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씨의 이력
박주용
황산벌에서 온 비보는 수신인을 적지 않았다 오만 대군으로 밀고 들어오는 덤프트럭에 오십cc 스쿠터는 속수무책이었다 거드는 말에 기가 산 트럭 운전수는 부여씨를 몰아세웠으나 노을 너머 별빛만 헛바퀴에 얹힐 뿐이었다 결국 경찰은 씨의 과실로 결론지었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 씨는 수천 마리의 마력 뽐내며 세상 폼 나게 누볐다 일본국 나라현과 중국 남조까지 영역 넓히기도 하였으나 세파에 휩쓸려 소읍인 사비로 되돌아와야 했다 파산한 집안에서 불알 한쪽만 남은 씨에게는 단 몇 마력의 스쿠터 한 대가 유일한 살붙이였다 그래도 그놈 데리고 산성 주위 왕왕거릴 때면 왠지 모를 힘 불끈 솟기도 하였다
씨를 배웅하러 가는 병동의 복도는 으스스했다 염을 하는 내내 부러진 목뼈까지 은핫물이 차올라 지켜보는 속눈썹이 더욱 음습했다 별빛이 영안실 가득 채워지자 씨가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였다 먼 친척인 낙화가 시린 발목을 주검 안쪽으로 슬며시 밀어 넣어 주었다 순간 유품이 바깥쪽으로 툭, 떨어졌다 천년 넘게 밀린 백제국의 납세 고지서였다
씨의 흰 발목 데리고 가는 백마강도 유난히 절뚝였다.
박주용시집 『 복숭아뼈는 늘 붉을 줄만 알았다 』에서
박주용시인 충북 옥천 출생. 2014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 『점자,그녀가 환하다』(2016, 시산맥 공모 단선시집), 『지는것들 의 이름 불러보면』(2020,지혜출판사, 아르코문학나눔우수도서 선정)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