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2연속 2관왕 한국신(新) 50차례 갈아치워 대한·도버해협 횡단 위업 내년 대한해협에 재도전 마지막 꿈 못이룬채 떠나 충격받은 부인 음독… 무사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세상을 떠났다.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맞는 내년 8월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 50년 수영 인생을 멋지게 마감하겠다는 야심 찬 도전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조씨는 4일 오전 11시30분쯤 전남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자택 현관 앞에 쓰러진 채 부인 이성란(44)씨에게 발견됐다. 심장마비 증세를 보인 조씨는 119구조대에 의해 해남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낮 12시45분쯤 숨졌다.
"바다와 함께하는 무아지경의 경지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면서 환갑을 앞둔 나이에 도전 정신을 불태웠고, 훈련비를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면서도 "이 조오련이가 못 해내겠소? 두고 보소" 하며 호탕하게 웃어넘기던 그였기에, 그의 황망한 죽음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조씨는 작년 여름 한 달간 독도 둘레를 33바퀴 도는 도전에 성공한 뒤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2001년 전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가 혼자 생활하던 그는 도전 이후의 허탈감에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술독에 빠져 지낼 때가 잦았다.
홀로 방에 늘어져 있는 조씨를 밥상 앞에 앉힌 것은 동네 이장 이영배씨였다. 그때 상을 차린 이장의 여동생이 지금 조씨의 부인 이씨다. 부부는 지난 4월 18일 마을회관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열고 인생 2막을 열었다.
"조오련이 아직 죽지 않았소. 새 장가도 갔으니 각시에게 뭔가 보여줘야제." 억센 팔로 부인을 끌어안으며 조오련은 대한해협 2차 횡단 계획을 뚝심 있게 추진했다. 지난 5월부터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의 한 펜션을 캠프 삼아 훈련을 계속하던 조씨는 최근 해남 자택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조씨는 "먼바다의 찬물 속에서 끝까지 버티려면 체지방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푸짐한 아랫배를 툭툭 두드리곤 했다. 그는 스태미나에 좋다며 장어구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장어뼈를 삶은 물을 통에 담아두고 보리차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밥상에는 늘 고기 반찬이 올라왔다. 지난 5월 초 제주도 전지훈련을 시작하면서 조씨는 "지금 몸무게가 80㎏ 정도인데 한 10㎏ 정도 불리겠다"면서 "몸에 두꺼운 '지방 갑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5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장성분소에서 이씨의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다. 정확한 사인(死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조씨의 무리한 식단 프로그램이 돌연한 죽음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이문형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심장내과)는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을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섭취할 경우 혈관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면서 "갑자기 늘어난 체중 때문에 심장에 과부하가 걸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인 이씨는 4일 오후 오빠의 차를 타고 빈소가 마련된 해남 국제장례식장으로 가던 중 구토하며 쓰러졌다. 차 안에서 비어 있는 수면제 통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남편의 사망에 충격을 받아 음독한 것으로 보인다. '새신랑이 힘은 좋습니까?'하고 농을 던지면 "이 사람 체력은 온 나라, 온 세상이 다 안다"며 활짝 웃던 이씨였다.
이씨는 해남종합병원에서 위세척을 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둘째 아들 성모(24)씨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앞에 "요즘 술도 끊고 몸도 좋아져 다들 좋아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지난 1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열린 겨울 바다 펭귄수영대회에 참가한 고(故) 조오련 씨가 태극기를 들고 서 있다. ‘아시아의 물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4일 전남 해남군 법곡리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연합뉴스
조씨는 복싱 챔피언 홍수환과 함께 1970년대의 국민적 영웅이었다. 1970년 방콕,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2관왕에 올랐다. 1978년 방콕에서 다시 열린 아시안게임에선 접영 200m에서 동메달을 걸었다.
한국신기록만 50번 갈아치웠던 조씨는 현역 무대를 떠나고 나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80년 8월 11일 부산 다대포에서 대마도 서쪽까지 55㎞ 바닷길을 13시간16분10초 만에 헤엄쳐 건넜고, 2년 뒤엔 도버 해협을 9시간35분 만에 건넜다.
그는 빈농 집안의 5남 5녀 중 막내였다. 남자 자식 다섯을 이었다고 다섯 오(五)에 이을 련(連)자가 이름이 됐다. 어려서부터 수영에 자신이 있던 그는 1968년 해남고를 자퇴하고 상경했다. 낮에는 종로의 간판집 점원으로 일했고 저녁에는 YMCA 수영장에서 물살을 갈랐다. 돈이 없어 회원증 유효기간을 위조해 다니다 적발돼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 조씨의 데뷔 무대는 1969년 6월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예선전이었다. 학교에 적(籍)이 없어 무소속으로 대학·일반부 자유형 400·1500m에 출전했다. 수영복이 없어 사각팬티 바람으로 나갔는데 우승을 차지했다. 양정고로 '스카우트'돼 서울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고향집으로 내려갔을 때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조씨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조씨는 대한해협을 처음 건넜던 1980년 가수 송대관씨의 소개로 사별한 첫 번째 부인을 만나 결혼했고,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대한수영연맹 이사를 지냈고 '조오련 수영교실'을 열기도 했다. 방송 시트콤에 나와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둘째 아들 성모씨가 자유형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는 경기의 TV 해설자로 나오기도 했다. 2005년엔 두 아들 성웅(29)·성모씨와 울릉도부터 독도까지의 93㎞를 18시간 만에 횡단했다.