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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칸 라틴댄스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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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만추산행] 트레킹 | 동강 르포
블랙 칸 추천 0 조회 28 09.02.16 23:4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만추산행] 트레킹 | 동강 르포
가을 고요와 더불어 적막강산 동강 길을 걷다
나리재~제장~칠족령~문희(1박)~진탄~문산~어라연전망대~섭새 30km

동강이 가진 멋의 핵심은 구절양장 짙푸른 물굽이와 더불어 여울물 소리의 작은 조각 하나도 잃지 않는 적요에 있다. 문득, 아무 소리도 없음에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강 건너 산중턱의 작은 새 소리조차도 선명히 끌어오는 적요-. 동강이 가진 이 순수 적요의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산, 연포, 제장에 콘크리트 다리가 차례로 놓이고 나서 자동차 소음이 동강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곤 한다.


▲ 이른 아침 황새여울 옆. 아무리 큰물이 지나도 동강은 금새 원형을 되찾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옛 문산, 연포, 제장나루에 걸쳐진 다리를 지나며 곧 찻길은 모두 끊어진다. 동강은 소용돌이 맴도는 깊은 소와 높고 가파르게 깎아지른 ‘뼝대(절벽을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로 순수 적요의 마지막 공간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끊어진 찻길의 끝을 지나면 적막강산 동강 특유의 고요함으로 가득한 토끼길이 다시 이어진다. 동강의 그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적요와 가을 햇살이 그리워져, 길을 나섰다.

정선 광하교부터 영월 섭새에 이르기까지 약 50km 길이의 동강은 ‘찻길이 뚫린 구간’과 ‘찻
길이 끊어진 구간’ 둘로 나눌 수 있다. 광하교~운치리 간은 양 끝단이 각각 42번과 38번 국도로 끝이 이어지기에 차량 통행이 잦다. 콘크리트 포장일망정 교행이 가능할 정도로 넓어 차량이 간혹은 바로 옆을 지나쳐 달리며 휑하니 흙먼지마저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운치리~섭새 구간은 비록 중간중간 차로 질러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럿이어도 한 가닥으로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제장과 연포, 그리고 문산으로 들어가 바로 거기서 끝맺는다. 진탄에서 문희까지 3.5km 구간만 널찍한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을 뿐, 그외 구간은 조심조심 핸들을 꺾어야 하는 좁은 길이다.

▲ 문산으로 곧장 동강을 가로질러 건너고 있는 취재팀. / 칠족령 성황나무.
동강의 고요함을 맛보고자 하는 우리의 발길은 그러므로 저절로 동강 하류인 이 운치리~섭새 구간을 향했다. 기교를 다해 뒤틀고 휜 물굽이와 오랜 세월 다듬은 희디흰 자갈밭, 작은 소곤거림도 받아내는 높은 벼랑 등의 밀도 또한 하류쪽이 한결 높다.

초광각렌즈를 들이댄 듯한 기이한 느낌

절경 포인트를 모두 보기로 욕심을 내자면 동강 따라 걷기는 백운산 들목인 운치리 점재부터 시작해야 한다. 점재교를 건너 백운산 남록의, ‘동강 전망대’로 알려진 망루처럼 높직한 기암절벽 위에 섰다가 촛농 흘러내리듯 길게 흐른 백운산 남릉을 따라 나리소로 내려서는 것이다.

“나리소 강변에 다다라서는 나리소 물이 고였다가 흘러넘치듯 하면서 하류로 내리닫기 시작하는 야트막한 곳인 말목여울을 타고 건너면 된다”고 고성리 상구가든 주인은 말했다. 그러나 이 길로 가면 나리재 옆 벼랑에서 펼쳐지는 백운산 조망을 포기해야 한다. 갈등하다가 우리는 나리재에서 시작하는 길을 선택했다. 혹 말목여울이 뜻밖으로 깊어 못 건너게 되면 긴 길을 되짚어 점재다리를 되건너와야 한다는 데에도 생각이 미치자 선택은 확고해졌다.
제장 이후의 길은 또한 하방소 아래 여울이 얼마나 깊을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만약 하방소를 건널 수 있다면 바세, 소사를 지나 소사교를 건너 연포 베르메 마을부터 가정나루터까지 긴 강변 자갈밭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제장 마을 정희농박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매년 장마 지날 때마다 강바닥 지형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요, 겨울에 물 줄면 거기 하방소 아래 얕은 데로 곡물 실은 경운기가 건너다니고 그랬어요.”

▲ 진탄나루. 강 건너 문산으로 가는 길은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조망 좋은 길이다.
만약 물이 덜 줄어 하방소를 건너지 못한다면 곧바로 칠족령을 넘기로 했다. 칠족령 넘어 문희에서 하루 민박 후 다음날 섭새까지 이어갈 강변 길은 ‘동강 구경도 이제 신물 난다’ 싶을 만큼 질리도록 긴 걸음이 될 것이다.

그간 막혔던 고성터널이 다시 열려 뜻밖으로 쉽게 동강변 운치리로 넘어갔다. 고성분교장 앞을 지나 짧은 언덕길을 치달아 오르면 주민들이 나리재라 부르는 작은 고갯마루 위다. 여기서 왼쪽(서쪽) ‘낙석주의’ 팻말 옆 희미한 길을 더듬어 능선을 따랐다. 아무 표식도 안내판도 없지만 나리재에서 300m 10분만 걸어 들어가면 동강변에서 최고로 꼽아줄 만한 절경 조망처가 나선다. 굵은 주름이 지듯 하며 사방으로 펼쳐진 피라밋 형의 백운산 능선 한 가닥이 우리가 선 벼랑 바로 아래로 내리닫았고, 호박처럼 뭉툭한 그 능선의 끝을 짙푸른 동강 물줄기가 둥글게 감싸안았다. 그냥 바라볼 뿐인데 초광각의 렌즈를 들이댄 듯한 느낌인 것은, 그만큼 이 풍광이 농축된 듯 고밀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벽을 거슬러 오르는 바람에 저 아래 말목여울 물소리가 섞인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나리소 아래 말목여울이 무릎이나 빠질까 싶게 얕아 뵌다. 아찔한 절벽 위 소나무 그늘에 앉거나 서서 그 둘도 없을 풍경을 바라보다가 서쪽 능선으로 난 희미한 발자국을 따랐다. 곧 여러 기의 무덤들이 모인 곳에서 길이 그만 끝을 흐리고 만다. 무덤과 무덤을 잇는 소로를 이리저리 더듬으며 나아가자 이윽고 널찍한 경운기 길로 내려선다.

▲ 나리재 출발 후 처음 만나는 동강 조망포인트. 백운산 능선이 동강 물에 뭉툭하게 다듬어진 기경이 내려다뵈는 절벽 위다. / 진탄~문산 사이 동강변의 넓고 깨끗한 자갈밭. 지난 장마 이후로 아무도 이곳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은 굵고 큰 소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열렸다. 숲길 풍치가 좋고 발걸음이 편해 동쪽의 강기슭으로 우정 좁은 길을 찾아 내려설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송림을 지난 넓은 경운기 길은 서쪽 아래로 슬며시 방향을 틀더니 소동 마을 중간으로 내려섰다. 숲에서 밝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내려서자 눈이 부시다.

취수장 아래 강변을 따르다가 제장교를 건넜다. 동강사랑(舍廊)이란 붉은 흙벽집이 서서 풍경을 돕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상징적 장소로 5,200평 땅을 사고 흙벽집을 세웠다. 대규모 개발을 막아 동강을 자연 그대로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세운 집이다. 이 집을 직접 지은 이로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인 홍순천씨 부부가 두 아이와 더불어 3년 전부터 여기서 산다.

하방소 못 건너 칠족령으로

둥근 반도 형상의 넓은 자갈밭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 바로 옆의 길을 따라 맞은편 얼기병 뼝대를 향해 공연히 소리도 질러보며 걸었다. 정희농박집 앞을 지난 지 얼마 후 콘크리트 길이 끝나기에 계곡 자갈밭으로 내려섰다. 강물 건너 커다란 동굴이 뚫린 절벽이 웅웅 말소리를 받아낸다. 그 바로 아래, 물줄기가 서서히 맴을 도는 커다란 소가 하방소다.


▲ 가을날 오후, 하방소 옆 강변 모래사장. 물이 줄면 강 건너로 경운기도 다닌다고 한다.
소 옆의 모래톱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간혹 목을 길게 빼서 소 아래의, 물이 다소간 얕음직한 곳을 가늠해본다. 얕게 재잘거리듯 하는 소리로 흐르는 여울이어야 만만한데 물줄기가 생각보다 두툼하니 깊다. 옆의 밭뙈기에 올라 내려다본 다음 그중 가장 얕아뵈던 곳을 한 사람이 반바지 차림으로 들어가 보지만 곧 허벅지가 빠져든다.

등 뒤 백운산 줄기쪽을 더듬었다. 정희농박 주인이 말하기를,“무슨 드라마인가 촬영하느라 지어둔 것”이라는 너와집에서 동쪽으로 약 50m 지점(킴스캐빈의 우주선 모양 건축물과 중간 지점 정도)에서 산비탈쪽을 잘 살피자 올커니, 좁으나 뚜렷한 산길이 나 있다. 길은 나중에 갈짓자로 꺾이며 손도 짚어야 할만큼 가팔라지더니 칠족령~제장 간 뚜렷한 등산로로 이어진다.

곧 칠족령에 다다랐다. ‘예전에 제장서 옻을 굽던 이진사네 개가 발에 옻을 묻혀서는 이 고개마루턱을 올라다니며 발자국을 남겼다고 하여 옻 칠(漆) 자,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라 했다’는, 어딘가 어설픈 전설이 얽힌 고개다. 하나의 뿌리에서 솟은 듯, 한 아름도 넘는 느티나무 네 그루가 모여 선 데다 나무밑둥 주변은 오가는 사람들이 가지런히 둥근 제단을 쌓아둔, 전형적인 성황고개 분위기다.

성황나무에서 강물쪽으로 30m 아래 산비탈엔 네모반듯하게 철난간을 두른 ‘칠족령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섬뜩한 깊이의 소로 고였다가 흰 여울로 흘러내리기도 하는 동강의 푸른 물줄기와 검회색의 절벽을 드러내며 발기한 바위능선들이 삼중 사중으로 교합한 기경이 한눈에 드는 자리다. 강물이 펑퍼짐하게 다듬은 제장, 바세, 연포의 농토는 이미 추수되어 흑갈색이거나 밝은 황금색인 옥수수밭, 콩밭, 깨밭들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강 양쪽 모두에 찻길 없는 적막강산

칠족령에서 30m를 채 오르지 않아 왼쪽으로 뚜렷한 샛길이 보이길래 들어섰더니 한정없이 서쪽으로만 내려간다. 아까 제장에서 얼기병 뼝대 위를 지나 소사로 갔다면 지나쳤을 가정나루터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차 싶어 발길을 돌렸고, 갈림길목으로 나와 50여m 더 나아가자 비로소 ‘문희마을→’안내판이 선 삼거리다. 많은 사람이 다녀 널찍해진 숲길을 걸어 원뿔 모양의 돌탑을 지나 문희로 내려갔다.


▲ 절벽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어라연과 래프팅 보트.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경치를 보며 한동안 쉴만한 곳이다.
몇 년 새 놀라울만큼 마을이 달라졌다. 알프스풍의 펜션이 여러 동 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마을 토박이 우문제씨 부부의 문희농박에 들었다. 동강물이 잿빛으로 가라앉아 이윽고 어둠 속에 잠길 때까지의 모습을 방 앞의 평상에 앉아 바라보았다.

이 근처엔 뇌룬, 누운, 길운, 두룬, 달운 등 정감록에 삼재불입지처로 거명된 8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6.25를 모르고 지난 마을이 있었다더라고 우문제씨는 전한다. 깊은 동강 물과 깎아지른 뼝대, 그리고 높은 산줄기로 사방이 막힌 깊은 골 안의 그 마을 사람들은 혹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싶게, 피서철이 지난 동강변 마을의 밤은 깊고 깊었다.

물안개가 강물을 뒤덮더니 어느새 훌쩍 걷히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라 강물 흐름을 따르다가 저 아래 눈부시게 흰 포말로 흐르는 황새여울에 이끌려 강가로 내려섰다. 옛 뗏목꾼들이 긴장해 지나던 여울 가운데 하나다.

▲ 제장 마을의 가을 콩밭 풍경. 동강에서 우리는 콩잎도 단풍처럼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았다. 강 저편에 얼기병 절벽이 솟았다.
진탄나루에 이르러서는 공연히 밭일 하는 강 건넛집 아저씨를 불러내 나룻배를 한 번 타보고선 발길을 이었다. 마을 찻길이 북쪽 저편 42번 국도로 빠져나가는 계곡 어귀에서 신발을 벗었다. 좁으나마 계류를 거저 건너기는 어려웠다.

이제 진정 무인지경 적막강산이다. 길이랄 것도 없어 그저 편한대로 거무스름한 강변 바위나 모래톱으로 걸었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나란히 하류쪽으로 머리를 누인 강돌들-. 거기서 우리는 동강이 종종 힘차고 도도한 탁류로 흘렀음을 본다.

강물과 수직으로 만나는 절벽에 앞사람이 걸음을 멈춘다. 뒷사람은 오른쪽 위의 우회로를 찾아낸다. 그래도 이 강변을 더듬어 오르내린 낭만파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강의 맑은 바람은 피부 속으로 그대로 스미는 것 같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계곡 입구 저 위에서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 농로가 나 있다. 계곡 안 깊은 곳의 달운 마을로 이어진 길이다. 농로를 따라 문산교쪽으로 걷다가 건천이긴 하나 큰 계곡이 동강과 합류하는 곳에서 몇 사람은 문산 마을로 곧장 강을 건너보기로 했다.

강바닥 돌에 물이끼가 두툼하고 물살이 제법 세어 보여 등산화를 그냥 신은 채로 물에 들었다. 물속을 짚은 폴이 센 물살에 푸르르 떨린다. 그러나 허벅지를 채 넘지 않았고, 생각보다 쉽게 물을 건넜다. 찻길로 가던 이들이 절벽 중간 조망처로 모습을 드러내고 무어라 외친다.

동강 최고의 절경 어라연 전망대

동강변에서 가장 큰 마을인 문산은 강을 가로질러 턱 걸쳐놓은 커다란 문산교로 옛적 낭만이 싹 죽어버렸다. 여기는 동강 같지가 않아. 그러면서 우리는 젖은 신발을 절벅거리며 서둘러 하류로 향한다. 문산분교장 앞을 지나 내미리 강변 모래사장으로 내려섰다. 전화로 미리 연락해두었던 내미리 주민 김예수씨가 저 아래 강물에 쪽배를 띄운 채로 손을 흔든다.


자칫 뒤집힐까 염려스러워, 사공 김예수씨 외엔 모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야 할 만큼 철선은 작디작은 조각배다. 김씨는 내미리에서 농사를 짓는 농사꾼으로 간혹 동강 트레커들이 부탁하면 이렇게 강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러나 공연히 나룻배를 탔다 싶을 만큼 얕아뵈는 여울이 나룻배로 건넌 작은 소 아래쪽에 흐르고 있다. 청년 둘이 내키는대로 강물을 오가며 족대질을 하는 모습이 뵌다.

동강 트레킹을 섭새까지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여기서 강을 건너는 게 좋다. 강 동쪽은 어라연 삼선암 옆에서 절벽으로 길이 끊어지는 한편 우회하려면 넘어야 할 산릉이 너무 크고 많아서 어렵다.

고무보트를 타고 래프팅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는 일제히 소리 지르며 손을 흔든다. 그들이 떠내려간 뒤 동강은 다시 깊은 적막감에 잠긴다. 투명 유리를 넓게 뒤덮은 듯 고요하고 맑은 강물 위를 물새 한 마리가 가로지른다. 동강물이 펼쳐낸 이 자갈밭을 걷기는 지난 여름의 장마 이후 아마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하류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누인 자갈밭의 어디든 흐트러진 데가 없다.

그런데 정말 길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강변에는 두더지가 멋대로 헤집고 다닌 흔적뿐 사람 발자국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운데, 오른쪽 바로 옆에 장벽처럼 뻗어나간 바위능선은 가파른 데다 비집고 들 틈이라곤 없어뵈는 짙은 숲으로 채워져 있다. 왼쪽 옆 동강물은 어느덧 오후 그늘이 지며 검푸르고 위협적인 청동빛의, 거품마저 이는 급류로 흐르고 있다.

수면 위에 얹힌 듯한 삿갓 모양의 바윗덩이가 왼쪽 저편으로 바라뵈는 곳에서 그예 길이 끊어진다. 오른쪽 급비탈을 살피다가 그나마 가장 얕아뵈는 잘루목이를 향해 숲을 뚫고 들었다.
그럼 그렇지. 이내 뚜렷한 족적을 만났다. 가늘고 얕은 지능선이라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목덜미 위에 올라섰다. ‘←잣봉 1km, 전망대 0.1km→, 어라연 0.1km↓’ 팻말을 보고 전망대로 갔다. 동강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어라연의 상ㆍ중ㆍ하선암 일대가 내려다뵈는 곳이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과일을 들며 마침 떠내려온 래프팅 보트들로 장식된 동강 절경을 즐겼다.

▲ 어느새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 오후 햇살과 더불어 동강의 가을을 걷는 동강 나그네들. / 강물과 만나 길을 막은 절벽을 가로지르려 애를 쓰고 있는 이응노씨. 결국 왼쪽 옆 바윗돌들이 튀어나온 데로 등산화를 벗고 건너야 했다(진탄~문산 구간).

지나자마자 다시 그리워지는 강

어라연 옆 넓은 강변길로 내려섰다. 찬란한 가을 햇살에 얼굴 피부가 금방 달아오른다. 차양 모자를 써보지만 강변 자갈밭과 모래사장에 반사된 햇빛은 차마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만큼 눈부시다.

저 아래, 아예 하얗게 물거품으로 뒤덮인 듯하고 세찬 물소리로 요란스러운 여울이 뵌다. 옛적 뗏목꾼들이 가장 공포스러워했다는 된꼬까리여울이다. 여울 옆을 따라 걷노라니 세찬 물소리로 가슴 바닥까지 시원스레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가을 햇살은 여울의 눈부시게 흰 포말 속으로 녹아들어 이윽고 저 아래 넓은 소의 수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해가 기울며 강물까지 시원한 그늘이 드리우는가 싶더니 물줄기가 서향하며 다시 정면으로 햇살이 비쳐든다. 동강은 넓고 기나긴 은빛 햇살의 조각들로 찬란하다. 축복을 받는 기분이다.

종착지인 섭새교가 바라뵐 즈음 오른쪽으로 임도의 끝이 뵌다. 섭새교 북단의 동강 관리사무소로 이어진 찻길이다. 이 찻길을 따르면 힘들게 고개를 넘어야 한다. 반면, 곧장 강변을 따라 내려가 바윗돌들이 수면으로 드러난 선을 타고 도강하면 한결 끝마무리가 쉽다. 그러나 만약 수심이 깊어 못 건너게 되면 긴 거리를 다시 걸어나와야 한다.

평소 산행길과는 다른 둥근 바윗돌 길을 종일 걸은 탓에 다리 힘이 풀린 몇 사람은 여기서 갈등하다가 도강 모험을 감행한다. 주민들이 래프팅 보트가 쉽게 지나도록 틔워둔 여울물길의 흐름이 무섭다. 그러나 그 위 잔잔하고 넓은 곳은 물살도 약하고 수심도 무릎 위를 채 넘지 않아 뜻밖으로 쉽게 건넜다. 강 건너의 제방 끝에 선 기와집을 향해 곧장 건너면 된다.

동강은 섭새교 지나 영월읍내에서 서강과 만날 때까지 10km 더 그 흐름이 이어진다. 그러나 섭새교 아래부터는, 비록 경치는 좋을 망정 동강이 아니다. 강변을 따라 넓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기 때문이다. 동강 나그네들에게 적요를 잃은 동강은 동강일 수 없다. 동강을 벗어나기도 전에 우리는 섭새교 난간에 기대어 우리가 지나온 기나긴 강변길을 그리움으로 바라보았다.

동강 트레킹 길잡이

제장교·소사교 놓이며 이젠 장마때라도 갈 수 있어

점재부터 섭새에 이르는, 점재~동강 전망대~나리소~소동~제장~하방소~소사~연포~가정나루~칠족령~문희(1박)~진탄~문산~내미리(나룻배)~어라연 전망대~만지동~섭새를 거치는 약 30km 길이의 동강 하류 트레킹을 완전히 이어가려면 연중 물이 가장 적은 때인 11월이어야 한다. 봄이어도 동강은 눈석임물이 흐르며 깊은 물일 때가 잦다.

▲ ① 문희농박 우문제·정선녀부부. ② 동강 둥글바위 절경이 멋지게 바라뵈는 방들을 갖춘 동강빌리지. ③ 성호식당 올갱이해장국.
11월이면 아마도 전구간을 이어갈 수 있을 터이나, 가을비라도 내려 물이 좀 불었을 것 같으면 바지 걷고 물을 건너는 모험은 포기해야 한다. 이 경우 첫날 트레킹 루트는 나리재~소동~제장~칠족령~문희, 아니면 나리재~소동~제장교~얼기병 윗길~소사~가정나루터~칠족령~문희가 될 것이다. 상구가든이나 문희, 문산리 등의 주민이 물이 바싹 말랐다고 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길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 첫날 구간은 가진 시간이 넉넉하면 후자, 빠듯할 것 같으면 전자로 선택하도록 한다. 해가 짧은 가을이라도 오후 한나절이면 문희까지 갈 수 있다.

가정나루터를 지나 찻길 끝까지 가면 털보네집이란 민박집에 이어 작은 농가가 한 채 있다. 이 마지막 농가 뒤의 억새밭 사이를 잘 살피면 칠족령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사온 지 2년 되었다는 마지막 농가 주인은 “아무 길도 없다”고 했으나, 답사 결과 뚜렷한 길을 찾아 칠족령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굳이 길을 찾을 것 없이 강변을 그대로 따라 능선까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서는 곧바로 쳐오르는 것도 괜찮다.

첫날 루트를 어떻게 잡든 첫날 숙박지는 문희 마을이 최선이다. 진탄은 강변 풍경이 뵈지 않으며, 문산은 너무 멀다. 문산 이후 섭새까지 이어가려면 내미 마을에서 어떻게든 강을 건너야 한다. 여기서 강을 건너지 못했다면 문산에서 트레킹을 끝내야 한다. 어라연 이후 동강 동쪽 기슭으로는 절벽 때문에 길이 이어지지 않는다.

첫날은 걷고, 둘쨋날 문산부터는 래프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이 많이 불어서 김예수씨의 작은 나룻배를 이용하거나 여울을 건너기가 불안할 때 이렇게 해본다. 둘째날 래프팅을 작정하면 제장, 연포 모두 이제는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되었으므로 한여름 장마때라도 별 문제 없다.

시작지점인 운치리로 가려면 초행인 경우는 일단 영월 지나 정선군 신동읍 소재지인 예미리 안으로 들어가서 주민들에게 잘 물어보는 것이 좋다. 국도로 달리노라면 운치리로 넘어가는‘유문동길’ 입구를 휙 지나치기 쉽다. 도로변에 ‘유문동길’ 안내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둘쨋날 문산리에서 매식을 하면 트레킹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다만 식당은 없으며 여러 명이 미리 주문할 작정이면 문산1리 이병대 이장(011-372-4994)에 문의한다.

내미리 나룻배 주인 김계수씨 집 전화 033-375-1420.

숙박(지역번호 033)

문희마을 문희농박  단층이되 동강의 일출을 볼 수 있는 10평형 방 10만 원. 비가림 시설을 한 목제 평상, 샤워실 등을 갖추었다. 직접 채취하고 가꾼 나물과 채소를 쓰는 담백한 백반에 반해 이 집을 일부러 찾는다는 단골도 여럿이다. 식사 1인당 5,000원. 병아리 때부터 직접 키운 닭백숙 40,000원. 033-333-9435 www.moonhee.co.kr  그외 문희에 두룬산방(334-0920), 동강산장(333-9509), 청호산장(334-3000), 백운산방(334-9891) 등의 업소가 있다.

트레킹 시작지점인 운치리 강변에 백운산과 동강물이 바라뵈는 상구가든ㆍ민박(378-3738)이 있다.

제장마을 제장민박(378-0775)  얼기병 절벽이 바라뵈는 전망좋은 집이거니와 주인 석동근씨는 이곳 토박이로 주변을 훤히 알아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다. 방과 거실이 따로인 15평형 15만원. 바로 아래 강변쪽으로는  전망 좋고 말끔한 정희농박(378-3838)이, 둔덕을 넘어가면 킴스캐빈이 있다. 숙박료는 방 크기에 따라 8만~15만원.

동강빌리지  트레킹을 끝내고 나서는 필경 피곤하여 이 날 동강에서 하루 더 묵게 되기 십상이다. 이때 가장 추천할 업소는 마을관리휴양지인 둥글바위유원지 옆, 동강 조망이 기막힌 한편 큼직하고 말끔한 방들을 가진 동강빌리지(374-7151)다. 1층은 식당으로 민물고기매운탕을 비롯해 올갱이해장국, 곤드레나물밥 등을 맛깔스레 낸다. 래프팅업도 크게 한다. www.dongang.net
영월의 택시 378-9800, 375-6200, 372-7741, 374-7993. 섭새에서 택시를 불러 넘어갈 경우 40,000~50,000원.

별미

영월 성호식당 올갱이해장국  영월역전에 있는, 영월군민 거의 모두가 아는 30년 전통의 올갱이해장국집이다. 주인은 영월토박이 유영애씨(63). 음식재료로 쓰는 올갱이는 이 업소 뒷집에 사는 아저씨가 댄다. 그는 강바닥의 올갱이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기계를 쓰지 않고 물속을 들여다보며 손으로 일일이 줍는다고 한다. 해장국 올갱이 굵기가 일정한 이유다. 또한 육수도 쇠고기를 쓰지 않고 철저히 올갱이만으로 낸다. 아욱, 근대, 부추를 넣어 푹 끓인 이 집 올갱이해장국 맛에 반한 영월읍내 사람들은 종종 냄비를 가져와 받아가기도 한다. 주말에는 종일 빈자리 찾기 어렵고, 음식 재료가 떨어지면 저녁 7시경에도 문을 닫곤 한다. 어리굴젓, 고들빼기, 더덕장아찌, 고추절임 등 반찬도 맛깔스럽다. 팔도강산 여러 군데 올갱이해장국 맛을 봤지만 이 집만한 데 없다고들 말한다. 전화 374-3215.


/ 글 안중국 차장 tksdkr@chosun.com 
  사진 김영훈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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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2.16 23:48

    첫댓글 여행하고 싶다 ~

  • 09.02.17 00:23

    여행..매일마다 살사..하루쯤은 떠나고싶다..

  • 작성자 09.02.17 00:29

    그래 가끔은 떠나야 돌아오는 즐거움이 있는거지 보고싶다 라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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