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그친 산사. 앳된 사미니는 맑은 눈으로 산마루 구름을 바라본다.
바람이 훌쩍 구름을 걷어가버리고 나서야 자박걸음으로 도량을 향한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동호거산(운문산) 운문사. 270여명이 불법을 닦는
승가대학이자 국내 최대의 비구니 도량이다.
이승(여승) 도량답게 길목에서부터 흐트러짐 하나 없는 단아함이 엿보인다.
운문사 들머리 안개낀 솔숲에는 수백년 노송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뻗어 있다.
운문사는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고찰.
범종루 문짝 너머로 슬며시 들여다본 승가. 비질 뒤 싸릿결이 남아있는
마당조차에서조차 대가람의 엄숙함이 배어나온다.
557년 신라 진흥왕때 세워진 운문사.
1,200년 전 원광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세속오계를 전수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도 왕명에 따라 운문사 주지로 기거했다.
58년 불교 정화운동 후 비구니 도량이 된 다음부터는 이승의 선맥을 세운 만성,
오백나한전 뒤의 약야계는 이끼하나 없이 맑다.
건너편에는 심우정이 있지만 속인들은 출입할수 없다.
청도 운문사 가는길
속가에서 승가로 이어지는 호숫길. 어느새 번뇌를 뒤에 두고 산문에
이르게 된다.
호숫길과 솔숲, 가람의 옛향기가 남아있는 운문사. 속계에서 선계로
이어지는 들목이다.
운치가그만 운문호
운문사와 함께 운문호도 빼놓을 수 없다. 4년전 운문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운문호에는 왕버들이 강자락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고 텃새가 된 청둥오리만
한적한 호수를 넘나든다. 첩첩산을 끼고 있는 호수는 담담한 수채화 같다.
아침이면 안개가 중턱까지 올라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호거산 운문사
운문사의 경관도 빼어나다.
동쪽으로는 운문산과 가지산(가지산 상세정보)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서쪽으로는 비슬산, 남쪽으로는 화악산, 북쪽으로는 삼성산이 싸고 있다.
정감록에서 꼽는 십승지. 임란때는 1만여명이, 6·25때는 40여만명이 운문골에
머물며 전란을 피했다고 한다.
운문사 입구 북대암에 오르면 절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500년된 굽은소나무아래
만세루 앞 「처진 소나무」는 세속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듯 가지를
모두 내리고 있다.
500년의 나이에도 이파리 하나 상한 곳이 없을 정도로 푸르다.
매년 4월 말 막걸리를 10여말 이상 부어준 덕분이라고 한다.
크나큰 법고
오후 6시15분. 운문산에 해가 걸릴 때쯤 범종루에서 치는 법고 소리가
내를 울린다.
가죽짐승을 깨우는 울림. 이어 비늘짐승을 위한 목어, 날짐승을 달래는 운판,
지옥중생을 깨치는 범종 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퍼져나간다.
33번의 종소리는 속세에 마음을 매어놓은 범인들의 마음 속까지 스며든다.
그래서일까, 그 많은 절경 뒤에 두고 옛사람들은 운문효종을 청도팔경의
1경으로 꼽았다.
만세루천장의 용
범종과 목어가 한자리에....
법륜
대웅보전앞 수련
노오란 수련
삼대가 한자리에..
능소화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서암스님의 법어
극락교 아래 계곡 아름다움
가는길
대구 경주간 고속도로에서 건천IC를 통해 들어가거나
경산IC로 진입 하는 것이 빠르다.
건천IC를 통해 20번 국도를 타면 운문호. 운문댐을 지나
왼쪽 985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운문사에 닿는다.
[양동 마을]
여강이씨와 월성손씨에 의해 형성된 양반마을로 마을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지정되어 있다.
전국에 6개소의 전통민속마을이 있으나, 마을의 규모,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에서 어느 곳보다 훌륭하고 볼거리가 많아 1933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이 곳을 방문했다
양동마을의고택
마을의 뒷 배경이자 주산(主山) 인 설창산(雪蒼山) 의 문장봉
(文章峰)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많다.
勿자의 아랫부분에 획 하나를 더하면 血자가 된다하여 일제가
계획한 마을안으로의 철도통과를 우회시켰고, 남향의 양동초
등학교 건물을 동향으로 돌려 앉쳤다고 한다
내곡(內谷), 물봉골(勿峰谷), 거림(居林), 하촌(下村)의
4골짜기와 물봉 동산과 수졸당 뒷 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구덕(渴求德)으로 마을이 구성되어있다.
이런 골짜기와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포함하여
500여 년의 전통의 향기를 품은 총160여 호의 고가옥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는 큰 마을이다.
양동마을의 무첨당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연환경과 집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정감
어린 모습으로 다가오고, 숲속의산새소리에 젖어드는 안온한
분위기가 양동마을의 큰 특징이다.
무첨당의 정원수들
마을의 진입로쪽은 경사가 급한 산에 시선이 차단되고, 골짜기
밖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마을 입구에서는
그 규모를 짐작하기가 어렵고, 고가들도 접근해야만 볼 수 있다.
황토길을 걸어서 답사하다 보면 마을의 규모와 정취에 감탄하게 된다.
대원군의 친필 죽필휘호
조선중기 성리학자 晦齊 이언적이 26세 때 지은 「勸學者」에는 성인을 배우고자 하는
학문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회제의 어머니 손씨부인이 살던집으로 무첨당에는 대원군이 대나무를 잘게쪼개어쓴
죽필 휘호가 대청(제청이라고도함)에 걸려있고 이 건물은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내연산 트래킹
내연산 계곡
내연산 보경사경내의 수려한 소나무
보경사경내
2003년 7월 25일부터 사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