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의 달、열 여덟개 째
-니카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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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
"아..응.."
"요즘 얼굴 빛이..흙빛이구나.."
잠시 먼 곳을 응시하며 멍해있는 니카를 그녀가 부른다.
그러자 여전히 멍하게 대답하는 니카.
얼굴 빛이 예전에 비하여 많이 어둡다.
그녀가 왠지 그런 니카가 안쓰러워 얼굴을 어루만지려는 순간..
'탁'
그 손을 힘겹게 뿌리치는 니카.
"건들지마.."
그렇게 말해놓고 그녀보다 더 놀라는 니카.
"..아..미안..여기서 쉬고 있어. 머리 좀 식히고 올테니까.."
니카는 멀지 않은 곳의 나무에 기대어 눈을 지긋이 감는다.
니카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슬며시 눈을 뜨며 한숨을 쉰다.
'왜..이럴까..리 때문인가? 뭐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거지?'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 앞에 서 있는 리.
소리도 없이 나타난 리 때문에 몹시 놀라는 니카.
"안녕, 자손."
"내 이름은 니카야. 자손이 아냐."
니카는 상당히 반항적인 어조로 말한다. 리는 니카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한걸음 한걸음..리가 다가올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에 니카는 인상을 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넌 그냥 죽어, 그런데..그 반항적인 말투는 뭐야? 기분나쁘게."
"나 따위 목숨 아깝지도 않아."
"…뭐야, 스스로가 멍청함을 인정하기라도 하는 건가?"
'솨----아'
지나가던 바람이 숲의 잎사귀들과 악수하며 지나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왜 왔어"
"그냥, 할말이 있어서. 너 말이야. 왜 페리아와 함께 있는거지?"
"……."
니카의 미간이 살짝 이그러지고, 하늘 빛 머리칼은 바람 방향과 함께 수없이 춤을 춘다.
리는 상당히 얄궂은 목소리와 미소로 말을 이어나간다.
"왜 대답이 없을까? 같이 있는 이유도 모른 채, 그저 그냥? 우습군."
"아...아니..처음엔..함께 잊고 싶...!!!"
니카는 알면 안되는 중요한 것이라도 눈치챈 듯, 작은 미동으로 온 몸을 떨면서
자신이 한 말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한다.
리가 니카를 바라보는 눈동자는..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꿰뚫는 듯한 눈빛이기에 니카는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래, 처.음.엔? 좀 웃기잖아, 넌 상당히 쓸모 없는 놈이잖아. 같이 있어야 될 의무같은 건 없어. 페리아는 참 쓸모있지?
왜 너따위가 감싸보려는 거지? 그 애가 현세에 슬프게 가족을 잃어서?
괴롭힘을 당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이 가여웠나?
불쌍하기라도 해보였나? 동정하고 싶었나?"
"닥쳐!!"
니카의 슬픈 외침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나가는 리.
하기사..사람도 먹는 잔인한 여자가 이런 일에 굴복할 리가 없다.
"부질없는 일이군..그 아인 적어도 현명하고 지혜롭고 강인하고 또한 아름다워서 사랑받았지.
자기는 사랑받고 큰 주제에 자신은 혼자라고 화를 내고 절망했겠지?
넌 멍청하고 나약하고 추악해서 버려진거 아냐? 그런 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페리아도
그 어리광을 받아주고 감싸는 너도 한심해.
내게로 와라. 난 너의 아픔을 받아줄수도 있는걸?"
"시..싫어!"
리의 한마디 한마디, 목소리가 들려올 때 마다 니카의 마음에 못이 박히듯,
자신의 절망 속에 빠져가는 니카. 그런 니카에게 억지로 입을 맞추는 리.
니카는 깜짝 놀라면서 리를 확 밀쳐버린다.
"어, 이런..연약한 여자를 밀치다니..그럼 못 쓰지."
니카는 여유스럽게 말하는 리를 죽일 듯 노려본다.
"...후훗..마음에 드는 눈빛이구나..너도..페리아도..40억년 전에 비하면..너무 틀린것 같아.."
"?!"
리의 작은 혼잣말에 조금 놀라는 니카.
'나도? 40억년 전? 무슨말이야?'
"하아..뭐 됬다. 너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아아...페리아와...있는 이유...알겠군...그래..사랑이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거지?"
순간 움찔하는 니카, 사납게 웃는 리.
"어머, 그래? 아하하하!! 미치겠군! 쓸모없는 녀석의 사랑이라니!! 아하하하하!!"
'짜-악'
시끄러운 리의 웃음 소리를 깬 것은 그녀가 어느 새 다가와 리의 뺨을 치는 소리.
"이 세상에..쓸모없는 것은..단 한가지도 없다. 리."
"....어..그래? 단 한가지도 없어?"
리는 잠시 속으로 슬픈 기억을 떠올린다. 내색하지 않는채로,
'나도..나도 쓸모있어? 그런데..넌 왜 그랬을까..'
"네가 있었으니까 니카가 태어난 거겠지."
"....흥, 니카. 내 말 잘 명심해 둬라. 그리고..넌 내가 가진다."
"니카는 물건이 아냐!"
리는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니카는 풀썩 주저 앉고 그녀는 니카에게 달려간다.
"너..괜찮.."
"리의 말..하나도 틀린거 없었어..그래..네가 뭐라고 나 따위 슬픔을 알아주겠어..
난 받아본 적 없는..사랑..넌 받아봤을 텐데..쓸모 없어서 부모한테 버림이나 받고..!
넌 똑똑하고 강인하지만 난 그렇지 못해!!"
니카가 분에 겨워서 씩식거리는데 그녀가 슬며시 니카의 옆에 앉아서는
니카와 함께 바람을 느낀다.
"제발 가버려..너랑 같이 있다보면..빛나던 작은 하나마저 초라해질 것 같아."
"..그렇게 너는...입을 막고..귀를 막고..눈을 감고만 있을거야?
너..사카..할아버지를 잊버렸어? 벌써? 그 때 받은 사랑들은 어디로 간거지? 넌 어떻게 여기 있지? 사카가 들으면..분명 슬퍼할거야.
그리고..너도 그간 날 봐와서 알겠지만..
결코. 난 똑똑하지 않아. 그랬다면 지구를 파괴하고 다시 만들지도 않았어.
또한..강인하지도 않아. 그랬더라면..너에게 어리광 부리지 않았겠지.
그리고..넌 절대로 쓸모없지 않아. 만약..네가 없었다면..나도 없을 테니.."
그녀의 눈에 맺힌 작은 물방울에 흩뿌려지는 초록잎이 비춰진다.
니카가 일어설 수 있게 힘을 주는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것보다,
스스로의 다짐이나 자신감이 아닐까..?
'네가 날 잡아 줬던 그 때 처럼..나도 널 잡아줄거야.
나만이 가족. 나만의 보물. 하나뿐인 너를 소중히 사랑할 거야.
내가 붙잡아줄게..
나약한 나라도 너에게 반드시 빛이 되고 말겠어.
그건..너..니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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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요.
항상 웃으며 지내실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