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에 한 주 못 갔는데, 문지숙 집사님이 앞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사님은 이옥순 씨가 예배 마치고 집에 갈 때 늘 미룡동 까지 태워다 주신 분이다.
그간 감사했던 일이 많은데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이옥순 씨와 감사 인사를 의논했다.
“저희 문지숙 집사님에게 전화하기로 했죠.”
“다락방 그만둬서요”
“네 맞아요. 집사님이 이제 사정이 생겨서 다락방에 함께 못하신데요. 그런데 문지숙 집사님이 이모 집에 갈 때마다 매번 차 태워주셨죠?”
“네”
“정말 오랫동안 태워 주셨잖아요. 그래서 고맙다고 연락드리면 어떨까요? 이모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종이에 하고 싶은 말 적어서 저랑 연습해요.”
“네”
“문지숙 집사님이 여보세요라고 하면 어떻게 답하실 거예요?”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하시고. 나 이옥순이에요. 이렇게 인사해 주실 거죠.”
“네”
“그다음에는요?”
“몰라요.”
“그럼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때요? 다락방 이제 못 나온다고 들었어요.”
“네”
“그럼 집사님이 맞아요. 이제 일하게 돼서 못 나가요. 하겠죠. 그다음에는요?”
“고마웠다고.”
“그동안 차 태워줘서 고마웠어요. 이렇게 이야기할까요?”
“네”
“그럼 문지숙 집사님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에요.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거든요. 그럼 어떻게 답하실 거예요?”
“몰라요.”
“이모 문지숙 집사님 가끔 교회에서도 만났죠. 기억나세요?”
“네’
“그럼 일요일에 교회에서 만나요. 이렇게 말할까요?”
“네”
“그럼 마지막 문장까지 종이에 씁시다. 다음에 교회에서 만나요.”
“네”
‘다락방 이제 안 나온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차 태워줘서 고마웠어요.’
‘다음에 교회에서 만나요.’
이옥순 씨가 꼭 기억하고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종이에 적어 연습하셨다.
문지숙 집사님에게 전화 걸었다.
“여보세요?”
“네 성도님”
“이제 다락방 못 나온다고 들었어요”
“잘 안 들리네요”
“안녕하세요, 집사님”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냈습니다. 다락방 갔는데 이제 집사님 안 나오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옥순 이모께서 하고 싶은 말씀 있다고 하셔서 전화했어요.”
“고마웠어요”
“네 성도님, 저도 즐거웠어요. 성도님 제가 없어도 다락방 잘 참석하셔야 해요.”
“네”
이옥순 씨가 대답하기 어려워하며 전담 사회사업가를 바라보셨다.
종이에 적힌 말을 대신 답했다.
“저희 차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집사님”
“괜찮아요. 많이 해드리고 싶었는데 안 돼서 아쉬워요. 성도님 일은 잘 다니고 계시죠?”
“네 잘 다니고 계세요.”
“이모 일 잘 다니고 있죠?”
“네”
“이사 한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이사는 신청했던 집이 안되어서 다른 방법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그럼 동영 아파트는 못 가는구나.”
“네, 거기는 못 갈 것 같아요.”
“성도님이 지금 독립하고 싶은 거예요. 혼자?”
“네, 그렇게 준비하고 계세요.”
“그래요. 다연 선생님도 잘 지내고요. 교회에서 한 번씩 봐야 하는데 제가 1부 예배만 드려서 볼 수가 없네.”
“저희가 2부 예배드려서 엇갈리네요.”
“제가 1부 예배 때 봉사하니까 못가거든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성도님이 그래도 저 잊지 않고 전화해 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네”
“성도님, 건강하시고 잘 지내세요.”
“네, 집사님 다음에 또 교회에서 봬요.”
문지숙 집사님이 이옥순 씨의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셨다.
잊지 않고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집사님의 말씀이 마음을 울린다.
오랜 시간 이옥순 씨의 귀갓길을 함께해 주셨던 문지숙 집사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2024년 4월 28일 일요일, 이다연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포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마음이 정리가 안 되어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 되어서... 등
이옥순 씨의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잘 전해주시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기순.
연락의 주체로 세우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했네요.
고마워서 감사하고 마땅한 일이기에 감사한다고 하셨지요.
이옥순 씨가 감사할 수 있게 거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