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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광년은 15,000,000,000 *(곱하기) 9,460,800,000,000KM = 141,912,000,000,000,000,000,000KM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억" 부터 "겁" 까지 만배식), 조, 경, 해, 시(지), 양, 구, 간, 정, 재, 극, 향하사, 아승기(아승지),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 겁
10의 30승의 수수께끼 "무한중첩연속(無限重疊連續) 우주론" (1부) |
2008/09/30 | ||||||||||||||||||
인류가 가진 두 가지 의문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의문은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실체에 관한 것이리라. 오늘날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의문에 대한 끊임없는 과학적 탐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 해답에 도달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며, 사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과연 있는지 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이들 의문에 대한 단정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또한 세대에서 세대를 거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굳게 믿고 있는 사상체계가 있으니 이는 곧 종교이다.
현재 인류의 정신세계를 이끌고 있는 종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유태교 및 그에서 파생된 기독교, 마호메트교 등 중동의 사막지대에서 일어난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로서 신의 절대적 권능에 대한 믿음의 종교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로서 이는 인간 스스로 자아와 우주의 본질을 깨쳐 나가야 하는 깨달음의 종교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원류인 유태교는 약 3천5백년 전 모세에 의하여 그 체계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불교는 약 2천5백년 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계승하기 위하여 성립되었다.
유태교 및 기독교의 경전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저자들이 쓴 것을 집성한 것이며, 불교의 경전들은 석가모니의 열반 후 제자들이 기억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이들 종교의 신실한 신자들에게는 불경스런 말이겠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러한 기록들에는 필경 기록자들의 생각이나 당시의 보편적인 가치관 같은 것이 가미되고 채색되어 있을 것이며, 그리고 당연히 모든 경전들은 수 천년 전 당시 사람들의 언어로 쓰여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가 내포하고 있는 진리는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을 것이지만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옛날 사람들의 시각을 탈피하여, 경전 속에 고대의 언어로써 감추어지고 고대의 관념으로써 덧씌워진 진리의 본질을 찾아내어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조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인류의 두 가지 기본적인 의문 중 우주의 실체에 관하여 석가모니가 제시한 해답을 현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주의 본질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불교의 우주관
불교의 경전은 그 수가 방대하고 또 그 속에 담겨진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걸쳐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우주의 본질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참 뜻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처란 우주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해석을 받아들일 경우, 불경에서「부처를 본다」또는「여래를 본다」라고 하는 구절은 우주의 본질을 깨닫는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승경전들에는 부처의 키가 무한히 크며 그 수명 또한 무한히 길다는 구절이 빈번하게 나오는데, 그 뜻은 우주는 공간적으로 무한히 크며 시간적으로 무한히 길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부처의 키나 수명을 말할 때 그냥 무한하다고 하지 않고 겁, 아승지, 항하사, 나유타 등 거대한 단위를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제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비유를 들어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석가모니는 무한한 우주라 하더라도 한낱 티끌에 불과하며, 하나의 티끌 속에도 무량우주가 담겨져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이와 같은 석가모니의 우주관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필자는 석가모니의 우주관이 정확히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라는 경전에서 찾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제 9절 진신관(眞身觀) : 無量壽佛... 제10절 관음관(觀音觀) : 觀世音菩薩... 제11절 세지관(勢至觀) : 大勢至菩薩...
즉, 아미타불(무량수불)의 신장은 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고, 관세음보살의 신장은 80만억 나유타 유순이며, 대세지보살의 신장은 관세음보살과 같다고 하는 내용이다.
석가모니는 여기서 부처 즉 우주의 크기를 아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경전의 명칭을 고려해볼 때 석가모니는 이 구절로써 우주의 실체에 대하여 확정적으로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관세음보살의 신장을 계산한다
그러면 우선, 관세음보살의 신장인 80만억 나유타 유순이 도대체 얼마만한 크기인가를 먼저 계산해 보기로 한다.
「나유타」란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인도의 단위로서 천억 또는 만억을 뜻하는데, 이 구절이 아주 큰 부처의 신장을 표현하고 있는 점과 나유타 앞에 이미 만억이라는 단위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여기서 사용된 나유타란 만억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유순」이란 인도의 거리 단위로서 우리나라식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약30리 또는 40리에 해당되며, 이 단위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부처의 키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고 있으므로 큰 쪽인 40리를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80만억 나유타 유순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80x만억x만억x16km = 80x10,000x100,000,000x10,000x100,000,000x16km
이것은 그야말로 무한의 크기라 할 수 있고 제한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얼핏 감을 잡기 어려운 규모이므로, 이 수치를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은하의 크기 및 우주의 크기와 비교해 보기로 하겠다.
태양계가 포함된 우리 은하계의 반경은 약 5만 광년이며, 이와 같은 은하를 천억 개 이상 포함하고 있는 대우주의 반경은 현재까지 관측된 바로는 약 150억 광년이라고 한다.
광년이란 빛이 매 초당 30만km로 1년간 달리는 거리를 말하므로 은하계의 반경인 5만 광년이란,
300,000km x 60(초) x 60(분) x 24(시간) x 365(일) x 50,000(년)
따라서 관세음보살의 신장은 은하계 반경의 27x(10의9승)배 즉 27억 배이며, 대우주의 반경의 9x(10의3승)배 즉 9천배가 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이다.
은하 및 우주의 반경은 현재의 과학수준으로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27억 배 또는 9천배라는 수치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으로써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 또는 우주의 크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여기서 관세음보살과 우주를 동시에 생각해본다면, 반경 150억 광년의 우리 우주 옆에 그보다 9천 배나 더 큰 어마어마한 부처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보다는 거대한 부처의 내부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우주를 떠올리게 된다.
프랙탈 구조
석가모니는, 우주는 무한하지만 티끌과 같고 티끌 속에도 또한 무량우주가 있다고 가르친다. 즉, 그의 우주는 수평적으로 무한할뿐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프랙탈 구조로서 계속하여 이어진다. 잠시 여기서 프랙탈(fractal)이라는 용어에 관하여 스웨덴의 수학자 코흐가 고안해낸 일종의 초눈송이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참조:아이작 아시모프 저, 「우주의 비밀」>
먼저 정삼각형을 하나 그린다. 그리고 각 변을 3등분하고 그 중 가운데 부분을 밑변으로 하는 새로운 작은 정삼각형을 각 변 위에다 그린다. 그러면 그 모양은 6개의 팔을 가진 별 모양이 된다.
이번에는 6개의 팔인 각각의 정삼각형에서 바깥쪽 양변을 3등분하고 앞서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가운데 부분에 새로운 정삼각형을 그린다. 그러면 18개의 정삼각형으로 삐죽삐죽한 도형을 얻게 된다.
이번에는 그 18개의 정삼각형의 바깥쪽 양변을 3등분하여 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정삼각형을 그려 나간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삼각형을 만들어 나간 것이 바로 초눈송이이다.
이런 도형에서는 처음의 삼각형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정교하게 그 위에 작도를 해 나간다 하더라도, 곧 새로운 삼각형들은 더이상 손으로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지고 만다. 기하학에서 점은 0차원이고, 선은 1차원이며, 평면은 2차원, 입체는 3차원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초눈송이의 경계선은 끝없는 보풀이 일어있을 뿐 아니라 각 점에서 갑작스런 방향전환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정상적인 선으로 생각할 수 없고 그렇다고 평면이라고 할 수도 없다.
즉, 그것은 1과 2사이의 차원을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 태생인 미국의 물리학자 망델브로는 그 차원을 log4를 log3으로 나눈 값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 값은 약 1.26186이다. 따라서 초눈송이의 경계선은 1¼을 약간 넘는 차원을 가진다. 초눈송이와 같이 정수가 아니라 분수의 차원을 갖는 이러한 도형을 프랙탈이라고 부른다.
프랙탈 구조가 갖는 특성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프랙탈의 구조이다. 처음 삼각형의 한 변에 붙어 있는 비교적 큰 삼각형 하나를 선택해서 조사해 보면, 거기에는 점점 더 작은 삼각형들이 무한히 붙어 자라나므로 무한히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붙어 있는 작은 삼각형 중에서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겨우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삼각형을 하나 선택하여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확대시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처음에 선택한 큰 삼각형과 똑같이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여기에 붙어 있는 더욱 작은 삼각형을 하나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확대시킨 모양은 처음의 삼각형과 똑같다.
이와 같이 아무리 작은 삼각형을 선택하더라도 처음의 삼각형이 지닌 복잡한 모양을 그대로 갖게 되는 것이 프랙탈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간단한 예로서, 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진 나무를 생각해보자. 이 세 갈래의 줄기는 각각 다시 세 갈래로 갈라지고, 새로 갈라진 줄기들은 다시 세 갈래로 갈라진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줄기에서 다시 세 갈래로 영원히 갈라져 나가는 초나무에서는 어느 하나의 줄기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전체 나무와 똑 같은 복잡성을 가진다.
이상 프랙탈의 개념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면 우주는 프랙탈 구조를 갖는다고 해석할 수가 있다. 즉, 우리의 우주는 부처라고 표현된 거대한 존재 내부의 아주 작은 부분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 안에도 무한히 많은 소우주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부처가 내 속에 있다"는 가르침의 의미
그렇다면 부처와 같은 거대한 존재는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하늘에는 다시 무한의 우주가 펼쳐져 있을 것이며, 같은 논리로서, 우리의 몸 속에도 우리를 거대한 부처로 여길 작은 존재들이 무수히 있을 것이고 그들의 몸 안에는 또다시 무한의 우주가 연속될 것이다.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 또한 티끌이며, 그리고 부처가 내 속에 있고 나 또한 부처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막연한 관념으로써가 아니라 이와 같은 구체적인 인식으로써 접근할 수 있다.
이제 아미타불의 키가 관세음보살보다 항하사 배나 더 크다고 표현된 구절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겠는데, 석가모니는 부처 중의 부처인 아미타불의 키로써 우주의 프랙탈 구조적 연속성을 설(設)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필자는 석가모니의 우주관을 현대적 자료들을 사용하여 세밀히 분석함으로써 그가 말하고자 한 우주의 실체에 보다 더 접근해보고자 하는데, 이와 같은 시도는 분명 우주에 대해 고뇌해 본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흥미를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우주가 어떤 무한히 큰 존재 속에 들어 있고 우리 몸 속에도 무한히 작은 세계가 프랙탈 구조로서 다시 연속되어 있다는 우주관을 당장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필자는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밝혀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작은 삼각형과 큰 삼각형이 있는데, 이 두 삼각형이 닮은꼴이라면 서로 대응하는 세 변의 비가 모두 같을 것이고 따라서 어느 하나를 축소시키거나 확대시켜 다른 쪽과 같은 크기로 만든다면 두 삼각형은 정확히 일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닮은꼴이란 크기만 서로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삼각형을 점점 축소시키고 다른 것은 점점 확대시켜 보자. 이렇게 하면 크기는 10배, 20배... 점점 차이가 나게 되겠지만 양 삼각형이 닮은꼴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만약 두 삼각형을 그 크기에 있어서 하나는 소립자 수준까지 축소시키고 다른 하나는 대우주 수준까지 확대시켰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대응하는 변의 비를 측정할 수만 있다면 두 삼각형이 닮은꼴임을 증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논리로 석가모니의 우주관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우주가 부처라는 거대한 존재의 내부에 있고 우리 내부에도 무한의 우주가 같은 구조로서 연속되어 있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위와 같은 비례관계가 성립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례관계가 성립하는 경우 그 값은 사람과 부처의 크기의 비와 동일할 것이다. 사람은 갓난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평균적인 신장을 1m로 잡으면 될 것이므로, 사람과 부처의 신장의 비는
1m : 1.28 x(10의 27승)km = 1 : 1.28 x (10의 30승) 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밀한 수치는 표현상 오히려 부적절할 수 있으므로, 사람과 부처의 신장의 비를 대략 1 : (10의30승)으로 보기로 하자.
여기서 부처의 내부를 구성하는 큰 우주를 거시세계라 하고 우리 내부에 프랙탈 구조로서 연속된 아주 작은 우주를 미시세계라 하면, 거시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과 미시세계에서 그에 대응하는 요소들 사이에는 위와 동일한 비례관계가 성립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비교
그러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어떤 요소끼리 서로 대응하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거시세계.
인간이 현대 과학으로써 관측하고 있는 대우주의 반경은 약 1백50억 광년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은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우주에는 천억개 이상의 은하들이 분포되어 있으며, 은하는 인접한 다른 은하들과 국부은하군을 형성하고 국부은하군들이 모여서 더 큰 은하단을 이루고 있다.
또 은하의 중심에는 은하핵이 있고 은하는 그 중심을 축으로 하여 회전운동을 하며, 국부은하군을 구성하는 은하들은 국부은하군의 인력중심 주위를 돌고 있다. 은하는 별의 집단으로서, 우리 은하계는 대략 3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양도 그 별들 중의 하나이다.
다음은 우리 내부의 미시세계를 들여다보자.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세포이다.
인간의 신체는 약 60조 개의 세포로써 구성되어 있는데 세포의 크기는 반경 약 5미크론 [5x(10의-4승)cm]에서 50미크론 [5x(10의-3승)cm]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세포의 기초단위는 원자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몸은 대략 63%의 수소, 25.5%의 산소, 9.4%의 탄소, 1.4%의 질소 및 0.7%의 기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가 몇 개 합쳐 물질의 특성을 갖는 최소 단위인 분자를 이루고, 분자들이 모여서 단백질, 핵산 등의 거대분자를 만들며 이 거대분자들이 모여서 세포 내의 형태학적 물질인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핵, DNA 등을 만든다.
그리고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으며,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상호 진동함과 동시에 그 인력중심 주위를 돌고 있다. 원자는 물질의 궁극적인 최소 단위가 아니며 그 내부에는 무수한 소립자가 존재한다.
이상 살펴본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체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거시세계 : 별 - (은하핵) - 은하 - 국부은하단 - 은하단 - 우주 - 부처
필자는 양 극단의 두 세계를 살펴보고 그 구성 요소를 서로 대응시켜 위와 같이 정리하였는데, 이렇게 대응 요소를 결정하기 위하여 각 단계의 크기의 비와 동일 요소 상호간의 간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였다.
만일 거시세계와 미시세계가 프랙탈 구조로서 연속된다는 우주관이 옳은 것이라면 대응하는 각 요소들 사이에는 사람과 부처의 키의 비인 대략 1 : (10의30승)의 비례법칙이 성립할 것이고, 그 우주관이 틀린 것이라면 이와 같은 비례법칙이 성립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 대응 요소의 크기의 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각 요소의 크기가 먼저 결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바, 현대과학으로써 그 크기가 거의 정확하게 알려져 있고 또한 그 크기가 일정한 범위 내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는 원자핵과 은하핵, 원자와 은하, 그리고 세포와 우주 등을 들 수 있다.
원자의 반경은 옹스트롬[= (10의-8승)cm]으로 표시되며, 원자핵의 반경은 원자반경의 약 10만분의 1인 (10의-13승)cm이다. 세포의 반경은 약 5미크론[5x (10의-4승)cm]에서 50미크론[5x(10의-3승)cm]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은하의 반경은 약 1만 광년에서 5만 광년 사이에 분포되어 있으며 그 평균적인 반경은 약 3만 광년이다.
은하의 중심에는 은하핵이 있는데, 우리 은하계의 경우 그 반경은 약 0.33광년이다. 그리고 천억 개 이상의 은하로 구성되어 있는 대우주는 최근 그 반경이 약 1백50억 광년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상 비교할 각 요소들의 크기를 알아 보았는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작은 문제점에 부딪치게 된다. 즉, 위에서 살펴 본 수치들은 모두 대략치로서 확정적인 하나의 크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 내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크기를 서로 비교할 대상으로서 결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세포가 곧 우주 혹자는 확정적인 값을 갖지 않는 대상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이와 같은 시도가 별 가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우주에는 확정적인 단일의 값을 갖는 대상이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필자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기 위하여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원자, 원자핵, 은하핵 및 우주의 반경은 현재까지 알려진 값 또는 평균치를 채택하며, 세포와 은하의 반경에 대해서는 분포하는 범위의 중간쯤 되는 25미크론과 3만 광년을 택하여 계산하고, 그 결과에 플러스 마이너스 약 10배 정도의 편차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만일 석가모니의 우주관이 옳지 않다면 따라서 이러한 비교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라면, 우리는 10배의 편차는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양 극단 세계의 대응요소들의 크기를 비교해 보자.
첫째, 세포의 반경 : 우주의 반경 = 25미크론 : 1백 50억 광년
둘째, 원자의 반경 : 은하의 반경 = 1옹스트롬 : 3만 광년
셋째, 원자핵의 반경 : 은하핵의 반경 = 1x(10의-13승)cm : 0.33광년
위의 놀라운 계산 결과는 석가모니의 우주관 즉 거시세계와 미시세계가 프랙탈 구조로서 연속되어 있다는 가르침이 타당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반경 150억 광년의 대우주란 실은 어떤 거대한 존재 내부의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며 그리고 반경 5만 광년의 우리 은하계는 그 세포 속의 겨우 하나의 원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같은 논리로써 우리 몸 속에는 세포 하나 하나를 반경 150억 광년의 광대한 우주로 여길 아주 작은 존재들이 살고 있는 소우주가 60조 개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주는 무한의 공간과 무한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가모니는 부처의 수명 즉 우주의 시간은 무한히 길다고 가르치는 한편 그와 같은 긴 시간도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불경에는 부처의 수명에 대하여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하여 겁이라는 기나긴 시간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법화경(法華經)중 여래수량품에 실려 있는「여래가 성불한 지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라는 구절을 들 수 있겠다.
겁(劫·kalpa)이란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말하지만 고대 인도인들의 시간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약 43억2천만 년에 해당되며, 나유타란 만억을 뜻한다.
따라서 여래의 수명은, 100x1,000x10,000x100,000,000x10,000x100,000,000x4,320,000,000년 = [4.32 x (10의 38승)]년이나 되니, 현대과학이 추정하고 있는 우리 우주의 역사인 약 150억 년과 비교하면 아득하기 이를 데 없다.
2부에서 계속이어집니다~
공간이 다르면 시간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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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무한한 잠재시장 개인간거래(c2c) / 블로그 / 개인Bz시대 / 2008.09.30 [원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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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겁이란 시간 단위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수천 년 인도인들의 사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사고가 현대 과학의 사유와 놀랄만큼 맞아들어가고 있다는 데 새삼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세기가 가기 전에 조물주적 세계관은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2부 글은 언제 볼 수 있나요? 매일 들르지 못해 놓질까 염려스러워 여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