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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강의(이근호), 정리(구득영)
* 욥기를 일명 '지혜문서' 라고 하는데, 이런 지혜문서는 그 메시지가 너무나 단순하다는 것이다. 전에 '욥기에 대한 상반된 질문' 이라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욥이 이야기한 것과 세 친구가 말한 것이 공통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욥의 편을 드느냐는 것이다. 왜 세 친구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옹호를 해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 이 욥기에 대해서 제대로 적은 글들을 보지를 못했는데, 그래서 이 욥기를 새벽기도 시간에 설교를 해보면, 하면서도 앞뒤의 말이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욥은 잘하고 친구들은 엉망이다' 라고 해놓고, 그런데 돌아서서 보면 욥도 엉망이라는 것이다.
*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하나 적었는데, 과연 '욥과 친구들이 하는 말이 같은가, 아닌가?' 라는 것이다. 그래서 욥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글을 적었다는 것이다.
◈ 욥기의 주제 - 실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상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다르다 !!
* 욥기가 말하는 것은, 실재하는 하나님의 모습과 인간들이 상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인간의 지혜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지혜는 갖다 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욥기를 '지혜문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이런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가 서로 충돌이 되니까, 그러한 와중에서 죽어나는 것은 바로 '욥'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욥은 누구 때문에 고난을 받는가? 자기의 잘못인가? 바로 마귀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의 이러한 고난의 원인을 추적해보니까,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이 있더라는 것이다.
* 원래 사탄이란 하나님과 대결을 하는 존재인데, 욥은 괜히(?) 끼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이유 없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과 사탄의 그러한 내용을 모르니까, 자기가 왜 그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 그래서 욥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가만히 있어.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지금 뭔가 이 세상중심이 나를 가지고 노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그 중심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런 고난을 받는 내가 일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혜' 라고 본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욥기에서 하는 이야기는, 욥이 지혜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욥도, 친구들도 그러한 지혜에서 소외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지혜는 하나님 소관이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 욥기 38장을 한번 보자.
(욥 38:25)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욥 38:26)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욥 38:27)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욥 38:28)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욥 38:29)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을 하니까,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서 책망을 하신다는 것이다. 웃기지 말라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데, 가물었다고 해서 비를 달라는 것은 너무나 인간들의 자기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다.
* 그래서 욥의 마지막에서, 모든 것이 원초적으로 돌아가면, 창세기에서 보여주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것이다. 즉,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의 지혜 - 선악과가 없었으면 우리가 죄를 안 지었을 텐데 !!
* 우리가 선악과를 왜 따먹었는지를 하나님께 묻는 수준이 아니라 따지고 싶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겠는가? '그런 것을 왜 묻노? 너는 그런 것을 물을 자격이 없어. 네가 나의 지혜를 아나?'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선악과가 없었으면 우리가 죄를 안 지었을 텐데'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인간의 어리석은 지혜라는 것이다.
* 이런 인간의 지혜는 석가나 공자에게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한번 읽어 보라. 그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말이다. 이들은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라보는 세상은 보나마나 엉터리라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을 소외시켰는데, 그런데 인간은 자꾸만 끼어 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처럼 말이다. 이 친구들은 그 특징이 세 명이나 다 공통적으로 고난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런데 욥기 마지막에 나오는 '엘리후' 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중심으로 보지 말고 뭔가 대속자의 중심으로 보자' 라는 것이다. 물론 이 대속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 사실 이러한 자기 중심으로 보는 것은, 욥의 세 친구도 그렇지만 욥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여, 왜 저에게 교통사고가 납니까?' 라고 하면,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겠는가? '네가 뭔데. 교통사고가 좀 나면 어때?' 라는 것이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자기에게 고난이 닥쳐온다고 하나님께 항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질문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이 땅에 속해있는 인간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미 지혜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혜는 하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
* 그렇다면 참된 지혜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명저(?)가 바로 [하나님의 선택] 이라는 책이다.
* 구원받고 못 받고는 하나님의 지혜에 속한 것이고, 오직 성부와 성자 사이의 계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물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소외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 라는 것이다.
* 그래서 '지혜' 라고 하는 것은, 오묘한 어떤 그 무엇이 아니라,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지, 우리 인간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모든 중심이 나를 비켜나 있다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 이것은 전도서도 마찬가지인데, 전도서 3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 우리 인간들이 이런 것의 이유를 아는가? 모든 것의 때는 하나님 소관이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지막에 심판이 있음을 알고, 주시는 은혜대로 재미있게, 아내와 웃으면서 잘 살라는 것이다. 쓸데없는 짓일랑 하지 말고 말이다. 즉, 중심이 내 중심이 아니니까, 주님께 다 맡기고 살라는 것이다.
(전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 그런데 왜 목회를 하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가? 자기가 반드시 목회를 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주시는 데로 살면 되지 말이다. 안 주면 말고 말이다. 내가 뽑혀서 목회자가 되었고, 그리고 다시 목회현장에서 뽑아내시는 분이 그렇게 뽑아내었다면, 그대로 순종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억지로 버티고 있는가? 목회가 무슨 생계수단인가?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목회를 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가지고 목회를 하신다 !!
*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화투를 치시는데, 그러면 버릴 때는 버리고 따서 먹을 때는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사리 주제에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한다면 되는가? 주제파악을 해야지 말이다. 그 중심은 항상 화투를 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 욥기의 지혜 - 고스톱을 치는데, 그 중심은 화투패가 아니라, 치는 분이시다 !!
* 우리가 말씀을 보면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라는 것을 놓쳐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면, 구속사를 한답시고,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런 식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그렇게 증거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이 바로 참 '지혜자' 인데, 욥기의 한 구절이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욥기 전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즉, 욥기 전체가, 성부와 성자의 권리에 의해서 고난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이지, 인간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천국에 온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 너 죄를 지었지? - 안 지었다. - 안 지었다면, 왜 벌을 받지? - 그러게 말이다 ]
* 그러므로 욥과 그 친구들의 대화는 어떤 수준인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일어난 일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잘랐다는 것이다. 자꾸만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
[ 시편 ]
* 시편은 다윗언약인데, 그 주제는 시편 89편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성실성' 이라는 것이다.
(시 89: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시 89: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 89:3)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시 89: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셀라}
(시 89:52)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 그리고 시편 8편에 보면, 젖먹이의 힘으로 승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하셨기에 모든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전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젖먹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 잠언 ]
(잠 1: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잠 1: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 잠언도 마찬가지인데, 잠언은 욥기보다도 더욱 간단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명의 말씀은 다윗언약에 의해서 다윗계통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 잠언의 주제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
* 그러므로 여기서 왕이라는 것은, 이방의 통치하는 그런 왕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인 다윗을 훈계하는 것같이,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에 자기 백성을 아들로 보고 훈계하고, 그 훈계의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은 무엇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이라는 것이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그런데 이것이 사실 참으로 모호하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생각을 그만 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세계만 이루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잠언에서는, 세상을 애굽으로 보고, '애굽에서 탈출하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잠언의 핵심은? 애굽적인 사상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밝혀서, 격리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 애굽의 사상이 바로, '잘난 놈은 잘 되고, 못난 놈은 못된다!' 라는 선악체제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말이다.
* 그러나 여기에 비해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인가?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다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러니 서로서로 돕고 살라' 라는 것이다. 인간들이 제 아무리 설쳐도 그 걸음걸이를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모든 일은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을 하셔서 다 알아서 하시니까, 걱정일랑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 그리고 이런 말씀은 부모를 통해서, 왕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전달하는 왕이 가지고 있는 그 지혜는 바로 '이웃사랑'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라는 것이다. 교만하지 겸손하게 섬기라는 것이다.
* 보통 잠언의 주제를 여러 가지로 나누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렇게 나누다가 보면, 모순점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쓸개빠진 신학자는 '아멘호텝' 이라는 애굽의 잠언을 배겼다고 주장을 하는데, 다시 말해서, 리메이크를 했다는 것이다. 할 일이 없으면 집에 가서 아이나 보지 말이다.
◈ 잠언 - 모든 인간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 !!
* 잠언에서 강조하는 이웃사랑이 바로 율법의 완성인데, 이 이웃사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이웃사랑이란, 모든 인간의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것이다. 교만은 이웃사랑을 완전히 무시하니 말이다. 자기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혼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까 기쁘게 해주라는 것이다. - 간단하지 않는가?
◈ 지혜의 완성 - 모든 행동의 시발점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
* 친구가 나를 욕한다고 흥분하지 말고, 그 욕하는 친구 뒤에 바로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행동의 시발점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두는 것이 지혜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 왜냐하면 잠언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지혜로, 말씀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으로 지었다는 것은, 말씀으로 지었다는 사실을 양탄자로 좍 하고 깔아버린다는 것이다. 말씀으로 지었다는 사실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깔린다는 것이다. 전국의 방방 곳곳에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이웃사랑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로 이웃사랑이다 !!
* 이러한 마음을 가진다면 내가 어떻게 이웃을 학대하고 마누라를 구박하겠는가? 귀한 자식을 그냥 데리고 와 놓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아내사랑이 아닌가? 얼마나 겸손한가? 이것은 겸손한 티를 내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 욥기의 주제는, '모든 주체에서 인간을 소외시켜서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있다' 라는 것이고, 이에 비해서 잠언은, 그 욥기의 가치를 상황에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의 주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한다'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모든 주권이 다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잠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 잠언 31장에, 르무엘 왕(솔로몬?) 잠언이 나오는데, 누가 현숙한 여인인가? 자기 남편을 하나님께서 주신 남편으로 알고, 하나님께 하듯이 자기 남편에게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남편에게 잘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남편을 개떡같이 여기는 않는다는 것이다.
(잠 31: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 그러면 남편은 이 아내를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아이쿠, 예쁜 내 마누라. 여기 뽀뽀!' 라는 것이다. 남편이 밤에 늦게 들어오겠는가? 이런 여인이 바로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남편을 섬긴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질문을 하는고 하니, '그런 현숙한 여자가 있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런 여자가 있다면 메시야가 왜 오겠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마누라를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욥기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중심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후가 '대속자'가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대속자를 쳐다보라는 것이다.
* 잠언에서, 이런 아내를 얻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생각만 해도 얼마나 황홀한가? 그래서 31장에서 남편이 그 여자를 칭찬하는데, 팔불출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잠 31:28)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잠 31: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 성실하다는 것을 두고서, 그냥 성실하다고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신자의 경우에도 성실함을 이야기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 인간의 모든 배후에 여호와가 계심을 인정하면서, 이것이 중요한데, 남편을 섬기는 것을 주님 섬기듯이 하는 여자는 이 세상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아내를 바라볼 때마다 너무나 엉망인 것을 알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질려서(?), 자기 마누라를 쳐다볼 때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는 고백이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마라난타 !!
* 그런데 혹시 그런 와중에서 자기 아내가 잘해주면,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아이쿠, 웬 떡이고'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 전도서 ]
* 전도서의 주제는 너무나도 분명한데, '마음껏 놀아라, 신나게 놀아라, 이 세상은 어차피 개판이다' 라는 것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성장과 부흥과 발전을 외쳐도,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성장과 부흥과 발전 등은 인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신나게 놀라는 것이다. -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
◈ 전도서의 주제 - 마음껏 놀아라, 신나게 놀아라, 이 세상은 어차피 개판이다 !!
(전 2:22)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전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공부, 그것도 의미 없다는 것이다. 밤을 세워 공부해 보라. 과연 그것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킬 수가 있는지 말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근심하고 수고하고 열심히 노력을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놀라는 것이다.
(전 12:12)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 범사에 때가 있고, 이런 때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에 속한 것이니, 그렇게 너무 설치지 말라는 것이다. - JUST DO IT ??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고마움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 사는 것이 인간의 제대로 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보았자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간에 애써서 맞벌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서로 인생을 즐기라는 것이다.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 5:11)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 솔로몬과 욥을 비교해보면, 솔로몬은 최악을 경험했고, 솔로몬은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헛되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주님이 자신의 지혜로 하시는 것이지, 인간은 그냥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 오직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어떻게 교회를 성장시키며,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까?' 라는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지혜는 헛되다는 것이다.
* 우리는 다만 살아가는 현장에서 주님만 증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분에게 영을 받았다면, 오직 그분이 시키는 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증인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모든 심판도 예수님이 알아서 하시고 말이다.
(전 5:14)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 전도서 4장과 욥기 1장을 한번 비교해 보라. 같은 흐름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라는 것이다. 인간이 욕심을 부려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채소만 반찬으로 먹으면서도 웃으면서 밥을 먹는 가정이, 고기를 먹어도 인상쓰는 가정보다 낫지 아니한가?
(전 6:2)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 진주에 있는 100평이 넘는 모 그룹의 회장의 저택에 한번 가보았는데, 물론 큰집에는 기가 죽지만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은 똑같다는 것이다. 전혀 기가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두들 살아가는 모습이 그만그만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잘 살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으면서, 도대체 무엇이 더 필요한가? 마누라고 자식이고, 아니면 성경책조차도 그냥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마구 떨어져서 죽으면 되지 말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치집에 가지 말고, 초상집에 가라는 것이다.
* 요즘 아기씨들이 시집을 안 가려고 하는데, 그것은 교만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기만 원하는데, 그러나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다. 백마 탄 왕자를 원하는데, 일종의 공주병이라는 것이다.
* 지휘자 정명훈 같은 경우에는 자기 아내가 너무 늙어 보이기에 카메라에 나서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할 때 엄청난 반대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늙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여자가 16살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고모와 같이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이렇게 헛된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그것이 참된 지혜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라는 것이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 아가서 ]
(아 1:1) 솔로몬의 아가라
* 이렇게 아가서를 시작하면서, '솔로몬의 아가' 라고 확실히 밝히고 있는데, 이렇게 아가서의 저자를 미리 밝히는 것은, 이 아가서는 어떤 남녀간의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아가서의 주제 -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
* 그 당시 솔로몬은 다윗과 같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그러한 솔로몬이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어떤 개인의 연애놀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가서가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 솔로몬이 다윗과 같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보통 왕들의 위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계시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 한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다 !!
* 이 아가서의 특징은, 술람미 여인이라는 사실은 별로 보잘것없는 그러한 여인을 끝까지 추격해서 한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왕이지만 자기 희생으로 말이다. 얼마나 이 여인을 사랑하는지 말이다.
(아 5: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아 5: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 빗장에 듣는구나
* 솔로몬이 왕이지만, 병이 날 정도로 그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상사병 말이다.
(아 5: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원래부터 한 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아 4: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아가서를 보면서, 아가서의 사랑과 기존의 계산적인 사랑과 대비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은 그야말로 주고받고 하는 그런 사랑이지만, 그러나 아가서의 사랑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이 아가서는 어떤 면에서는, 시편과 잠언과 전도서를 모두 다 합쳐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지만, 그러나 오직 사랑만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이 있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어제 설교를 하면서, 주님의 이러한 용서가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누구를 원망하고 입이 툭 튀어나와서 삐죽거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주님의 용서가 있는데 말이다.
* 이 아가서에 등장하는 자연물들은, 그야말로 가장 최상품의 물건들이 등장하는데, 꽃 중의 꽃이고, 온갖 화려한 것들이 다 나와도, 그러나 너의 아름다움만큼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내가 바로 그렇게 보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 그대 있음에 !! ♣
♨ 이후의 '이사야'와 '예레미야' 강의는 '성경강해' 코너에 따로 정리되어 있음 !! ♨
[2000년 8월 23일에 96 목회자 수련회 강의정리를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