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로회 서신 188호 - 기습과 역습 -
■6.25의 징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1947년 국공내전에서 단련된 중공군 3개 사단이 압록강을 건너 인민군을 증강해 주었고 38선에 연한 국지도발은 1949년부터 벌어졌다. 김일성은 1950년 신년사에서 분단의 완정(完整)을 부르짖고 있었다. 평양에 간 김구도 김일성에 농락당해 기습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다. 국방장관 신성모는 한판 붙게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된다고 이승만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그러한 판국에 기습을 당했으니 군의 방어는 허겁지겁 이었다. 한강교 조기 폭파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유엔군의 참전으로 역습이 시도되고 남북통일은 손에 잡힐듯 했지만 또다른 기습이 있었다. 미국의 전략정보기관도 현지 군사정보부대도 숱한 징후에도 불구하고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개입을 믿지 않았다. 중공군의 10월 기습은 맥아더도 갈아치웠다.
당시 국군의 전력과 준비상태는 소련이 육성한 인민군과 비교가 되지 않았고 국방장관 채병덕은 다부동 전투의 영웅인 백선엽과 동연배였지만 김석원 등 원로의 조언을 듣지 않음으로 장수의 무능이 처절한 동족상잔의 처절한 비극을 야기한 적의 기습을 도운꼴이 됐다.
그러한 기습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목을 따오라는 김일성의 특명을 받은 청와대 기습이 실패하자 80년 5월 김일성은 광주를 기습, 고도의 심리전까지 펼침으로 남한을 혼란에 빠뜨린후 더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5.18은 김일성 최대의 성공적 업적임을 교과서에 실었다. 천안함 폭침도 기습공격임이 밝혀졌음에도 내부에 잠입한 오열이 가세하여 이를 희석시키고 있다.
■기습을 받은 것은 동양, 서양, 고금이 없다. 독소불가침 조약을 믿은 스탈린도 히틀러의 기습을 받았고 루스벨트도 진주만 기습을 받았다. 기습은 철저한 사전 모의가 우선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대부분 상대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다. 그러나 지휘체계가 일사분란하지 않으면 시간을 끌게 됨으로 오히려 역습의 빌미를 제공하게된다.
6.25당시 북한은 전격적으로 서울을 점령하였지만 최소한 30만 명의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이 자체적으로 봉기하여 인민군에 합세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말을 믿은 김일성이 3일간이나 그 봉기를 기다렸지만 오판이었다. 결국 지체된 3일의 시간이 한반도 적화를 이루지 못한 결정적 패인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7.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이집트와 시리아도 1973년 10월 전격적으로 유대교의 욤키푸르라는 속죄의 날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으로 진격했고 이집트군은 스웨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진격했다. 이스라엘을 존망의 기로에 놓이게 할만큼 치명적이었다. 다행히도 합동작전은 시간을 끌어 효과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이스라엘은 이집트 제 3군을 궁지에 몰아넣고 유리한 휴전협정으로 마무리했다. 그렇지만 이집트는 10월 6일을 대대적인 전승절로 축제를 벌린다.
■2016년 10월에 기습적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단숨에 권좌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사전에 충분한 모의가 있었다는 것은 한참을 지난 다음에야 밝혀졌다. 김무성, 유승민, 박지원 등이 함께 모의하고 홍석현은 가짜 테블릿 PC에 최순실 농단의 거짓을 만들어 좌파는 이를 촛불로 확산하고 언론은 합세했다. 전격적 기습공격에 온 국민이 당한 것이다.
탄핵초기 음모를 믿지 않은 힘없는 민초들은 기댈곳을 찾았다. 빨강 바탕에 '육사' 라는 초록색 글자의 로고가 새겨진 깃발은 태극기를 든 그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꿈과 희망 그리고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위로해주는 상징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촛불집회의 홍위병이었고 태극기는 버려진채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민초들은 깃발든 기수에게 다가가 왜 이제사 나타났느냐며 꼬깃꼬깃 구겨진 만원짜리 지폐와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들은 군(軍)이 곧바로 총칼을 들고 저들을 척결할 날이 머잖았다고 생각하고 군이여 궐기하라며 전단을 뿌리고 피켓과 현수막을 내걸었다.
육사 창설이후 현존하는 총동창회 회원이 현역장교와 예비역 장교를 모두 합하여 겨우 1만 5천여 명으로 깃발을 들고 아스팔트에 나선 인원은 현역에서 은퇴해 년식이 몇 십 년도 진즉 넘은 중고품 시장에서도 골동품 딱지가 붙여질 정도의 노병들로 총과 칼을 쥔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는걸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시간이 세월이란 이름으로 바뀐 얼마후에서야 사람들은 그들의 실체를 알게되었다. 문재인들은 원전파기며 소주성으로 경제를 파탄내고 대통령 친구를 시장에, 청문회는 하나마나, 횡포는 날이 갈수록 거칠어졌지만 믿었던 군은 나타나기는 커녕 탈북민을 잡아서 북한에 넘겨 총살받게 하였다.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자 냄비적 민심은 '육사는 똥사' 라며 깃발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기습은 선제공격이다. 대선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 모의와 도상훈련이 필수다. 좌파의 전략은 인재풀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마지막 외통수를 그들은 항상 준비하고 있다.
국민의힘당이 야권 대선후보를 단일화 시키지 못하도록 공작하는 것도 저들의 한 수다. 지지세력은 35% 안팎이지만 결속력이 강한 좌파의 특성상 야권이 후보난립을 하게 된다면 누가 되든 단일화된 여당의 후보가 승리하게 된다.
이준석은 영리한 트로이 목마다. 믿음을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닥치고 막말'로 환대를 산다. 그렇다고 자기를 박근혜에게 천거해준 유승민까지 상품으로 내놓기에는 낮이 간지럽다. 보수층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그럴듯한 인물의 손을 빌려 주군 유승민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야한다.
신원식은 육사 37기 출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의 동기생이다. 별 세 개짜리 합참 작전본부장 출신으로 전략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능력을 소지하고 있다고 본 조선일보가 그를 키웠고 유승민은 그를 국회에 입성시켰다. '묵시적 청탁'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신의원께 묻소. 오늘 조선일보에 귀하가 유승민 계파라는 기사가 났던데 진짜요?( 유승민에 가장 분개해야 할 사람이 그의 수하라는게 믿기지 않아서 물었던 것이다)
"계파라는 게 공천, 자금 등 정치적 이익을 같이하는 집단입니다. 과거 상도동계, 동교동계, 친박계, 친이계 등이죠. 유승민계는 당대표 경선때 이준석 대표 상대 후보가 만든 구태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계는 단호히 거부하지만, 지금 야권 대선주자 중 우리나라를 바로세울 대통령감은 유승민 전 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마지막까지 도울 생각입니다" 그는 덧붙였다.
"이방 계신 선배님들 중엔 제 판단과 다르신 분이 계실 줄 믿습니다. 저는 다른 의견도 존중합니다. 마찬가지 제 의견과 인격도 존중해주시길 바랍니다" 깜짝놀라 신원식을 잘아는 그의 육사 동기생에게 확인차 연락을 해봤다.
"신원식을 정치에 입문시키고 경제민주화를 주입시킨 게 유승민입니다. 2016년부터 둘은 정치적 동지이며 신원식은 유승민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자기는 안보실장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준석을 뒤에서 코치를 하고 있고 한기호를 이준석 캠프로 끌어들인 것도 신원식 작품이라고 합니다. 가까이에서 본 신원식은 친중반미로 보입니다"
이렇게라도 사실에 바탕한 역습으로 기습적인 그의 배신에 철퇴를 가하고 싶다. 사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린 신원식을 대한민국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육사는 똥사',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2021년 6월 25일 전야에
8.15집회는 또다른 역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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