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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높고 푸른 하늘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는 시부야의 어느 한 거리.
북적거리는 사람 틈을 약간은 어설프게 걷다가 어느 한 노점상 앞에 걸음을 멈춘 한 여자가 있다.
흰색 블라우스에 빨간 단화를 신은 모습, 그리고 습관처럼 계속해서 입술을 삐죽거린다.
양 손과 두 발이 바쁜 여자. 게다가 입도 바쁜 여자.
"선물같은 소리하고 있다. 툭하면 외국 나갔다 오는 사람이.. "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그녀의 한국어에서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게이치않은 듯 자연스레 통화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밤색빛이 도는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노점상 구경을 시작한 이 여자의 이름은 홍이은.
"비행기 시간이 아직 남아서. 응응."
한 손은 핸드폰을, 한 손으로는 아기자기한 악세사리들을 만지작거린다.
통화를 하는 내내 이은의 얼굴에는 의미모를 옅은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여유로운 쇼핑에 빠져 한참을 길을 걷던 그 때였다.
"捕まえろ!!!"
"はしれ!"
멀리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며 주위가 소란해지기 시작한다.
점점 이은이를 향해 다가오는 그 소란함은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다가왔고,
곧이어 그 소란함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덩치 큰 남자들이 이은이의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쿵쾅 쿵쾅..
이 상황을 딱히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는 생각도 나질 않고,
"뭐...뭐야..끼야악!!!!!!!"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고 만 이은.
덩치 큰 남자들의 추격전에 전혀 닿지도 않았지만 그 기세에 눌려 중심을 잃은 듯 했다.
전혀 상관없다는 듯 멀어져가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울상을 지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옷에 묻었을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만치 날아가버린 핸드폰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젠장같은 순간이다.
"여보세요??"
- 뭐야!! 너 무슨 일 있어?
"아..아니. 짜증나게 깍두기 같은 사람들이랑 부딪혀서 넘어졌어."
- 아씨! 왜 비명은 지르고 난리야. 깜짝 놀랐네.
용하게 끊어지지 않은 전화를 다시 받아 통화를 마무리 짓고는 다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왠지 주위 사람들이 아까부터 자신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고개를 숙이고는 눈치보기 바빠진 이은이다.
그러다가 어색한 헛기침을 두어번 뱉고는 구경하던 노점상에서 대충 아무거나 하나를 집어 들었다.
"いくらですか。" (얼마입니까?)
"1500円です。" (1500엔입니다.)
뭐가 이리도 비싸- 라는 생각과 동시에 약간은 구겨진 이은의 얼굴.
이것은 웬 짜증 연속 콤보냐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애써 웃으며 그냥 사야겠다 싶었는지 지갑이 든 후드 가디건의 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허전하다.
몹시 허전함이 느껴진다.
당연히 느껴져야 할 지갑의 도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반대편 주머니도 그렇다면,
이것은..
"....소매치기!?!?!?!?!"
놀란 이은이가 대뜸 한국어로 시부야의 거리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댔다.
외국인이라고 쉽게 본 소매치기가 지갑을 가져갔을거란 생각이 앞서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인지.
한숨을 크게 푹 내쉬던 이은이가 혹시 흘렸을까 싶어 그제서야 주의를 살펴보았다.
"..어라.."
소매치기당했다고 생각한 이은이의 지갑은 민망하게도 가까운 거리에 덩그라니 떨어져 있었다.
어쨋든 찾았구나 안도하고는 지갑을 주으려하는 순간, 어디선가 먼저 등장한 손 하나.
이은이보다 먼저 그녀의 지갑을 줍는 낯선 손 하나가 불쑥 등장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낯선 손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남자다. 뭔가 굉장히 알 수 없는 오로라의 남자.
"여 -"
짤막한 말과 함께 지갑을 건내주는 남자.
길게 자란 머리하며, 수염까지 기른데다가 옷은 축축 늘어난...
지갑까지 주워주는 친절을 배풀었지만 외관상으로는 이은이가 정말 싫어하는 타입의 남자다.
무섭기도 하고, 생각없어 보이고 하고. 거지같기도 하고, 예술가같기도 하고.
뭔가 심오한 방랑자스러운 스타일의 남자에게서 이은은 조심히 지갑을 건내 받았다.
역시 일본은 독특하고 개성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를 한 이은이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보이는 남자다.
그렇게 인사 후에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남자를 애써 무시하며 노점상에서 고른 동전지갑 계산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가만히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애써 웃는 이은.
"뭐야, 왜 자꾸 쳐다보는거야.."
낯선 남자의 카리스마에 기가 눌린 이은은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는 누구에게 쫓기듯이 달려가는 남자의 모습만이 보였다.
이은이는 짧은 시간에 심장이 몇 번 덜컹했는지 기운이 쫙 빠지는 기분이다.
빨리 이 골목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겠단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일본 여행의 마지막, 참 화려하구나.'
고작 일주일, 일이 목적이긴 했으나 여행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한 주였다.
타지에서 느끼는 작은 사건, 사고 따위야 추억으로 남게 되겠지,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여자.
간만에 휴가 여행이란 생각에 일주일 내내 즐거웠던 이은이가 그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짐가방을 트렁크에 실어 넣고 자신도 택시에 오르기 위해 문을 열었다.
탁.
그 때 누군가가 택시 문을 잡아챘다.
"..어..."
이 사람은..
"................"
조용히 이은이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이 사람은 아까 지갑을 주워준 방랑자가 아닌가.
이 일본인이 왜 자신 앞에 다시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이다.
강한 눈빛, 그리고 무서운 침묵.
두 눈을 꿈뻑이며 이은이는 마른 침을 넘겼다.
"...아.....흠.."
"お前.." (너..)
아직은 부족하기만한 일본어를 서둘러 떠올리려 애쓰기 시작한 이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매섭게 그녀를 쳐다보는 그 남자가 먼저 입을 떼었다.
"誰のよ。" (누구꺼야)
"..에?....申し訳ないが, 私は日本語だと下手です。"(죄송하지만, 저는 일본어가 서툽니다.)
아주 천천히 일본어로 대답하는 이은.
하지만 그녀의 그런 말 따위는 듣고 싶지않다는 표정의 남자,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その指輪!! リング!!" (그반지!! 반지!!)
"..링구? 반지?"
왜이리 흥분한 말투로 화를 내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검지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이은은 남자의 큰 목소리에 허둥지둥 일본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 좀 더 공부를 할 걸....일본회화의 참맛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どこで出たの。" (어디에서 났어)
"도코...데...아.....도코데? 어디에서??"
역시 먼저 떠오르는 건 한국말이다.
잘못 말했다가는 잡아 죽일 것만 같은 남자의 눈빛에 이은이는 더욱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다.
이 반지라면...
"リング...友達が...与えたんです。"(반지..친구가...줬어요.)
"友達?" (친구?)
반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님 잃어버린 자신의 반지랑 똑같아서?
대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는 이은이는 덜컥 겁을 먹고야 말았다.
"왜 이러는거지.."
작은 혼잣말을 하는 이은이가 긴장했는지 입술을 삐죽거린다.
하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이 그대로 느껴졌는지 그제야 택시의 문을 놓아주는 남자.
택시 운전사도 일본어로 화를 내기 시작하고, 당황한 이은이는 서둘러 택시에 올라타고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붙잡지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 남자.
그렇게 택시는 출발해 의문점 가득한 그 남자와 점점 멀어져 갔다.
이은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택시의 뒷 창문너머로 그 남자를 살펴보았다.
꼭 굳은 동상처럼 넋을 놓은 채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휴...뭐야, 저 남자?...이 반지가 뭐가 어쨋다고.."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이은은 자꾸 낯선 남자의 얼굴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린다.
아무래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한 모양이다.
단순히 생각하고 싶지만 오묘한 그 남자의 표정이 너무 인상깊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무심코 든 생각하나. 고작 이 반지때문에 다시 나를 뒤따라온걸까 라는 생각.
공항으로 가는 내내 검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뱅글뱅글 돌리기만 반복했다.
아무래도 그 남자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분명 반지를 바라보는 이은의 표정에도 심상치 않은 기색이 역력하다.
"반지..."
* * *
이은이가 택시를 타고 사라진 자리에 덩그라니 서 있는 남자.
넋을 놓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을 정신차리지 못하더니, 곧이어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반지......
반지의 행방이 그 남자를 혼란하게 한다.
그리고 곧 무슨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의 남자. 그 남자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소름끼치게 말려 올라간다.
'한국 여자라......'
업쪽=내남자
1편도 역시 프롤의 향기를 남기고
그래도 그래도 소설 올릴때마다 느끼는 짜릿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요즘 신이 나요!
너무 오랜만에 글을 써서 아직은 적응이 덜 된 느낌이 강하지만, 초반 스토리전개가 느린 스타일이니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쓸거예요 빠빠박 쓸거예요!^.^ 호호호호 여러분들의 응원에 힘내봅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요~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I♥YOU
에덴 유하수 유애비하 내행복 Oo곰팅이oO 웃쟈 카타린아 꼬꼬입술 롱춘
Per.나는캔디가좋아 http://cafe.daum.net/candy12345
첫댓글 내남자
오오, 내가 일빠얏!!!!!!!!! 쪽지 받기도 전에 업뎃된거 보고 왔지이이!!!! 음, 반지의 비밀!!!너무 알고 시프다. 언냐는 왜 계속 이렇게 여운을 남겨서 내가 궁금해서 못자게 만드는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오늘 소설 1편 올렸는데 이거 우리 통했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지막에 남자의 입꼬리가 소름끼지게 올라갔다는 거!!!!!!!! 왜 일까....난 혼자 고민을 해 봐야겠어!!!! 언냐, 힘내♡
요 일빠 축하!!!! 고마워고마워ㅜㅜ힘이 나는구낭
내남자 쪽지보고 후다닥 왔어요 히히 반지.....뭔가사연이있나? ㅎㅎ 오늘도 재미있게봤어요
비화님ㅜㅜ 감사해요 감사백반번ㅜ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해요!!!!!!!!!!!!!!!!!!!
전혀 일본어가 서툴지않습니다요!!!ㅇㄺ 왁!!!!! 배경음악도 제가 좋아하는... 흐끅 반지... 반지.... 반쥐!!!꺜! 내남좌 내남좌 내남좌!!!!!!!
나의일본어수준을이은이에게그대로..< 당신의남좌!!!
내남자 기대가 되네요..^^
감사합니다^^^^당신의남자@@
내남자! 이 노래 오랫만에 듣네요^^ 노래도 좋고 소설도 흥미진진 ㅎㅎ 다음편이 궁금해요~~
감사합니다^^ 저도 이노래 오랜만에 깔아봤어요~
내남자
당신의 남자*.*
오잉 반지?.........반쥐반쥐..............
내남자~ 프롤이 아리송하더니 정말 뭔가가 있네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