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선실세 김개시 1편
조선 시대 궁녀들 중에서 명성을 떨친 예는 평범한 궁녀로 입궁하여 왕의 총애를 받고 후궁이나 왕비의 자리에 올랐거나 후대 왕을 출산한 경우이다. 숙종의 궁녀로 들어가서 경종을 낳고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쫓겨난 장희빈, 숙종의 무수리로 들어갔다가 훗날의 영조를 출산한 최숙빈, 고종의 궁녀로 들어가서 영친왕을 출산하고 황귀비(皇貴妃)까지 오른 엄비 등이 있다.
장희빈, 최숙빈, 엄비 등은 궁녀 출신이라고 해도 후대 왕을 출산했지만, 이에 비해 궁녀로서 왕의 총애만 받고 후대 왕을 낳지 못했던 장녹수(張綠壽)와 김개시(金介屎)는 온갖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장녹수와 김개시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났기에 그 비난이 더더욱 심했고, 남겨진 기록에도 모두 요부(妖婦)로 남겨져 있다. 역설적으로 갖은 비난을 받다 보니 장녹수와 김개시는 오히려 조선 시대 궁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김개시는 장녹수처럼 노래나 춤이 아니라 뛰어난 판단력과 두뇌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다. 게다가 장녹수는 입궁 후 곧바로 후궁이 되었지만 김개시는 어렸을 때 입궁하여 상궁까지 올랐을 뿐 정식 후궁이 되지는 못했다.
광해의 오른팔 궁녀 ‘비선실세’로 주목받았던 개똥이라 불리던 상궁 김개시는 누구인가?
옛날에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단명하지 않고 오래 살라는 의미로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어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김개시(金介屎)는 ‘개똥’이라는 아명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똥 시(屎)’ 자를 해자(解字)하면, 쌀[米]이 시체[尸]가 되었으니 똥인 것이다. 인분(人糞)의 ‘똥 분(糞)’ 자도 마찬가지다. 쌀[米]이 변했으니[異] 똥이 된 것이다. 한자의 재미있는 묘미다. 김개시는 ‘개똥이’라 불리다가 궁에 들어오면서 한자이름 ‘개시’로 불리게 되고, 선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가희’란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광해군일기》의 기록에는 ‘김가희’보다 ‘김개시’란 이름으로 더 많이 등장한다. 왕의 여인이 될 수 있는 첫 번 째 조건은 보통 왕을 유혹할 수 있는 뛰어난 미모와 예술적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개시는 이런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의하면 김개시는 '천예(賤隸)의 딸' 즉 천한 노예의 딸이었다고 한다. 궁녀로 입궁한 후에도 주로 공노비인 내수사 출신의 궁녀들과 어울렸다. 게다가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다고 한 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미인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조선시대 궁에 입궐한 궁녀들의 최고의 목표는 왕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는 것이다. 김개시는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후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개시는 후궁의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다. 후궁의 신분보다는 궁녀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에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왕의 강력한 신임을 얻은 김개시는 상궁에 불과했지만, 어떤 권세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첫댓글 조선시대
궁녀들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지는군요..
님의 관심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