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놔두면 겁도 없이 자랄 것 같아서 빗소리 마르기 전에 호미를 들었다. 냉이 뽑고 나면 씀바귀 돋고, 씀바귀를 뽑아내고 나면 질경이가 돋는 마당 한 쪽에 쪼그려 앉아...... 뽑힌 풀들이 나자빠져 시든 뒤에도 내 손톱 끝에 든 풀물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풀물’ 중>
어릴 적, 뜨거운 여름철....
소에게 풀 뜯어먹이러 가려면 그늘 깊은 버드나무의 삐죽 나온 가지에 메어 둔 소를 우선 풀어야 했다.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는 사이로 쇠똥을 밟아가며 겨우겨우 이까리를 풀고 거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소를 몰고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질경이가 다닥다닥 붙어 자라고 있었다. 대개는 길 가장자리에 많이 나 있지만 길 가운데에 찢긴 채로 버티고 있는 겁 없는 놈들도 많았다.
신통한 놀이가 없던 시절, 더구나 혼자 시간 보내기는 정말 심심했다.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여기저기 흔하게 나 있는 질경이 잎을 자루째로 뜯어내어 뚝 꺾어 양쪽으로 잡아당기곤 하였다. 너댓 개의 실처럼 생긴 것이 꽤나 질겨 양쪽으로 잡아당기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아 신기해했던 일이 생각난다. 옆에 친구라도 있으면 각자 골라 딴 꽃자루를 서로 걸어 잡아당기면서 누구 것이 끊어지나 내기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나는 질경이를 보면 그 짓을 하곤 한다.
<촘촘하게 피는 꽃과 억센 뿌리>
웹에서 질경이를 찾아보니 어린잎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는데 그러려면 꽃이 피기 한 달 전쯤이 적당하단다. 그런데 그런 것을 먹어본 기억은 내겐 없다. 모르기는 해도 사람과 온갖 짐승들이 다니는 길가에서 이리저리 밟혀 자라는 풀이니 맛은 고사하고 우선 외관상 정갈하지 못한 것은 물론 지저분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질경이꽃은 6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하얀색의 자잘한 꽃들이 잎사귀에서 올라온 가느다란 꽃줄기에 이삭처럼 피는데 생김새가 꼭 가느다란 핫도그를 닮았다. 꽃이 지면 열매가 달리고 익은 열매는 뚜껑이 열리듯 벌어져서 검은색 씨앗을 여섯 개에서 여덟 개 정도를 쏟아놓는데 이 씨앗이 그 유명한 ‘차전자’이다. 수레 차(車, 거), 앞 전(前), 아들 자(子)를 쓰는 이유는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질경이가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에서도 살아남은 것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질경이 생약명이 차전자. 만병통치약인가 싶을 만큼 쓰이는 곳이 많다. 개구리가 기절했을
때 질경이잎을 따서 덮어놓으면 바로 살아나서 뛰어간다고 한다.
利水(이수, 이뇨작용), 淸熱(청열 : 열을 내림), 明目(명목 : 눈을 밝게함), 祛痰(거담 : 가래를 없앰) 등의 효능이 있다. 요즘은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여 전문 채취꾼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수요가 많으니 재배하여 자연산 질경이에 충당하기도 한다.
질경이의 학명 Plantago asiatica이다. 여기서 ‘asiatica’는 '원산이 아시아'라는 뜻이라 한다.
이름도 아주 많다.
길에서 잘 자란다고 하여 길장구, 잎이 꼭 개구리 배를 닮았다고 해서 배부쟁이, 뱃자개, ‘질경이 부(芣)’, ‘질경이 이(苢)’를 쓰는 ‘부의{芣苢, 혹은 芣苡)’ 등 이름만 스무 개 가까이 되는데 차전자 처럼 차전(車前), 대차전, 차피초, 차화득 등 ‘수레 車’가 들어간 이름이 특히 많다.
경북 영천의 자양이라는 곳에서는 질경이를 ‘배짱이[베짱이가 아닌]’로 말하기도 한단다.
‘나를 밟고 지나갈 테면 가보라’며 길가에 떡 버틸 수 있을 만큼 배짱이 있다는 의미일까.
「한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보면 고려시대에 이미 ‘길형(吉刑)’이라 쓰고 있다.
질경이는 제기를 발로 밟아놓은 모습을 닮았으니 아이들은 그것을 뽑아 제기 대신에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 중에 ‘제기풀’도 있다.
옛이름은 길경이. 길경이가 사는 곳은 숲이 아니라 길거리이다. 수레바퀴가 지나다니는 길이 곧 길경이가 사는 곳이다. 잎조직이 질겨서 잘 찢기지도 않지만 생장점을 땅속에 묻어두고 있어서 밟히고 뜯겨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오죽 밟혔으면 꽃말이 ‘발자취’가 되었을까....
질경이가 동물이 자주 다니는 길가에 많이 살기 때문일까 옛사람들이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질경이를 찾아 따라가면 민가가 나온다’고 할 정도였다.
생물학자들은 질경이의 이런 생태를 두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즉 서식 환경이 좋은 곳을 버리고 비록 밟히고 찢기더라도 경쟁이 덜한 곳을 택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남아서는 보릿고개에 굶주린 사람들을 견디도록 자기를 내주었으니 호미 들고 뽑아내야 할 쓸모없는 풀처럼 보는 것은 질경이의 고마움을 모르는 탓이 아닐까....
나는 어릴 때 질겅이, 질갱이 등으로 말했던 것 같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길경’과 ‘길경이’가 다르게 나와 있다. ‘길경’은 한자로 '桔梗'이라고 쓰는데 이는 ‘도라지’의 다른 말이다. 또 ‘길경이’는 ‘질경이의 옛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 질긴 질경이도 현대의 포장도로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들, 빈터, 풀밭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살 곳 잃은 질경이도 따라서 줄어들고 있다. 아스팔트, 시멘트블럭, 시멘트 도로에서는 엎드리지도 눕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숲을 버리고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또 밟혀도 좋고 찌그러져도 살아날 자신은 있는데 문제는 땅이, 그럴 땅이 없다고 푸념할 만하다.
‘그 동안 내가 잘 해서 차전자인 줄 알았더니 모두 땅심[地力] 덕분이었네요.’라고 돌아보면서.....
다른 풀과 마찬가지로 질경이도 어김없이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소개하면......
서한(西漢 : 前漢의 다른 이름) 시대...
왕의 명령을 받은 군대가 출병을 하였다. 그런데 그 군대는 산과 강을 건너는 긴 행군으로 말과 병사들이 몹시 지쳐있었다. 거기다가 그때 그 지역은 오랜 가뭄이 들었던 터라 점차 군량미가 떨어지고 말과 병사들이 지치게 되자 의논 끝에 회군하기로 하였다.
회군하던 도중 어느 마을에서 쉬고 있는데 마실 물조차 없어 죽어가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살아남은 병사들도 몸의 수분이 점점 말라들어 아랫배가 부풀어 오르고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을 보였다. 그때 말을 관리하는 병사 하나가 말들도 사람과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말들을 풀어 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마 후에 되돌아온 말들은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말이 무었을 먹었기에 그렇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말을 풀어주고 뒤를 따라가서 ‘어떤 풀’을 맛있게 뜯어먹는 것을 알아냈다. 필경 배가 부어오르고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을 낫게 하는 풀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 풀을 뜯어와 병사들과 다른 말들에게도 먹이니 증세가 호전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장군은 몹시 기뻐하며 ‘너는 이풀을 어디에서 가져왔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바로 저 마차 앞에 나 있는 풀입니다.’ 그래서 그 풀의 이름을 ‘마차 앞에 있는 풀’이라는 뜻의 차전초(車前草)라 부르게 되었다.
나도 이제 질경이를 다시 보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終>
*** 다음 글 '부용' ***
첫댓글 자네 나이가 아쉽네..3,4십대면 무슨 큰 일을 해낼 상인데..참으로 아깝네...
화타 보다 더 훌륭한 화련이란 이름이 후세에 남았으련만.
가당찮은 말씀이오. 여하튼 고맙소이다. 앞으로는 화연이라 불러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