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인원 3명 (그냥, 알자지라, 멍게)
일시 : 2005년 10월 22일(토)
일정
22일
02:30 강변역 출발
05:40 설악동 주차장 도착
05:50 산행 출발
06:30 울산바위 쪽으로 잘못 갔다가 원점에서 다시 출발
07:44 귀면암
08:35 양폭산장
아침
10:05 무너미고개
10:30 신선봉
11:27 천화대
12:25 1275봉
13:50 나한봉
14:30 마등령
점심
17:30 비선대
18:00 소공원 주차장
새벽 1시 50분 합정역. 바람이 제법 차다. 겨울용 자켓을 입고 나오기를 잘한 것 같다. (그냥 잘한 정도가 아니었다. 나중에 산에서는 겨울용 자켓이 아니었다면 얼어 죽을 뻔 했다.)
수면 부족으로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 전날 상가에서 밤을 꼬박 샜다. 아침에 집에 와서는 옷만 갈아입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 한 잠 자두려 했던 것도 짐 꾸리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겨우 한 시간 정도 눈 붙이는 것에 불과했다.
알형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홍대앞이란다. 5분도 안걸려 낯익은 알형차가 도착한다. 2시25분 강변역 도착. 그냥형님은 아직 안오셨나보다 했는데 금방 전화가 온다. 주유소쪽에 와 계신단다. 약속과 만남에 한 치의 오차가 없다. 오늘 산행의 순조로움을 예고하는 것 같다.
양평을 지났을 때쯤 알형이 맥주 한 잔 마시면서 가자 한다. 휴게소에 들러 맥주 세 캔과 소주 한 병을 산다. 알형은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신다. 나는 맥주만 한 캔 마신다. 운전하시는 그냥형님께 죄송스럽다.
미시령 정상부근 길 가에는 눈이 쌓여 있다. 잔설이 아니다. 꽤 많이 쌓여 있던 눈을 치운 흔적이다. 설악산에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정도로 많이 왔을 줄은 몰랐다. 슬슬 긴장이 된다. 그냥형님의 좋은 차를 탄 덕분에 고갯길을 내려가는 위험에 대해서는 다행히(?) 걱정이 덜하다. '알형차 타고 왔으면 위험할 뻔 했다'고 알형에게 말하자 '내 차로 왔으면 못 올라왔지'라고 순순히 인정한다. 문제는 산행이다. 미시령이 이 정도면 공룡에는 더 많이 쌓였을 텐데 과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어두운 설악동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게 5시 40분 경. 단풍 산행객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로 주차장이 다소 복잡하다. 주차요원이 설악그린파크호텔 앞 주차장으로 인도한다. 소공원앞 보행자 매표소 말고 이 쪽 편에 차량용 매표소가 또 하나 있다는 걸 새로 알았다.
무릎을 걱정해서 스틱을 두 개 챙겨오긴 했지만 하나만 가져가기로 한다. 바위와 밧줄 잡이가 많은 산행에서 거추장스러울까봐서다. 하지만 이 판단은 절반만 옳았다. 나중에 눈이 많이 쌓인 능선에서는 두 개 다 가져왔으면 좋았을 걸 하고 몇 차례 후회를 하게 된다.
5시 50분 드디어 출발. 한 무리의 단체 등산객이 우리 일행 앞에서 가고 있다. 연령대가 젊고 걸음도 빠르다. 몇몇 사람은 랜턴을 켜들고 간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가게 된다. 오랜만에 오는 비선대길. 넓은 계곡에 흐르는 물의 양이 많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내 기억에 계곡은 등산로의 왼쪽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른쪽에 있다. 아 참 그렇지. 재작년인가 큰 홍수로 설악산 계곡의 물길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같다. 알형에게 말한다. '물길이 바뀌었네요' 알형이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한다. '그게 무슨 소리지' ......
무안해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계속 걷기만 한다. 절 집이 나온다. 어둠 속에 부도와 탑 같은 게 보인다. 신흥사다. 근데 왜 신흥사가 나올까. 비선대 가는 길엔 신흥사도 없고 부도같은 것도 없는데...
길을 잘 못 든 걸 깨달은 것은 첫 번째 매점이 나온 때였다. 알형이 흔들바위 이정표를 발견하고 나를 세운다. 그냥형은 한참 앞서 간 상태. 부랴부랴 전화해서 그냥형을 부른다. 다시 흔들바위 비선대 갈림길로 되돌아 온 게 6시 30분. 30분을 날렸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계곡엔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그리고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산정이 눈에 들어 온다.
설악동 계곡
까먹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비선대 산장에서 잠시 쉬면서 신발끈을 옥죄고 양폭산장으로 향하는 철계단을 오른다.
천불동계곡. 계곡 입구 철계단이 끝나자마자 설악의 비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전날 온 비 때문인지 계곡엔 물이 넘친다. 계곡 사이로 언뜻언뜻 공룡의 등줄기가 보인다. 하얀 눈이 덮인 공룡의 등줄기. 밑에서 보는 능선이 저 정도라면 실제로 눈은 얼마나 쌓여 있을까. 등산로가 보이기는 할까. 알형이 묻는다. '아이젠은 가져 왔겠지.' 뜨끔한다. '안가져왔는데요.' 그냥형은 가져오셨단다. 알형이 다시 말한다. 분명히 준비하라고 했는데 안 가져온 사람은 알아서 하란다. 내 불찰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서둘러 짐을 꾸리느라 미처 챙기지를 못했다. 우이씨. 그래도 그렇지. 알아서 하라니. 알아서 하산하란 말인가, 아니면 알아서 미끄러져 구르란 말인가.
한 무리의 단체 산행객이 귀면암을 지난 너덜지대에 서있다. 후미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인솔자인듯한 사람이 묻는다. '아무개 안 와요?' 막 도착한 사람이 대답한다. '전화해봤더니 울산바위에 올라갔대요' 킥킥킥. 우리보다 더한 사람들이 또 있었다.
양폭산장.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사람이 제법 많이 모여 있다. 하지만 2주 전 알형이 왔을 때에 비하면 그 수가 아주 적은 편이란다. 버너와 코펠을 꺼내 물을 끓인다. 바람이 불어 물 끓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다 끓지도 않은 물을 '왕뚜껑'에 붓는다. 몹시 춥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점점 더 추워진다. 서둘러 컵라면 국물을 곁들여 김밥을 먹는다. 물을 보충해야겠길래 알형에게 샘이 어딨냐고 물었다. 알형이 산장지기에게 물어보고 온다. 표정이 야릇하다. 물어본 게 잘못이란다. 산장지기 왈 '그냥 계곡물 떠 드세요' 하였단다.
양폭산장
양폭산장을 출발, 무너미 고개로 향한다. 등산로에 눈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그만큼 길도 미끄럽다. 나무 다리 위에는 미끄럼방지용 고무를 깔아 놓았지만 그 위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더 미끄럽다. 곳곳에서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무너미고개까지 본격적인 깔딱고개. 눈 속 된비알에서 알형이 속력산행을 시작한다. 마치 겨울 보투 나가는 빨치산같다. 속도가 처지는 다른 등산객들을 마구 추월해 나간다. 한동안 나도 따라가다가 이내 포기한다. 자꾸 추월하면 추월당하는 사람들 기분 나쁘잖아 하고 위안하면서. 숨이 턱에 차고 다리근육이 한계에 달할 즈음 고개를 들어 보자 알형이 보인다. 고개 마루에 도착한 것이다.
무너미고개. 대청봉쪽과 공룡능선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공룡쪽 등산로를 보니 눈이 15센티 이상 쌓인 등산로엔 불과 십수명 정도의 발자국만 나 있다. 대청봉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모두 우리가 올라온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간다. 우리와 같은 방향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모두 대청봉쪽으로 향할 뿐 공룡능선으로 방향을 잡는 이는 하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대청이냐 공룡이냐.
양폭에서 그랬다.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그 때 결정하자고. 날이 좋으니까 대청에서 전망을 즐기면서 편한 산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더구나 내겐 아이젠도 없지 않은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대청으로 향하고 싶은 유혹이 조금씩 일기 시작한다.
그 때 양 손에 스틱을 짚은 한 사람이 대청 쪽에서 내려오다가 우리 앞에 섰다.(이 사람은 공룡능선 내내 우리와 동행하였는데, 여러가지 이해안가는 행동을 많이 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공룡능선 가는 쪽이 어디냐고 묻는다. 방향을 가르쳐 줬더니 우리보고 어디로 갈거냐고 또 묻는다. 알형이 망설임없이 '공룡으로 간다'고 대답한다. 갑자기 행선지가 명료해졌다. 그래 가는 거다. 공룡으로.
무너미고개 설경
짬짬이 산행기를 쓸 수 밖에 없어서 전체를 다 써 올리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1부를 먼저 올립니다. 2부도 최대한 빨리 써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형, 내가 함께 갔으면 큰 일 날 뻔 했죠? 설경 사진 보자니 알싸한 찬바람이 코끝으로 느껴지네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ㅠ.ㅠ
멍게 님, 2부 빨리 올리세요. 맨 뒤 멘트가 처음과 바뀌었네.^^ 재밌게 쓸 때까지, 10부까지 줄창 쓰라고 할 참이었는데....
내가 동참한 산행인데도 이렇게 산행기 읽는 재미가 쏠쏠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야 남이 쓴 글 읽는 게 이렇게 재미나는구나. 나도 앞으로 이런 재미만 누려야지.
누가 우리멍게를 구박했쩌!! ㅋㅋ 근데 희안한것은 내나이 스무살에 공룡을 탓다는거야. 양폭산장 사진과 12시간죽을고비를넘기며 운동화신고 헤멨던곳이 어렴풋하여(파리는 내후배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공룡이라네.양쪽으로 낭떨어지가 있고, 멋있지만 무서웠던.. 그곳이 차마...
언눔이 벌통을 건드려 울면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다 길잃고....탈진하여 발헛디뎌 나뭇가지가 살려주고... 밤열두시넘어서 도착한그곳이 양폭산장이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간 모양이야. 나 많이 양반됐지?ㅋㅋ 재밌다 멍게 계속 글 올리셈
이틀밤을 샌후 공룡능선이라...멍게 꽤 고생 많이 했겠는데...후유증은 없나 몰라. 산행기 잘 썼다....역시 고생두배지만 기쁨 세배였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