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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慧明華
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6.3.PM2시)
십주품(十住品)
삼매와 가피(加被)를 보이다
오늘도 화엄경 한 단락 공부하겠다. 날씨가 비가 촉촉이 내려서 공부하기 좋은 시간이다.
오늘은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16권 중에서 품 수로는 제15품 십주품이 되겠다.
십주품(十住品)
화엄경 7처 9회의 설법 중 제3회 십주법문을 설한 품이다. 총 39품 중에서는 열다섯째 품에 해당한다. 설법의 회주는 법혜보살이다.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무량방편삼매(無量方便三昧)에 들어갔다. 그리고 천 불찰 미진수의 법혜 부처님이 함께 가피하시어 십주법문을 설하도록 하였다.
십주(十住)법문이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중 제11위(位)에서 제20위까지를 말한다. 10신위(信位)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주(住)라 한다.
① 발심주(初發心住)는 10신(信)의 거짓된 현상으로부터 텅 빈 본질로 들어가는 관법[從假入空觀]이 완성되어 진무루지(眞無漏智)를 내고 마음이 진제의 이치에 안주하는 지위이다.
② 치지주(治地住)는 항상 공관(空觀)을 닦아 심지(心地)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지위이다.
③ 수행주(修行住)는 만선(萬善) 만행(萬行)을 닦는 지위이다.
④ 생귀주(生貴住)는 정히 부처님의 기분(氣分)을 받아 여래 종에 들어가는 지위이다.
⑤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는 부처님과 같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방편행을 갖추어 상모(相貌)가 결함(缺陷)이 없는 지위이다.
⑥ 정심주(正心住)는 용모가 부처님과 같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은 지위이다.
⑦ 불퇴주(不退住)는 몸과 마음이 한데 이루어 날마다 더욱 자라나고 물러서지 않는 지위이다.
⑧ 동진주(童眞住)는 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파하지 않는 것이 마치 동자의 천진하여 애욕이 없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10신(身) 영상(靈相)이 일시에 갖추어지는 지위이다.
⑨ 법왕자주(法王子住)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해(智解)가 생겨 다음 세상에 부처님 지위를 이을 지위이다.
⑩ 관정주(灌頂住)는 보살이 이미 불자가 되어 부처님의 사업을 감당할 만하므로 부처님이 지수(智水)로써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에서 왕자(王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국왕이 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이른다.
이것을 탁태(托胎)의 순서를 모방하여 처음 초발심주에서 제4 생귀주까지를 입성태(入聖胎)라 하고, 성인의 태에 들어갔다, 라고 하고
제5 구족방편주에서 제8 동진주까지를 장양성태(長養聖胎) 성인의 태를 길러낸다, 라고 하고
제9 법왕자주를 출성태(出聖胎)
성인의 태에서 출생했다, 라고 한다.
혹은 보살의 10지(地)를 10주라고 표현하기도 하나 이 십주와는 뜻이 다르다.
이렇게 십주품을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1. 삼매와 가피(加被)를 보이다
1) 법혜(法慧)보살이 삼매에 들다
이시(爾時)에 법혜보살(法慧菩薩)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입보살무량방편삼매(入菩薩無量方便三昧)하시니라
그때에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보살무량방편삼매에 들었습니다.
법문을 하려면 으레 삼매에부터 드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들도 한 시간 법회를 하더라도 사전에 입정을 형식적이나마 한 1분 정도 한다.
불교의 모든 행사는 행사직전에 삼귀의가 끝나고 바로 입정(入定)이라는 시간이 있다. 선정에 들어간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늘 마음을 딱 안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안정된 뒤에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바른 판단이 나온다.
현명한 판단은 선정(禪定),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안정된 마음에서 나온다.
바른 판단은 지혜다.
그래서 선정과 지혜, 이렇게 순서가 되어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그것을 실천하면 좋다.
2) 가피를 입다
이삼매력(以三昧力)으로 시방각천불찰미진수세계지외(十方各千佛刹微塵數世界之外)에 유천불찰미진수제불(有千佛刹微塵數諸佛)하사대 개동일호(皆同一號)하야 명왈법혜(名曰法慧)라 보현기전(普現其前)하사 고법혜보살언(告法慧菩薩言)하사대
삼매의 힘으로 시방으로 각각 일천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같은 세계 밖에 일천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같이 많은 부처님이 계시는데, 다 같이 한 가지 이름으로 법혜(法慧)였습니다. 널리 그 앞에 나타나서 법혜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법 법(法)자 지혜 혜(慧)자 법혜보살이다.
3) 가피와 삼매의 인연
선재선재(善哉善哉)라 선남자(善男子)야 여능입시보살무량방편삼매(汝能入是菩薩無量方便三昧)하니 선남자(善男子)야 시방각천불찰미진수제불(十方各千佛刹微塵數諸佛)이 실이신력(悉以神力)으로 공가어여(共加於汝)하시며 우시비로자나여래(又是毘盧遮那如來)의 왕석원력위신지력(往昔願力威神之力)과 급여소수선근력고(及汝所修善根力故)로 입차삼매(入此三昧)하야 영여설법(令汝說法)이니라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이 보살무량방편삼매에 들었도다. 선남자여, 시방에서 각각 일천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같이 많은 부처님이 모두 위신력으로 그대에게 가피하시니라. 또한 비로자나 여래의 지난 옛적 원력과 위신력과 그리고 그대가 닦은 선근의 힘으로 이 삼매에 들어서 그대로 하여금 법을 설하게 함이니라.”
4) 가피하는 열 가지 이유
위증장불지고(爲增長佛智故)며 심입법계고(深入法界故)며 선료중생계고(善了衆生界故)며 소입무애고(所入無礙故)며 소행무장고(所行無障故)며 득무등방편고(得無等方便故)며 입일체지성고(入一切智性故)며 각일체법고(覺一切法故)며 지일체근고(知一切根故)며 능지설일체법고(能持說一切法故)니 소위발기제보살십종주(所謂發起諸菩薩十種住)라
“부처님의 지혜를 자라게 하기 위한 연고며, 법계에 깊이 들어가게 하기 위한 연고며, 중생의 세계를 잘 알게 하기 위한 연고며, 들어가는 바가 걸림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행하는 바가 장애가 없게 하려는 연고며, 같을 이 없는 방편을 얻게 하는 연고며, 일체 지혜의 성품에 들어가게 하는 연고며, 일체 법을 깨닫게 하는 연고며, 일체 근기를 알게 하는 연고며, 일체 법을 능히 가지어 설하게 하는 연고이니라. 이른바 모든 보살의 열 가지 주처(住處)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십주(十住) 법문을 일으키려고 한다.
가피하는 이유를 열 가지를 들어서 이렇게 밝혔다.
5) 입의 가피
선남자(善男子)야 여당승불위신지력(汝當承佛威神之力)하야 이연차법(而演此法)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법을 연설할지니라.”
부처님들이 법혜보살에게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같이 말해주는 것, 이것이 입으로 가피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때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한다. 그런데 한 가족이 예를 들어서 너 다섯 명이 있다고 한다면, 한 사람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신빙성이 별로 없다.
아버지 혼자만 그렇게 칭찬해 봐야, 그리고 다른 식구들은 멍하니 가만히 있으면, 믿음이 덜 간다. 그런데 모여있는 식구들이 다 같이 ‘아주 공부를 잘했다’고 잘했다고 ‘그만하면 아주 훌륭하다’고 이렇게 다 돌아가면서 전부 똑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다.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어린아이들에게는 용기가 난다.
여기도 보라. 시방의 부처님이 이구동성으로 같이 이렇게 ‘선남자여,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법을 연설할지니라’ 라고 이야기한다.
6) 뜻의 가피
시시(是時)에 제불(諸佛)이 즉여법혜보살(卽與法慧菩薩)에게 무애지(無礙智)와 무착지(無着智)와 무단지(無斷智)와 무치지(無癡智)와 무이지(無異智)와 무실지(無失智)와 무량지(無量智)와 무승지(無勝智)와 무해지(無懈智)와 무탈지(無奪智)하시니 하이고(何以故)오 차삼매력(此三昧力)이 법여시고(法如是故)니라
“이때에 모든 부처님이 법혜보살에게 걸림 없는 지혜와, 집착 없는 지혜와, 끊어짐이 없는 지혜와, 어리석음이 없는 지혜와, 다름이 없는 지혜와, 잃어버림이 없는 지혜와, 한량없는 지혜와, 이길 수 없는 지혜와, 게으름이 없는 지혜와, 빼앗을 수 없는 지혜를 주셨으니 이 무슨 까닭인가. 이 삼매의 힘이 법이 이와 같은 연고니라.”
삼매에 들어가니까 이렇게 많은 부처님이 법혜보살에게 열 가지 지혜를 준다. 걸림 없는 지혜, 집착 없는 지혜, 끊어짐이 없는 지혜, 어리석음이 없는 지혜, 다름이 없는 지혜, 잃어버림이 없는 지혜, 한량없는 지혜, 이길 수 없는 지혜, 게으름이 없는 지혜, 빼앗을 수 없는 지혜다.
이것은 한 가지 지혜이지만 한 가지 지혜에 또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나의 지혜에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7) 몸의 가피
시시(是時)에 제불(諸佛)이 각신우수(各伸右手)하사 마법혜보살정(摩法慧菩薩頂)하신대 법혜보살(法慧菩薩)이 즉종정기(卽從定起)하야 고제보살언(告諸菩薩言)하사대
이때에 모든 부처님이 오른손을 펴시어 법혜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니 법혜보살이 선정으로부터 일어나서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손으로 법혜보살의 이마를 만진다.
이것이 또 아이에게 칭찬도 하고, 상금도 주고 격려금도 주고 그리고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는 것과 같다.
여기 으레 법혜보살의 이마를 쓰다듬는다고 했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에는 그런 전통이 있는데, 어린아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 말도 하고 돈도 주고 과자도 사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 다 신라 때 화엄경이 들어와서 온 국민들을 화엄경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신라 당시는 화엄산림을 참 많이 했다.
원효스님, 의상스님, 그 외 의상스님의 훌륭한 10대 제자도 생존시에 있었다. 그 10대 제자가 현인에 준하는 훌륭한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각각 10대 제자가 있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100명의 제자가 되지 않겠는가. 의상스님에게서만 그렇다.
원효스님에게도 그런 제자가 없으란 법이 없다. 원효스님은 천성산에서 천 명의 제자들을 키웠는데 그 천명이 다 성인의 지위에 올랐다고 해서 일천 천(千)자 성인 성(聖)자 천성산(千聖山) 그렇게 부르는 정도다.
그 천 명 가운데서 천 명이 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5백 명 정도가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손 치더라도 그분들이 또 많은 제자를 두었을 것이 아닌가.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히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 그 공부가 이익이 되도록 널리 펴기 위함이다. 그런 것이 불법 수행, 또는 불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는 큰 방법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신라라고 하는 나라에는 전국민들이 다 화엄경을 공부해서 화엄경의 내용이 상식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돌림자를 쓰는 것도 그 당시에서부터 화엄경에 근거해서 쓰게 됐다. 어린아이들을 격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금을 주고 뭘 맛있는 걸 사주고 이마를 만져서 힘을 주고 그것이 얼마나 어릴 때는 큰 힘이 되는가? 참 큰 힘이 된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심부름을 하나 시켜도 두고두고 즐거운 일이 되고 자랑할 만한 추억이 되는데 하물며 격려해 주고 돈을 준다든지 아니면 맛있는 것을 준다든지 말로 격려해 주고 이마를 쓰다듬어 주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다 같이 그렇게 해줄 때 없던 기운도 난다. 공부를 그렇게 잘 안 하던 아이들도 그 덕택에 공부를 잘하게 된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열심히 더 잘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화엄경을 통해 불교의 여러 가지 의식이 형성되고 그것이 국민들 생활에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됐다, 이렇게 말씀 드리게 된다.
우리 불자들은 그렇게 아셔야 되고 그것이 또 사실이다.
2, 보살 십주(十住)
(1) 머무는 곳의 체상(體相)
불자(佛子)야 보살주처(菩薩住處)가 광대(廣大)하야 여법계허공등(與法界虛空等)이니라 불자(佛子)야 보살(菩薩)이 주삼세제불가(住三世諸佛家)하나니 피보살주(彼菩薩住)를 아금당설(我今當說)호리라
“불자들이여, 보살의 머무는 곳이 십주(十住)가, 열 가지 머무는 것이 넓고 커서 법계 허공과 같으니라. 불자들이여, 보살이 삼계의 모든 부처님의 집에 머무나니 저 보살의 머무는 것을 내가 이제 마땅히 설하리라.”
보살이 삼계의 모든 부처님의 집에 머무나니 저 보살이 머무는 것을 내가 이제 마땅히 설하리라. 이제 이름을 열거한다. 십주니까 열 가지 이름이다.
(2) 이름을 열거하다
제불자(諸佛子)야 보살주(菩薩住)가 유십종(有十種)하니 과거미래현재제불(過去未來現在諸佛)이 이설당설금설(已說當說今說)이시니라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초발심주(所謂初發心住)와 치지주(治地住)와 수행주(修行住)와 생귀주(生貴住)와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와 정심주(正心住)와 불퇴주(不退住)와 동진주(童眞住)와 법왕자주(法王子住)와 관정주(灌頂住)라 시명보살십주(是名菩薩十住)니 거래현재제불(去來現在諸佛)의 소설(所說)이시니라
“모든 불자들이여, 보살이 머무는 것이 열 가지가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앞으로 말씀하실 것이며, 지금 말씀하시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초발심주(初發心住)와 치지주(治地住)와 수행주(修行住)와 생귀주(生貴住)와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와 정심주(正心住)와 불퇴주(不退住)와 동진주(童眞住)와 법왕자주(法王子住)와 관정주(灌頂住)니라. 이것을 보살의 열 가지 머무는 곳이라 이름하니라.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설하시는 것이니라.”
십주 이름은 중요하니까 한 번 더 읽겠다.
이른바 초발심주(初發心住)와 치지주(治地住)와 수행주(修行住)와 생귀주(生貴住)와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와 정심주(正心住)와 불퇴주(不退住)와 동진주(童眞住)와 법왕자주(法王子住)와 관정주(灌頂住)니라
3) 제1 발심주(發心住)
(1) 발심의 열 가지 일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발심주(云何爲菩薩發心住)오 차보살(此菩薩)이 견불세존(見佛世尊)의 형모단엄(形貌端嚴)과 색상원만(色相圓滿)과 인소락견(人所樂見)과 난가치우(難可値遇)와 유대위력(有大威力)하며 혹견신족(或見神足)하며 혹문기별(或聞記莂)하며 혹청교계(或聽敎誡)하며 혹견중생(或見衆生)의 수제극고(受諸劇苦)하며 혹문여래(或聞如來)의 광대불법(廣大佛法)하고 발보리심(發菩提心)하야 구일체지(求一切智)니라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발심주인가. 이 보살이 부처님 세존의 형상이 단정하고 상호가 원만하여 사람들이 보기를 즐겨 하며, 만나 뵙기 어렵고 큰 위신력이 있음을 보며, 혹은 신통을 보며, 혹은 수기함[記莂]을 들으며, 혹은 가르침을 들으며, 혹은 중생들이 온갖 고통 받는 것을 보며, 혹은 여래의 넓고 큰 불법을 듣고 보리심을 내어서 온갖 지혜를 구하느니라.”
발심주(發心住) 마음을 냈다는 뜻인데, ‘발심했다’라고 한다. ‘아 저분은 발심을 해서 아주 저렇게 신심있게 신행생활을 한다’고 우리가 그런 말을 잘한다. 무엇이 발심인가?
보살이 부처님 세존의 형상이 단정하고 상호가 원만하여 사람들이 보기를 즐겨 하며
부처님의 모습은 참 편안하지 않은가. 법당에만 들어가도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다. 거기다 또 부처님의 상호가 워낙 훌륭하니까 부처님 상호를 쳐다보면 마음에 더 신심이 우러난다. 그래서 부처님을 그릴 때나 조성할 때 잘해야 된다.
신심이 우러나도록 원만하게 그려야 되고, 원만하게 조성해야 된다.
만나 뵙기 어렵고 큰 위신력이 있음을 보며
부처님에게는 그러한 위신력이 있다.
혹은 신통을 보며, 혹은 수기함[記莂]을 들으며
부처님이 예를 들어서 ‘그대는 언제 어떤 수행을 해서 성불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기별이라고 한다.
정식으로 지금 경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록할 기(記)자 기별 별(莂)자를 쓴다. 이 별(莂)자는 불교에서만 쓰는 별자다. 초(艸) 밑에 이별할 별(別)자 기별 별(莂)자인데 말하자면 수기 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기별(記莂)이라고 한다. 이 속에 모든 부처님이 보살들에게 ‘앞으로 성불해서 어떤 수행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나라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서 어떤 제자를 두고 성불의 삶을 펼칠 것이다’ 라고 내용이 담겨있다. 법화경 같은 데는 그런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으로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수기(授記), 또는 기별(記莂)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 불자들은 이 낱말에 익숙해야 된다.
아주 익숙하게 잘 아셔야 된다.
혹은 가르침을 들으며, 혹은 중생들이 온갖 고통 받는 것을 보며, 혹은 여래의 넓고 큰 불법을 듣고 보리심을 내어서 온갖 지혜를 구하느니라
보리심을 발한다. 발심이라고 하는 것이 보리심을 발한다,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는 것을 발심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고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그 원인들을 쭈욱 이렇게 소개했다.
부처님 만나 뵙기 어렵다, 부처님 참 잘생겼다, 생긴 것을 보고 또 발심할 수가 있다. 또 수기 받는 것을 보고도 발심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수기 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 ‘아 나도 수기를 받아야지, 화엄경 열심히 공부하면 수기를 받겠구나’ 그런 경우도 있다.
여기 문수선원에 스님들 경전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상당한 세월이 지났다. 10년이 넘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 건당을 하자’ 해서 건당식을 재작년에 했다.
‘스님의 제자로 입적을 하겠습니다’ 해서 공부한 지 10년이 넘은 스님들 스물다섯 명이 준비를 하고 의식을 잘 갖추어서 건당식을 했는데 그런 것도 수기하고 같은 것이다.
두 번째로 또 건당식을 한다고 먼저 한 사람들이 뒷사람들에게 그런 혜택을 좀 나누자 해서 지금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할 것이다.
부처님의 신통을 보기도 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기도 하고, 또 누가 건당식을 하니까 나도 하고 싶다고 하듯이 누구 수기 주는 것을 보고 또 그 수기 받고 싶어서 하기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써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 귀의하는 것도 이웃에 사는 사람이 절에 다니면서 이러이러한 좋은 일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좋은 일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아 나도 절에 다니면 저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해서 오게도 된다.
그래서 잘 권해야 된다.
권해서 따라오도록 해야 된다. 그것이 권선(勸善)이다. 좋은 일을 동참하도록 함께 권하는 일이 권선이다.
절에서는 화주 시주 도감 별좌 이렇게 나간다.
화주라고 하는 소임이 권선하러 다니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화주다. 주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 축원문을 읽을 때라든지 비석에 이름을 새긴다든지 할 때도 화주가 훨씬 주지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
모든 역사적인 사찰들은 지금 사찰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부 신심 있는 화주가 들어서 화주를 잘해서 포교당을 짓고 절을 지은 것이다.
범어사 같은 이런 큰 사찰을 짓고 통도사 불국사 해인사 송광사 이런 모든 훌륭한 사찰들이 전부 그렇다.
예를 들어서 의상스님이 범어사를 지었다고 하지만 의상스님이 땡전 한 푼 없는 분인데 어떻게 지을 수 있었겠는가? 신심을 내면 화주가 나선다. 그러면 화주가 전국을 다니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니까 동참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이 큰 절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도 형식은 똑같다. 권선하는 화주의 역할이 그렇게 크다. 화주는 공덕도 많기 때문에 비석을 세워주기도 하고, 절에 오더라도 앞으로 절이 지어진 뒤에도 언제든지 아주 큰 대접을 받는다.
그것은 상식이다. 으레 그것은 세상의 이치다.
그런저런 여러 가지 인연으로써 발심하게 되었다. 그런 뜻이다. 끝에는 뭐라고 했는가? 발심을 해서
보리심을 내어서 온갖 지혜를 구하느니라
궁극에는 그런 뜻이다. 보리심을 발해서 일체 지혜를 구한다.
(2) 열 가지 얻기 어려운 법
차보살(此菩薩)이 연십종난득법(緣十種難得法)하야 이발어심(而發於心)하나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시처비처지(所謂是處非處智)와 선악업보지(善惡業報智)와 제근승렬지(諸根勝劣智)와 종종해차별지(種種解差別智)와 종종계차별지(種種界差別智)와 일체지처도지(一切至處道智)와 제선해탈삼매지(諸禪解脫三昧智)와 숙명무애지(宿命無礙智)와 천안무애지(天眼無礙智)와 삼세루보진지(三世漏普盡智)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이 보살이 열 가지 얻기 어려운 법을 인연해서 마음을 내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아는 지혜와, 선악의 업으로 받는 과보를 아는 지혜와, 모든 근기의 수승하고 하열함을 아는 지혜와, 갖가지 이해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갖가지 경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것에 이르러 갈 곳을 아는 지혜와,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아는 지혜와, 숙명을 걸림 없이 아는 지혜와, 천안이 걸림이 없는 지혜와, 삼세의 번뇌가 모두 다한 지혜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이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십력(十力) 열 가지 힘이다.
화엄경에서 자주 나오는 낱말이 십력이다. 십력은 부처님을 대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십력을 여기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시처비처지(是處非處智)
제가 자주 거론하는 처비처지력 여기서는 시처비처지력 그랬는데 옳은 곳과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 그것을 아는 지혜다.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또 말을 한마디 하더라도 ‘나의 이 말이 이 상황에서 맞는 말인가, 아니면 잘못되거나 틀린 말인가’ 이런 것을 잘 분별해서 적절하게 잘 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십력 가운데서 제일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그거 하나만 우리가 제대로 터득하고 살아도 훌륭한 지혜의 사람이다, 이런 말을 드렸다.
선악업보지(善惡業報智)
선악의 업으로 받는 과보를 아는 지혜, 우리는 전부 업을 짓고 업을 받는다.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다.
그래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선한 씨앗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맺고 악한 씨앗을 심으면 악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을 제대로 아는 것, 거기에 따르는 과보를 제대로 아는 지혜, 이것이 부처님의 열 가지 힘 가운데 두 번째로 들어가는 중요한 지혜다.
제가 아주 인과 이야기를 참 많이 강조한다.
그리고 아파트 건물 벽에 이 이야기를 좀 적어 놓자고도 자주 이야기한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 말이 어디에서 나왔든 간에 전부 다 인과의 이치다.
세상이 이렇게 형성되고, 내가 이러한 삶을 누리고 하는 것들이 전부 인과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거기에 맞게 실천해야 할 일이 바로 이점이다.
제근승렬지(諸根勝劣智)
세 번째는 모든 근기의 수승하고 하열함을 아는 지혜다.
우리가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근기는 천차만별이다.
머리가 꼭 좋다고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학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데 거기에 머리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근기의 수승하고 하열함을 아는 지혜, 이것은 참 항상 문제 되고 항상 있는 일이다.
자기가 실력은 부족한데 어떻게 하더라도 따라잡으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 것, 그런 것들도 물론 노력해서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는 다른 데 더 소질이 있다 이것을 발견해서, 수학이 크게 소질이 없는데 억지로 머리 좋은 사람이 수학 잘하는 것을 따라잡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을 잘 아는 지혜도 이 부처님 지혜와 맞먹는다.
근기의 수승하고 하열함을 아는 지혜, 십력이라는 것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내가 꼭답스럽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종종해차별지(種種解差別智)
갖가지 이해의 차별을 아는 지혜
화엄경을 우리가 이해한다 하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저는 죽으나 사나 하여튼 화엄경만 잡고 늘어지는데 이해를 해도 또 이해할 게 더 남았고, 공부를 할 것이 더 남았다.
사람마다 이해하는 데 차별이 아주 심하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
갖가지 이해의 차별을 아는 지혜, 그것도 큰 지혜다.
종종계차별지(種種界差別智)
갖가지 경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
앞에 나온 것은 전부 나에 대한 이야기지만, 여기 경계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다.
대상도 천차만별이니까 그것도 또 우리가 잘 알아야 된다. 대상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내 마음이 바뀌는 게 쉽지 대상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경계가 차별하다는 것, 대상은 차별하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 그것도 또 부처님의 지혜하고 맞먹는다.
일체지처도지(一切至處道智)
모든 것에 이르러 갈 곳을 아는 지혜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면 이러한 곳으로 흘러가겠구나, 이것도 또 환하게 부처님은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제선해탈삼매지(諸禪解脫三昧智)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아는 지혜
이것도 부처님 경지나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숙명무애지(宿命無礙智)
숙명을 걸림 없이 아는 지혜
숙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생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생을 누가 제대로 알겠는가?
어떤 사기꾼들이 간혹 과거를 안다고 세상에 떠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전부 사기고 부처님이야말로 숙명을 걸림 없이 안다.
중생들을 딱 이렇게 대했을 때 ‘아 이 사람은 과거에 어떻게 어떻게 살았구나’ 하는 것을 부처님은 깨달음의 지혜로써 확연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외 중생들, 평범한 중생들이 ‘과거를 안다’ 해서 ‘내가 보니까 니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더라, 니는 어떨 것이다’ 이렇게 예언 같은 것을 한다든지, 아는 체하는 것은 전부 사기다. 절대 속지마시기 바란다.
천안무애지(天眼無礙智)
천안이 걸림이 없는 지혜
천안통이 열려서, 천안통이 환하게 밝아진 사람은 어떤가? 천안통은 하늘 눈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산하석벽이 장애가 되지 않는가? 종이 한 장만 가려놓아도 못 본다. 그런데 천안통이 열린 분들은 산하석벽에 장애가 없다. 지금 여기 앉아서 서울에 누가 어떤 장소에 앉아서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다, 또 일본에서 미국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 앉아서 듣고 있다, 하는 것을 딱 보면 다 본다.
미국에서 야구 게임을 하는 것을 중계를 하면 여기 앉아서 접속을 하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천안통은 그런 기계 필요 없이 마음만 딱 내면 환하게 천리만리를 넘어서 그 경계를 환하게 눈앞에서 보듯이 꿰뚫어 본다. 그것이 천안통, 천안통이 걸림없는 지혜다.
삼세루보진지(三世漏普盡智)
삼세의 번뇌가 모두 다한 지혜
과거 현재 미래의 번뇌가 모두 다한 지혜, 이것은 정말 부처님 경지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참 열심히 수행해서 어지간히 번뇌가 없고 업이 사라지고 습이 다 녹았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어느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문득 새로운 습이 일어난다.
그것이 쉽게 안 사라진다.
여기 부처님은 삼세, 과거 현재 미래의 번뇌가 모두 다한 지혜를 가졌다.
이 단락에서 십력이라고 하는 화엄경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열 가지 부처님의 지혜를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에 더 부연설명하기로 하면 상당히 길게 설명할 수가 있지만 이만치 자세하게 된 데도 크게 흔치 않다. 그냥 십력, 십력이라고만 되어 있다.
핸드폰에서 십력을 찾으면 나온다. 조금씩 차이있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잘 나온다.
이것이 열 가지 얻기 어려운 법 그랬다. 이것이 열이니라.
(3)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함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응권학십법(應勸學十法)이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근공양불(所謂勤供養佛)과 요주생사(樂住生死)와 주도세간(主導世間)하야 영제악업(令除惡業)과 이승묘법(以勝妙法)으로 상행교회(常行敎誨)와 탄무상법(歎無上法)과 학불공덕(學佛功德)과 생제불전(生諸佛前)하야 항몽섭수(恒蒙攝受)와 방편연설적정삼매(方便演說寂靜三昧)와 찬탄원리생사윤회(讚歎遠離生死輪廻)와 위고중생(爲苦衆生)하야 작귀의처(作歸依處)니라
“불자여, 이 보살이 마땅히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할지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부지런히 부처님께 공양함과,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함과, 세간을 주도하여 악한 업을 버리게 함과, 수승하고 미묘한 법으로 항상 가르침을 행함과, 위없는 법을 찬탄함과, 부처님의 공덕을 배움과, 모든 부처님 앞에 태어나서 항상 섭수(攝受)함을 입음과, 방편으로 적정삼매를 연설함과, 생사윤회를 멀리 떠남을 찬탄함과,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서 귀의할 곳이 되는 것이니라.”
참 좋은 내용이다. 열 가지 법 배우기를 권한다. 이 법을 배워야 된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읽겠다.
불자여, 이 보살이 마땅히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할지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부지런히 부처님께 공양함과,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함과
생사 떠나는 것을 이야기하는 불교가 있는데 그것은 아주 초보불교다. 이 대승불교는 생사에 머물러야 된다. 보살은 생사에 머물면서 생사에 허덕이고 온갖 이치를 몰라서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해야 된다. 십주법문에 이렇게 나오지 않는가? 낙주생사(樂住生死)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내 자식이 병이 나서 고통받고 있으면 부모된 입장에서 그 자식 옆에 있으면서 시중을 들고 보살펴 주어야 된다.
병원에 있으면 병원에서, 집에 있으면 집에서 한 시도 떠나지 않고 뭔가를 필요로 하는가를 보살피고 준비해서 공급해주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거기가 병원이라고 ‘아이고 병원에 음식도 시원찮고 침대도 시원찮고’그렇다고 해서 지는 집에 와서 편안히 잔다? 그것이 부모로서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것은 도대체 될 수가 없는 일이다.
아픈 아이를 병원에 혼자 눕혀놓고 밤이 됐다고 집에 돌아와서 지혼자 편안하게 잘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에 같이 머물러야 한다.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치다. 제가 자주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을 이런 점을 들어서 극명하게 입장차이를 이야기한다. 아주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
세간을 주도하여 악한 업을 버리게 함과
당연히 보살로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
수승하고 미묘한 법으로 항상 가르침을 행함과
화엄경을 잘 배워서 화엄경을 열심히 퍼트리자 말이야.
무슨 방법으로든지 책으로도 퍼트리든지 가르침을 통해서 퍼트리든지 아니면 자기 집에다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든지 아니면 공원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수승하고 미묘한 법으로 항상 가르침을 행함과
위없는 법을 찬탄함과
좋은 법은 자꾸 찬탄해야 된다. 무비스님이 왜 저렇게 화엄경 화엄경 해쌌는가 말이다.
이렇게 시키는 대로 내가 하려고, 또 내가 신심이 나고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위 없는 법 최고의 법 화엄경을 자꾸 찬탄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자꾸 찬탄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미치면 미치게 된다.
미쳐야 미친다.
모두들 미쳐야 된다.
부처님의 공덕을 배움과
부처님의 공덕을 내 공덕으로 생각을 해서 부처님의 공덕을 베풀고
모든 부처님 앞에 태어나서 항상 섭수(攝受)함을 입음과
부처님이 나를 섭수해 준다, 그 정도의 위치까지 되어야 한다.
방편으로 적정삼매를 연설함과
적정삼매도 연설하고
생사윤회를 멀리 떠남을 찬탄함과
앞에는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입장이었다. 또 여기는 자기는 떠나있지만 중생을 위해서 생사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것, 이런 차원이다.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서 귀의할 곳이 되는 것이니라
병이 들어서 고통받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물도 떠다 주고 약도 주고 그 아픈 아이가 어디에 귀의하겠는가, 무엇을,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부모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다.
(4) 까닭을 말하다
하이고(何以故)오 욕령보살(欲令菩薩)로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전증광(心轉增廣)하고 유소문법(有所聞法)에 즉자개해(卽自開解)하야 불유타교고(不由他敎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마음을 더욱 넓게 하며, 들은 법을 스스로 이해해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딴 사람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내 스스로 즉자개해(卽自開解)해서 불유타교(不由他敎)라, 이것이 화엄경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곧 바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가르쳐야 된다.
남이 일러줘서 그것을 긴가민가 반신반의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무슨 힘이 되겠는가.
그런 이치로써 제1 발심주(發心住) 끝을 맺는다.
설명을 아무리 길게 해도 성은 안 차지만 이쯤에서 마치고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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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6월 4일 정기법회가 있는 날이다. 코로나도 어지간하니까 가능하면 인연 되는 분은 참석하시기 바란다. 성불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