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구 기자 입력 2021.06.24 03:00 조국 흑서 저자의 한 명인 권경애 변호사.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0월 ‘조국 수사’를 계기로 전국 검찰청의 특별수사부 축소·폐지를 본격화하기 전까지 ‘검찰 특수부’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대해 당시 민변(民辯) 등 같은 진영에서도 비판적 기류가 형성되자 2018년 6월 12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광철 선임행정관(현 민정비서관)이 민변 소속이던 권경애 변호사를 만나 “검찰에 특별수사권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권 변호사가 다음 달 출간할 자신의 책 ‘무법의 시간’에서 밝혔다. ‘조국 흑서’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권 변호사는 당시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검경 개편’을 지지하는 세력의 일원이었다. 당시 이광철 행정관이 ‘우군’인 권 변호사를 찾아간 이유는 ‘검찰 특수부 존치’를 양해해 달라는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사전 입수한 ‘무법의 시간’에 따르면, 이광철 행정관은 당시 권 변호사에게 “저도 대통령님과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검찰에 특별수사권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생각이셨다”며 “이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할 오프더레코드이지만, 대통령님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경찰이 특별수사를 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당시는 이명박·박근혜 전 정권에 대한 소위 ‘적폐 수사’가 진행될 시기였다. 그런데 2019년 8월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를 개시하자 정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권 변호사는 밝혔다. 권 변호사는 책에서 “10월 8일 정경심 교수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3차 검찰 조사를 받던 시간에 조국 동생 조권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강제 구인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에 그들의 남편이자 형인 법무부 장관이 비장한 어조로 ‘특수부 해체’를 선포했다”며 “현실 같지 않았다. 조국은 그날 밤 서초역 집회 사진으로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지지자들의 결속을 은밀히 독려했다”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또 신간에서 ‘조국 사태’에 비판적이던 자신에 대해 이광철 비서관, 조국 전 장관, 김현 전 민주당 의원, 익명의 운동권 선배 등이 어떤 방식으로 회유·압박했는지도 소상히 밝혔다. 2020년 9월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최인아 책방에서 열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기자간담회에서 공동 저자인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왼쪽부터), 권경애 변호사, 서민 단국대 교수,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조국 비판 글 올린 지 5분 만에 이광철 전화 권 변호사는 조국 장관 임명일이었던 2019년 9월 9일 ‘김오수 당시 법무차관(현 검찰총장)과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현 서울고검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조국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고 대검에 제안했다’는 기사를 보고,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과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사모펀드로 어떻게 장난치는지를 잘 모르는 지지자들에게 어처구니없는 해명으로 핍박받는 노무현2를 연기하며 강렬한 방어와 지지를 끌어모아서 세상 모두를 속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들 지지자들을 개돼지로 보고 있다는 것’이란 내용이었다. 권 변호사는 이 글을 올리고 5분 뒤 이광철 비서관의 전화를 받았다. 이 비서관은 “(윤석열 배제 수사팀은) 민정수석실에서 검토는 했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해서 철회한 방안이다. 조국 장관은 모르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민정수석실이 검찰에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당시 ‘윤석열 배제’ 방안을 대검에 제안했다는 김오수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그 건으로 고발된 상태다. 이 비서관은 그러면서 “(조국 장관) 임명 전날까지도 (청와대) 내부 의견은 반반이었다”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것은 윤석열 총장이 임명 전날 전화해서 ‘조국을 사퇴시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게 영향이 컸다”고도 했다. 권 변호사가 “누구한테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냐, 대통령께?”라고 묻자 이 비서관은 “저한테도 하고…”라며 말을 흐렸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대통령까지 윤 총장의 의사가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며 이 비서관 말에 크게 무게를 두진 않았다. 그러나 권 변호사는 “이 비서관이 전화를 직접 건 목적은 분명했다”며 “정부와 조국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 말라는 것, 그는 부탁이었을지 모르나 내게는 무거운 압박이었다”고 밝혔다. 이 비서관은 이와 관련한 본지의 해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여당 의원, 운동권 선배들의 회유·압박 2019년 9월 6일 조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권 변호사는 ‘사모펀드 비리가 정경심 교수와 조금이라도 연관돼 있다면 정권의 큰 부담이 될 것이 우려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자 김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청년운동 단체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었다. 김 전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당장 내리라’고 요구했다. 권 변호사가 “무례한 요구”라고 거부하자 김 전 의원은 함께 있던 다른 의원을 바꿔줬다. 권 변호사의 대학 선배인 다른 의원 또한 글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권 변호사는 글을 내리며 “부탁을 들어주는 건 이번 한 번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김현 전 의원은 이에 대해 “글을 내리라고 요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여권 핵심 인사와의 친분을 자랑하며 국회의원직으로 회유했던 인물도 있었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이 인물을 ‘모교인 연세대 운동권의 대부 H씨’라고 지칭했다. H씨는 “야당은 이미 흘러간 권력, 너 같은 사람이 다음 정권을 책임져야 한다”며 “이번 일(조국 사태)은 관여하지 말고 침묵하고 흘려보내라”고 권 변호사를 설득했다. H씨는 “3개월만 침묵하고 있으면 비례대표든 뭐든 원하는 자리는 다 얻을 수 있다”고 하더니 맥락 없이 노영민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 연세대 동문 인사들을 언급하며 “청와대 인간들, 뭔 일만 생기면 전화한다”는 말도 했다. H씨는 이런 메시지를 전한 뒤 3개월 뒤 권 변호사를 다시 보자고 했으나, 권 변호사가 여전히 정부 비판 글을 이어가자 “너 볼 일 없다”며 약속을 취소했다고 한다. ◇”조국 사퇴해야” 얘기하던 김남국의 돌변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변호사 시절에는 ‘조국 임명 강행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는 내용도 책에 포함됐다. 권 변호사와 김 의원은 서울변회의 ‘공수처 및 수사권 조정TF’에서 함께 활동했었다. 2019년 9월 6일 검찰이 정경심 교수를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하자, 김 의원은 권 변호사와의 통화에서 “정 교수님이 위조한 것 같다. 사모펀드도 관여하셨고”라며 “(조국 장관) 후보자 사퇴하셔야 할 것 같다. 임명하시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조국 장관 취임 후에는 권 변호사에게 “저는 진영을 지킬 것, 조국 장관님을 수호해야죠”라고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김 의원은 이후 작년 2월 민주당에 입당했고 그해 4월 총선에서 전략 공천돼 당선됐다. 김 의원은 “공적인 회의 빼고는 권 변호사와 따로 만난 적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권경애 변호사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노동 운동을 했고 한·미 FTA와 미디어법 반대, 국가보안법 반대 활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 선언에도 두 차례 이름을 올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신설 등 문재인 정부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권 변호사는 스스로를 “(현 정부 입장에서) 때맞춰 나타난 뜻밖의 응원군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무법의 시간’은 24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예약 판매한 후, 하루 뒤에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