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호족들은 아직까지 무시 못 할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형수가 함께라면, 명분도 갖출 수 있었다. 계산이 여기에 이르자, 연우가 오바 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말이야. 우리 형수님 드실 음식인데, 신경 좀 쓰지… 죄송합니다. 제 마누라가 좀 개념이 없어서요."
"원래 동서가 좀 그렇지?"
"제가 썰어 드릴 테니까… 잠시만… 아얏!"
"어머! 도련님 괜찮아요?"
우왕후를 대접하겠다며, 고기를 썰던 연우가 실수로 손가락을 벤 것이다. 우왕후는 황급히 허리띠를 풀어 연우의 손가락을 감싸준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교련을 좀 배웠거든요."
"…저기 교련 없어진 지 꽤 된 걸로 아는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제가 걸스카우트에서 배운 걸…"
"아…예."
고국천왕이 붕어 한 날. 우왕후는 시동생 연우의 손가락을 자신의 동아줄인 양 꼭 부여잡고, 미래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첫댓글 우황우가 믿은것은 시동생
연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