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육신의 멸망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의 시작임을 믿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 자들은 죽음으로 인하여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 따위로 여길 수 있음이 믿음입니다(고전 15:55).
그리하여 믿음의 선배인 사도 바울과 같이 사망을 꾸짖을 수 있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육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소서.
이 아침에 말씀으로 주를 뵙게 하시오니 이 교제와 사귐 안에서 주님과 더 가까이 연합하도록 나를 붙드소서.
옛 사람으로 행하는 자기주장의지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렇게 나의 육신은 죽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영육간에 연약한 주의 자녀들을 은혜의 장중에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2:15-25
제목 :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5 맞은 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에릴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50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50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42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 나의 묵상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의 무리가 엘리야에게 있던 영이 엘리사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나와 절을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에게 힘이 세고 용감한 사람 50명이 있는데 엘리야를 찾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영이 엘리야를 들고 가다가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뜨렸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리사는 보내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들이 너무 강청하는 바람에 그러면 가라고 허락한다.
그들은 50명을 보냈고 3일 동안 온 사방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어서 돌아왔다.
엘리사는, 내가 가지 말라고 할 때 가지 말 것이지 뭣 하러 헛수고를 했느냐고 하였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련의 선지자 무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성령이 하시는 일을 믿지 못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엘리야를 데리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골짜기에 떨어뜨렸을지 모르니 찾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참 어이없는 모습이요 기가 막힌 행동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다름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
내가 이들을 향하여 손가락질 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그들과 똑같이, 아니 그들보다 더 믿음 없는 행동들을 행했던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리석게 행동하고 믿음 없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어디 한 두 번이랴?
그런 나를 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가슴이 터지셨을까 생각하면 그저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래 전 교회를 개척하려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예배당을 건축할 땅을 보러 다녔다.
며칠 간 보러 다니다가 맘에 드는 부지를 보게 되었다.
부동산과 계약 날짜를 정하고 그 날 땅 주인과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정한 기일이 되어서 3자가 함께 만났다.
계약서를 쓰는데 부동산 업자가 나에게 제안을 한다.
거래 금액보다 좀 낮추어서 계약서를 작성해 주면 땅값을 좀 깎아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자는 것이다.
나는 갈등이 되었다.
말은 들어봤지만 막상 내 앞에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제안이 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빠왔다.
내가 누구인가?
세상 일도 아니고 주를 향한 열심으로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 목사가 아닌가?
그런데 거래 금액을 낮춰 주겠다는 말이 나에게는 너무 솔깃하였다.
교회를 개척하는데 자금도 쪼들리고 필요한 돈이 많았는데 깎아 주겠다는 금액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였다.
하나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이 찜찜하긴 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예배당 건축에 들어갔으며 개척을 시작하여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창원 세무서에서 두 사람이 날 찾아왔다.
수 년 전 땅을 매입할 때 시세보다 싸게 계약서를 작성한 다운계약서 건을 이야기 한다.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또 가슴이 두근두근, 쿵쾅쿵쾅 거리면서 정신이 없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숨길 수 있으랴.
그때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했다.
목사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수치를 당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더 큰 수치와 부끄러움은 하나님 앞에서였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자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잠시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낼름 받아먹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일인지...
그 일 이후로 나는 교인들에게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내가 개척 과정에서 이런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라고 고백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주님을 향한 믿음 없음에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개인적인 일도 아니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불법으로 시작한 나를 주님은 가만 놔두지 않으시고 죄를 보게 하셨으며 그 죄를 폭로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살리기 위함임을 안다.
목사도 유혹 앞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때로는 그 유혹의 미끼를 물기도 한다.
믿음 없는 행동이 나의 양심을 팔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거짓을 폭로하시고 깨트리신다.
나를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살리시기 위함이다.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이런 나를 보면 선지자의 무리가 행한 행동은 애교꺼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의 죄성과 비참함은 도무지 목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드나, 그런 나를 안으시고 품으시며 용서하시는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때로는 말씀과 양심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나보다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아니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보기도 한다.
그럴듯한 것으로 포장하고 나는 그렇지 않은 듯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목사인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다.
오늘도 말씀 앞에서 나의 부끄러움과 죄를 밝히 드러내시고 오직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가게 하시는 은혜에 머리를 숙인다.
* 묵상 후 기도
생각해보면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는지 모릅니다.
나의 죄 됨과 불경한 죄를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요?
그럼에도 이런 나를 살리려 그 모진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는 죽어 마땅한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이런 나를 어찌 살리셨나이까?
날마다 죄를 먹고 마셨던 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죄악 가운데 헤매는 자를 주님은 당신의 피로 세우셨나이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 사랑의 감격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일으키며 이제는 자의식의 눈이 아니라 나를 품고 계시는 주님의 눈으로 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살리신 주님이시기에 그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
세상 모든 것 내려놓고 오직 주님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세상을 향한 욕망과 거짓된 마음을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나의 마음에서도 이루어 주소서.
주를 사랑함이 다른 그 무엇보다 승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오니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눈가가 짓무를지라도 은혜의 눈물이 홍수를 이루게 하소서.
나의 가슴이 주님으로만 가득 채워지길 원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