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할 때보다 더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따뜻한사진가협동조합(이하 따사협) 조병희(63) 이사장. 취미로 시작한 사진 활동이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재능기부로 이어져 세상을 온기로 채우고 있다. 사진으로 약자를 보듬고 소통하면서 작지만 큰 울림을 전하는 액티브 시니어다. 그를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만났다.
Q. 퇴직 후 어떻게 지냈나?
A. 2015년 2월, 34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평범한 주부로 돌아왔지만, 집안에만 있을 수 없었다. 전처럼 바쁘게 지냈다. 동그라미재단의 ‘세발자전거’ 프로젝트에서 고등학생의 시니어 멘토로 일하고, 중학생 독서지도도 했다. 집 리모델링을 계기로 정리수납 1급 자격증을 취득해 중1 학생들의 자유학기 수업도 맡았다. 하지만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인생 2막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2016년 서울시50+서부캠퍼스 인생학교를 알게 됐고, 졸업 후 동기들과 커뮤니티 PUN(Photograph Uri Nanuza)을 조직해 취미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Q. 사진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대학생 때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빠진 적이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내 마음의 표정을 빛으로 맘껏 표현할 수 있는 수동 카메라는 묘한 끌림이 있다. DSLR 카메라 조작은 복잡하고 어렵다. 화가가 붓을 날렵하게 자유자재로 놀리듯이 카메라의 작동원리를 잘 이해하고 수족같이 움직여야 원하는 이미지를 사각형 프레임 안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기본기가 부족함을 감출 수 없었다.
2018년, 전문 사진작가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50+중부캠퍼스 ‘사진활동가: 렌즈로 담는 따뜻한 세상’ 강좌를 수강했다. 강사인 주기중 작가는 빛과 색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뿐 아니라 평범한 사물, 사람, 풍경도 가치관과 미적 감각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창의력을 강조했다. 또한 사진으로 세상과 교감하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이웃도 돕는 활동을 강조했다. 수강생들의 마음은 움직였고 수료 후 ‘따사모(따뜻한 사진활동가 모임)’를 결성했다.
Q. 따사모의 주된 활동은?
A. 따사모의 첫 번째 활동은 라파엘 클리닉의 이주노동자 진료 현장 촬영이었다. 많은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일요일의 달콤한 휴식을 뒤로하고 매주 의료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우리말에 서투른 환자를 위해 통역을 하고 따뜻한 커피와 빵을 나눠드리는 분도 있었다. 평일 병원을 이용할 수 없고 진료비가 부담스러운 이주노동자들에겐 천사와 같은 분들이었다. 이런 봉사자의 모습을 렌즈로 담으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더 굳어졌다. 2019년에는 라파엘 클리닉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2019년에는 미얀마 이주노동자의 한국문화 체험 현장을 사진으로 담았다. 잠시 일터를 떠나 경복궁에서 역사 탐방을 하는 미얀마 청년들의 고운 한복 자태를 잊을 수 없다. 힘든 타국 생활 속에서 모처럼 환한 웃음 지으며 도포 자락을 휘날리던 청년들의 모습을. 규모는 작지만, 스냅사진과 독사진을 출력하여 사진전을 열고 파티를 열어줬다. 사진액자를 품에 안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가슴도 따뜻해짐을 느꼈다. 국내 활동이지만 사진으로 해외까지 선한 영향을 준 뜻깊은 행사였다.
50+중부캠퍼스의 지원을 받아 2020년에는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를 했다. 특수학교인 서울다원학교와 서울정진학교에서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예쁜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회원들은 손짓 몸짓으로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도했다. 2021년에는 직접 서울다원학교의 졸업앨범을 만들어 전달했다. 그 외에 비영리단체 행사, 밀알앙상블 발달 장애 연주 단원의 프로필과 연주회, 무명 연극배우의 리허설 현장도 사진으로 담았다.
품세리 마을의 연로한 어르신들 ‘장수사진’을 찍어드렸는데, 올해 소천하신 어르신이 장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유가족에게는 작은 위로와 도움이 됐을 것이다.
Q. 따사모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순수한 봉사활동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하기 힘들었다. 촬영 현장에 가려면 차비가 들고 촬영에 몰두하면 식사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촬영한 사진 후보정을 하면서 모니터를 장시간 들여다보니 눈도 아팠다. 문득 언제까지 자기 주머니를 털어 봉사활동을 이어가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럴 때마다 커뮤니티 지원금이 작지만 큰 도움이 됐고, 사회공헌 활동에 큰 의미를 둔 회원들의 격려도 위안이 됐다. 사진 실력 차가 매우 컸고 회원간 소소한 마찰도 있어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취미와 개인 작품 활동에 무게를 둔 회원의 탈퇴는 막을 수 없었다.
Q. 커뮤니티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이유는?
커뮤니티 활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수익 창출이 뒷받침돼야 한다. 협동조합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지만 회원간 결속과 실력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중부캠퍼스 공유사무실에 입주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창업 정보도 공유하면서 ‘2021년 청년 등 협동조합 창업지원사업’에 도전했고 11월 따사협을 설립했다. 나를 제외한 조합원 모두가 사진 실력이 출중한 준 프로급 남성 작가들인데 이사장은 내가 맡았다. 총무 역할도 힘든데 이사장은 결코 맡을 수 없다고 여러 번 고사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이사장을 맡기로 했다. 조합원은 8명이지만 따사모 회원이었던 두 분도 측면에서 협력하고 있다. 따사협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진 서비스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다.
Q. ‘장미하다’ 특별 사진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A. 라파엘 클리닉에서 5년째 무료 봉사한 인연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라파엘나눔 재단에 근무하던 직원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따사협을 사진전 나눔 작가로 초대했다. ‘장미하다’는 생명나눔의 ‘장대하고도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고귀한 사랑을 나눠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기억하기 위한 로즈디데이(Rose D-day)를 기념하는 특별 사진전이다.
따사협은 기증인 유가족 14가족 중 11가족, 이식인 2가족 중 1가족 총 12가족을 촬영했다. 담담하면서도 따스한 진심을 담기 위해 촬영 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유가족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장미하다’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5월 16일까지 ‘갤러리 라메르’에서 전시되는 사진을 통해 장기기증의 숭고한 가치가 전해지고 장기기증 운동이 널리 알려지길 기원한다.
Q. 사진으로 제2의 인생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나?
A. 퇴직할 때만 해도 사진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DSLR 강좌에서 사진을 사랑하는 따뜻한 동료를 만났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커뮤니티 활동을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직장이란 속박에서 벗어났고 아이들도 독립했으니 여유로운 생활을 즐겨야 하는데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Q. 앞으로 계획과 꿈이 있다면?
A. 개인적으로는 사진 역량을 더 키우고 싶다. 조합원 대부분이 오랜 기간 사진 활동을 한 준프로 수준의 사진작가인데, 나는 퇴직 후 사진에 입문한 초보 사진작가이기 때문이다. 따사협 이사장으로서의 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연계하여 취약계층을 돕는 사진 봉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Q. 봉사활동에 관심 있는 시니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 그동안 가족과 직장에 충실했다면 이젠 시야를 넓혀 소외되는 사람 없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면 좋겠다. 혼자 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이 맞는 동료와 연대하면 가능하다. 그동안 사회에서 받았던 사랑과 혜택을 되돌려주면 어떨까.
추미양 기자
2022.05.13.
출처 : 시니어신문(http://www.seniorsinm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