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것, 다시 말해 그렇게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단순할 수 있습니다..
그에 있어 제대로 된 이해와 통찰을 위해서는 우선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있는 곳에서, 특히 개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주야로 골방 같은 곳에서 마치 옛 사람과 같이 더 이상의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을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정말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여러 근심과 잡생각들 등과 싸울 수 있고 물리칠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혹 범하게 된 죄악들, 막힘과 걸림과 상함과 눌림과 징계들 등이 된 죄악들에서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키게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실제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 등도 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하고 충만케 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강렬하고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전적으로 영과 진리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영이신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임은 물론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넘치게 되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진정 그와 같은 골방이 원론적,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과 기쁨들, 응답과 역사와 열매들이 넘치는 예배의 자리와 결코 다르거나 별개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일 예배를 위시한 다양한 모양의 공적 예배들에 있어서도 잘 따지고 통찰해 보면 주로 설교, 교독문, 기도, 찬송, 헌신, 친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 같이 근본적으로는 오직 말씀인 것으로 설교와 교독문은 말씀 그 자체이거나 오직 말씀대로 푼 것이고, 기도도 자신의 뜻과 세속과 정욕들 등이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께 말씀에 약속된 것들을 말씀대로 간구하면서 말씀 그대로 누리고 이뤄지게 되는 것이거나 가장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게 하는 방법과 통로인 것이며, 찬송들이나 찬양들도 모든 전제와 근본과 생명은 전적으로 말씀인 것으로 말씀 그대로를, 또는 오직 말씀대로의 믿음과 고백과 증거와 높임과 의지 등을 음과 곡을 활용해서 표현하는 것이며 쓰일 수 있게 하는 것임이 아닐 수 없고, 헌신이나 봉헌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와 은사와 응답과 복과 열매와 흥왕들 등에 있어 극히 일부를 말씀을 따라, 말씀대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섬기는 것이며, 교제나 나눔도 말씀의 가장 핵심이자 근간이며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고 실행하는 모양과 방식들인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예배에 있어서의 모든 맡은 자들, 곧 목회자들, 여러 순서자들, 봉사자들, 다양한 모양의 구성원들, 게다가 예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모든 순서들, 상황들, 순간순간들에 있어서까지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근심과 미움과 자기 소견과 잡생각과 불신앙들 등이 아닌 전심으로 오직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때 온전하고 제대로 된 예배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실상 그에 있어서야 말로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능력들로는 결코 가능할 수 없는 것이고 방법과 통로는 오직 한 가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예배자들이, 특히 모든 순서자들이, 심지어는 모든 순서 순서들, 순간순간들에 있어서까지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사모하고 의지하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반드시 그로 인해서만 모든 부분들에 있어서 온전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생생하고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고, 그 전에 그로 인한 하나님의 임재와 기쁨과 영광과 풍성함들이 작을 수 없는 것이며, 참으로 그러한 것이야 말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 이 세상에 있어서는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삶의 예배, 예배적 삶, 사실상 산 제사, 산 제물, 산 예배라 할 수 있는 믿음과 삶도 근본적으로는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그 어디에서 무얼 하든 날마다 순간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오직 말씀, 말씀대로의 삶을 살고 나타내며 실천하고 나누며 증거할 때 가능할 수 있는 것인데..
그에 있어서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전심으로, 전적으로 말씀대로의 삶이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산 제사와 같고 근본적인 면에 있어서는 영과 진리의 예배와 같은 삶인 것이며, 그와 함께 당연히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마찬가지로 임재하시며 기뻐하시고 역사하시며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과 승리와 역전과 복과 열매와 흥왕들 등으로 화답하시는 것이고 예비하시는 것이며, 조금만 따지고 봐도 그것이 바로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되는 삶과 믿음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4:23~2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11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