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응답받는 기도의 첩경은 먼저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예루살렘을 위한 중보 기도를 부탁하면서 제시하는 당부의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여러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다고 확정짓지 않고, 또 반드시 견책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 말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유보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하나님이 랍사게가 하나님을 훼방하는 악한 말을 듣지 않으셨을 것이란 가능성을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닙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랍사게와 앗수르 왕 산헤립을 견책하실 수도 있고, 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거만하게 내뱉는 불경한 말 하나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계시며, 기억하시며, 반드시 공의에 따라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의 교만 역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처럼 말한 것은, 다만 그러한 불경한 일이 벌어지게 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그처럼 불경하고 사악한 말을 내뱉는 앗수르 왕 산헤립과 앗수르에 대해 심판을 내릴 것을 바라지만, 그 심판의 방법과 시기는 오로지 하나님이 결정하실 것임을 고백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물론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은 되도록 빨리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원대로만 모든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바람과 소원대로 앗수르를 심판하기를 바라지만, 심판 여부와 그 방법과 시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속한 것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준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기도여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 하면서, 우리의 뜻만을 내세우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원하는 일만을 이루어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기도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대개 하나님은 기도하는 바를 그대로 들어주시지 않고, 자신의 뜻에 기도하는 자가 맞추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그가 바른 기도를 올리고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그 삶 속에 성취되기를 바랄 때까지 응답을 유보하시기도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기도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는데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 주장, 우리의 뜻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구하는 바가 하나님의 나라의 의에 부합된 것인지를 분변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앞에 합당한 삶,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온전한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을 것이며, 더 신속하며 더 확실한 응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